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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밴조 도전기 12 - 도망자의 변명

가장 고음을 내는 줄이, 맨 아래에 있는 게 아니라 느닷없이 젤 윗쪽에 있다는 거. 누군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 냈을 이 절묘한 현의 배치. 이렇게 가장 높은 음의 줄이 맨 위에 있다는 게 밴조의 생명이며, 밴조가 가진 최고강점이다. 이 특징이 없었더라면 아마 밴조는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가장 높은 음이 윗쪽에 있으니 자연히 엄지손가락으로 그줄을 쳐야 한다. 따라서 엄지가 베이스라인만 치는게 아니라 멜로디라인까지 치게 된다. 이게 밴조의 생명이다. 멜로디라인에서도 엄지와  다른 손가락들이 아래위로 주고받는 리듬을 탈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연속적으로 핑거링 연주가 가능하다. 그래서 기타보다도 훨씬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가 나온다. 밴조연주를 들으면서 어깨를 들썩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바로 그 터져나가는 박진감때문이다. 이것이 밴조의 생명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밴조의 줄 배치, 참으로 절묘한 배열이다. 기가 막힌다. 탄현악기의 제왕자리에 밴조를 올려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그러나 밴조의 왕위즉위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방해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신묘한 줄 구성으로 인한 밴조의 기막힌 장점을 다른 것들이 다 깎아먹는다. 펠레가 영등포 노인 조기축구회에 풀백으로 있는 격이다. 팀원들이 눈꼴 사납게 굴어 펠레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밴조는 holding 하기가 너무 불편하다. 드럽게 불편하다.
만약 밴조가 무릎위에 걸치고 간편하게 연주가 가능한 악기라면 나도 이렇게 요핑계 조핑계로 포기해 버리지 않았을 거다. 숙달과정이 어려워도 일단 악기를 들고 시작만 하면 적어도 삼십분은 하게 되니까. 근데 당최 이 밴조라는 악기는 들고 있기가 어렵다. 다리를 이상하게 비틀고 겨우 자세를 잡아봤자 5분이면 팔과 어깨가 아프고, 그렇다고 멜빵을 걸고 일어서자니 너무 번거롭고.. 이게 연습을 게을리하게 되고 악기와 멀어지게 하는 가장 큰 주범이었다. 대중화될 수 없는 밴조의 치명적인 약점, 바로 홀딩의 불편함이다. 헤드가 똥그래야 가죽을 빵빵하게 당길 수 있고, 또 황동으로 둘러쳐야 제대로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쓸데없는 똥고집으로 보인다.


밴조의 생명은 현의 독특한 배치다. 강한 사운드도 아니고 특유의 까랑까랑함도 아니다. 고음현이 젤 위에 있다는 거, 그게 밴조의 존재의미이며 존재가치이다. 다른 건 모두 다 바꿔도 된다.

1. 제일 먼저, 똥그란 그 옆구릴 확 파내서 무릎에 편하게 얹혀지게 만들어야 한다. 모든 현악기가 다 가운데가 잘록한데 밴조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혼자서만 똥그란가?

가죽을 붙들어 메고 잡아 당기기 위해서라지만 똥그랗지 않아도 충분히 잡아 당길 수 있다. 이게 똥그래야 하는 이유는 정말 단 한 개도 없다. 다른 건 다 그대로 놔두더라도 이 똥그란 건 진짜 어떻게 해야 한다. 앉아서도 편하게 연주가 되게끔. 밴조 몸통이 똥그란 거 이게 밴조 대중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2. 다음 터무니없이 한쪽으로 기운 무게중심과 드럽게 무거운 악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밴조 헤드를 똥그랗게 유지해야 한다면 차선책으로 무게를 줄이고 무게중심이라도 잡아야 한다. 그러면 홀딩이 그런대로 편해진다. 현재의 이 무게와 이 무게중심으론 어림없다. 황동을 떼어버리고 다른 대체 합금과 접착기술을 개발하면 둘 다 해결된다.

