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얘기

랙타임과의 인연

내 첫 피아노 레퍼토리는 바로 ‘The Entertainer’ 였다.


영화 스팅의 주제곡. 들으면 절로 고개가 까딱거려지는 곡. 이 곡 하나로 난 평생을 우려먹었다. 이 곡을 처음 연습할 때, 상상외로 힘들었었다. 듣기에는 단순해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던 거다. 물론 낮은 내 실력 탓이었겠지만. 아무튼 이 곡은 왼손과 오른손이 '별도의 리듬감'으로 따로 놀아야 했다. 겨우 그걸 넘어서고 이후 이 곡으로 평생을 우려먹었지만.. 난 정작 이 곡이 누구의 작품인지, 이런 스타일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전혀 궁금해 하지도 않았었다.

----

미국에 와서 워낙 종류가 많은 티비채널을 보다 보니 가끔 귀에 확 꽂히는 음악들을 들을 수가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들어본 적이 있었을 음악들이었겠지만 자주 듣다 보니 그제서야 그 음악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래서 역추적을 해서 알게 된 음악이 두가지 있는데..

하나가 바로 블루그래스였다. TV에서 귀를 확 당기는 음악이 나오는데 마침 아래에 bluegrass music이라는 캡션이 뜨는 바람에 알게 된 장르. 무작정 밴조부터 사고 이후 한동안 이 블루그래스에 빠져 지냈었다. 하지만 이 블루그래스 음악보다도 더 궁금한 음악이 하나 있었으니.. 전원생활을 보여줄 때 흔히 배경음악으로 받쳐주는 정체불명의 어쿠스틱 기타 음악이었디. 하지만 그런 음악들을 어떤 장르로 구분하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혼자 치는 것 같기도 하고, 둘이서 치는 것 같기도 한 음악. 기필코 정체를 찾아내서 언젠가는 이런 기타를 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Tommy Emmanuel을 알게 되고 그의 음악을 듣다가 내가 찾던 분위기의 곡을 드디어 발견했다. The Cowboy’s Dream. 


바로 이거였다. 그동안 뭔지도 모르면서 찾아 헤매던 음악이 바로 이런 곡이었다. 너무 반가왔다. 악보를 구해서 연습을 시작했다. 감개가 무량했다. 그러나 그 감개도 잠시.. 상상외로 어려웠다. 엄지 따로 나머지 손가락 따로 별도의 리듬감으로 움직여야 했던 거다. 상당히 어려운 독특한 주법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핑거스타일 카페에 문의를 했다. 이런 주법을 뭐라고 부르는지.. 순식간에 답이 3개가 붙었다. 붐칙(Boom Chick) 주법이라고 합니다. 트래비스 픽킹(Travis Picking)이라고 합니다. 랙타임(Ragtime Guitar) 주법이라고 합니다. 이런 띠바.. 답이 세가지나 된다. 하지만 단서를 잡았다.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붐칙(Boon Chick)이란 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꿍짝’의 어원이었다. 쿵짝거리는 베이스 리듬의 의미하는 말. 더 재밌는 사실은 우리가 ‘뽕짝’ 이라고 부르는 것의 어원도 바로 이 붐칙이었다. 붐칙~뽕짝. 이렇게 우연히 뽕짝의 어원을 알게 됐다. 따라서 한국의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들이 The Cowboy’s Dream 같은 곡을 흔히 붐칙이라고 부르는데.. 엄밀히 맞는 표현은 아닌 듯했다. 속어적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다음으로 Travis Picking을 찾아가 보니 Merle Travis 라는 기타리스트의 이름에서 딴 말이었다. Thumb Pick을 낀 엄지와 검지손가락, 단 두 손가락만으로 연주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기타리스트, Chet Atkins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중의 한명이랜다.

(Merle Travis 1917~1983)

그의 음악을 들어보니 과연 내가 찾는 그 음악이 맞다. 그래서 이런 걸 트래비스 주법이라고 하는거였다. 그러나 조금 더 뒤져보니 이 주법을 최초로 구사한 사람은 멀 트래비스가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Blind’ Arthur Blake가 있었다. The King of Ragtime Guitar.

(‘Blind’ Arthur Blake 1893~1933)

그의 음악을 들어보니 역시 내가 찾는 그 음악이 맞다. 트래비스 이전의 사람이니 이 주법을 뭐라고 불렀었을까? 바로 Ragtime Guitar 라고 칭했었단다. 랙타임? 이게 도대체 뭘까?

 
재즈 피아노의 원류중 하나인 Ragtime Piano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 피아노 주법을 맹인 기타리스트 Blake가 처음으로 기타에 도입해서 연주하게 된 것인데, 그래서 '랙타임 기타'라고 불렀다고 한다.

즉, 이 주법의 첫 시작은 블레이크, 그리고 그것을 대중화시킨 사람이 멀 트래비스.. 그래서 트래비스의 이름을 따서 트래비스 주법이라고 한 것이었다. 이렇게 같은 주법, 같은 음악을 다른 용어로 부르고 있는 걸 나 혼자 결론을 냈다. 주법으로 따지자면 '트래비스 주법', 장르로 따지면 '랙타임 기타'. 결국 ‘멀 트래비스’가 이 주법의 선구자는 아니므로 나는 '랙타임 기타'라는 용어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이 Ragtime..
낱말의 뜻과 장르의 구분이 분명치 않다. 느낌이 다가오질 않는다. 누더기 음악같다는 뜻인지.. 이빠진 톱니바퀴 같은 음악이라는 뜻인지. 그 뜻을 짐작이라도 하려면 그것의 원류라는 '랙타임 피아노'가 뭔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랙타임 피아노를 뒤져봤다.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이 Scott Joplin이었다.

(Scott Joplin 1868~1917)

그의 이름 밑에 그의 대표곡들이 쭉 나와있다. 차근하게 살피는데 놀라운 제목의 곡이 하나 있었다.
The Entertainer..

엔터테이너? 이거 이상하다.. 1970년대의 영화음악이 왜 1800년대 피아니스트의 대표작 목록에 있단 말인가? 제목만 같고 다른 곡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호기심에 클릭을 했다.

깜짝 놀랐다. 내가 1970년대에 어렵게 연습해서 치던 곡, 바로 그 엔터테이너였다. 오랜만에 이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모든 것들이 풀렸다. 랙타임 피아노.. 왼손 베이스와 오른손 멜로디가 톱니바퀴 물리듯 Syncopation 엇박자로 엮어지는 음악. 내가 삼십년전에 쳤었던 엔터테이너가 바로 랙타임 피아노 곡이었다.

기타에서는.. 멜로디와 별개로 엄지손가락이 일정한 베이스(붐칙)를 끊임없이 이어주는 음악. 요즈음 낑낑대며 주법을 익히느라 고생을 하고 있는 '카우보이즈 드림'이 바로 랙타임 기타였던 거다.

참 내.. 삼십년의 세월.. 어떤 기타곡에 매료되어 기필코 그 기타곡을 쳐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기어이 그걸 찾아 시작하고 보니.. 결국 그게 삼십년전 까까머리 중학생이 치던 그 장르의 음악들이었던 거다. 이 두 음악이 쌍둥이처럼 닮은 리듬을 가진 같은 랙타임 음악이라는 걸 그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던 거다. 엔터테이너와 카우보이즈 드림.. 랙타임 뮤직은 나랑 이런 인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