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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밴조 도전기 7 - 기초편을 덮어버렸다

독특한 밴조의 줄 구성 (가장 고음이 가장 아래에 배치된 것) 때문에 고생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바로 리듬이었다. 연습곡을 혼자서 천천히 하다보니 리듬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 이상한 혼동을 말로 표현하기는 좀 애매한데.. 4/4 리듬을 잘 타다가도 느닷없이 3/4 왈츠리듬으로 바뀌어지기도 하고, 리듬의 시작과 끝을 아예 잃어버리고 헤매기도 하고...

이렇게 리듬을 자주 잃고 헤매기 시작하자 밴조는 이미, 나를 평생토록 유혹하던 꿈의 악기가 아니라, 그저 골치아프고 지지리로 연주하기 힘든 기타의 변종으로 변해 버렸다. 이게 아닌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기타만 너무 오랫동안 쳐 와서 밴조가 어색해서 그럴거다.. 기타가 좀 익숙하다고 밴조를 너무 쉽게 봐서 그럴거다.. 처음에 기타를 시작할 때를 생각하자.. 밴조에 대한 기대가 너무 성급해서 그럴거다.. 실력도 없는 게 기대치만 너무 높아서 그럴거다.. 정신차려 띠바야..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그러나 어깨도 아픈데다가 이렇게 진도마저도 잘 나가지지 않으니 결국 밴조를 붙들고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 들고 있었다. 옆에서 진도에 따라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랑 경쟁을 하면서 으쌰으쌰 하는 것도 아니다보니 계속 답보상태에 머무르면서 점차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예전 스키를 배울 때가 생각났다.
초급자 코스에서 강사에게 기본기를 배우고 하루종일 코흘리개들과 연습을 하다가 발만 아프고 별로 재미가 없다고 느낄때, 주의의 만류를 뿌리치고 무모하게 다음 레벨의 코스로 올라가서 내려올때의 그 쾌감. 비록 넘어지면 무지하게 아팠지만 그 경험으로 연습을 무지하게 열심히 하게 되었었다.

골프를 배울 때도 생각났다.
연습장에서 무미건조하게 공만 때리다가 흥미를 잃으려고 하던 무렵, '야 씨바야.. 골프는 일단 나가서 개쪽을 한번 당해봐야 돼' 홍도깨비가 무조건 잡아 끌어 처음으로 필드에 나갔던 경험. 물론 그양반 말씀대로 개쪽을 당했지만 그것때문에 골프에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 그거다. 그래서 난 Janet Davis의 'You can teach yourself BANJO'를 중간에 덮어버리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교재 첨부터 끝까지 차곡차곡 끝 낸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고 다짐했건만, 중간에 덮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넘어간 게 바로 'Sitting on top of the world' 다. 기본기도 제대로 익히지 않았으면서도 바로 중급자용 실전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 건방진 처방은 다행히 그간 지루하게 느껴지던 연습에 활력이 되고 새로운 기폭제가 되었다.

변화를 준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반주자를 영입한 것이다. 물론 돈주고 영입한 건 아니다.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기타 반주를 깔고, 실전 곡으로 연습을 해보니 '드디어' 밴조의 맛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중간에 리듬을 잃고 헤매던 것도 거의 없어졌다. 전혀 묘미라고는 느껴지지 않던 lick도 그 맛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 멋대로 합리화했다. 앞부분을 연습하고, 어느정도 자신이 생기자 이번엔 뒷부분을 연습해서 갖다 붙이고.. 시작부터 끝까지 끊어지지 않게 이어붙일 정도가 되자 슬슬 점차 속도를 빨리해 보고. 정말 재밌다.

기타에 비해 줄 간격이 좁기 때문에, 두번째 줄 lick을 하는 경우에 그 손가락이 첫번째 줄을 약간 방해하는 것이 아직 귀에 거슬리지만 그런대로 밴조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재밌다. 밴조에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열심히 연습할 마음이 다시 샘 솟는다. 참 다행이다.

근데 이래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 밴조 도전기 1 – 배워야겠다
→ 밴조 도전기 2 – 장르
→ 밴조 도전기 3 – 컨츄리 음악
→ 밴조 도전기 4 – 블루그래스 음악
→ 밴조 도전기 5 – 네가지 문제에 봉착하다
→ 밴조 도전기 6 – 기본문제 겨우 해결
→ 밴조 도전기 7 – 기초편을 덮어버렸다
→ 밴조 도전기 8 – 나홀로 밴조는 외롭다
→ 밴조 도전기 9 – 카포
→ 밴조 도전기 10 – 조강지처에 돌아가다/a>
→ 밴조 도전기 11 – 랙타임 기타와의 만남
→ 밴조 도전기 12 – 도망자의 변명
→ 밴조 도전기 13 – 장식품 밴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