3. 위 두가지가 핵심이지만 한가지 굳이 더 추가하자면.. 핑거픽이 아니면 소리를 거의 낼 수 없는 그 무지막지한 강철 쇠줄을 다른 걸로 바꿔서 그냥 손톱으로 탄현해도 소리가 나게 해야 한다. 핑거픽을 끼고 쳐야 한다는 거 이거 생각보다 상당히 불편하다. 핑거픽이 없더라도 같은 소리가 나는 그런 소재를 개발해서 무식한 강철 쇠줄을 퇴장시켜야 한다.

4. 이랬더니 소리가 너무 약하고, 울림이 적고.. 뭐 기타등등 문제가 있다면, 밴조 픽업의 성능을 향상시키면 된다. 뭐? 픽업만은 안된다고?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탈레반이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통 울림 위주로만 음악을 하려 하는가? 어차피 큰 공연에서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악기에서 픽업은 이제 엄연히 악기의 일부이다.


가죽을 똥그랗게 땡기고 황동으로 짓누른 밴조 소리가 더 좋고 그게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밴조의 생명은 그 소리 자체가 아니다. 밴조의 생명은 까랑까랑한 소리가 아니라 핑거링의 터질듯한 박진감이다. 

대중에게 외면받으면 음악 자체가 죽는다. 설사 대중에겐 명맥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그걸 직접 하는 사람이 없다면 역시 그 음악은 죽는다. 연주자가 빈 그 자리는 컴퓨터가 대신한다. 컴퓨터에게 그 자릴 뺏기느니 차라리 밴조이스트들의 고집을 버려야 한다.

대한민국에 과연 밴조를 ‘제대로’ 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호박 알프스 로지스..ㅋㅋ 10명이나 될까? 그 숫자로 무슨 수로 명맥을 유지해 나간단 말인가? 그나마 쪽수로 명맥이 이어지는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밴조가 뿌리내리고 저변을 확대하는 건 기적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이 과업, 우리 대한민국의 밴조이스트중의 한 사람이 나서야 한다. 물론 수도 없는 시행착오와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래서 아마 아무도 이걸 안 하는 걸거다. 쎼빠지게 고생 해서 개량을 해봐야 동호인숫자가 워낙 적으니 그 본전을 찾을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꼰대들이 버티고 있어서도 이게 어려울 거다. 뭐? 밴조 옆구릴 판다고? 황동을 떼고 다른 합금을 붙인다고? 줄을 바꾼다고? 밴조픽업을 어쩐다고?.. 이 미친 %^*(**&^%$^%

이 중차대한 일, 한국 밴조의 대모 A모 여사가 나서야 한다. 꼰대들 설득하고, 이건희 회장에게 자금 지원 받고, 각 분야 과학자 섭외해서 개량작업 맡기는 이 작업을 해야 한다.

‘5현밴조의 아버지 얼 스크럭스’와 나란히 ‘개량 5현 밴조의 어머니 Alps’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두둥-


안다. 이거 현실적으로 전혀 현실성 없다는 거.
게다가 밴조 포기하고 도망가는 놈이 추잡스럽게..


→ 밴조 도전기 1 – 배워야겠다
→ 밴조 도전기 2 – 장르
→ 밴조 도전기 3 – 컨츄리 음악
→ 밴조 도전기 4 – 블루그래스 음악
→ 밴조 도전기 5 – 네가지 문제에 봉착하다
→ 밴조 도전기 6 – 기본문제 겨우 해결
→ 밴조 도전기 7 – 기초편을 덮어버렸다
→ 밴조 도전기 8 – 나홀로 밴조는 외롭다
→ 밴조 도전기 9 – 카포
→ 밴조 도전기 10 – 조강지처에 돌아가다/a>
→ 밴조 도전기 11 – 랙타임 기타와의 만남
→ 밴조 도전기 12 – 도망자의 변명
→ 밴조 도전기 13 – 장식품 밴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