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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기타 고르기 2 - 비싼 기타가 좋은 기타..

전문가분들께 조언을 듣고 기타를 고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어 나름대로 연이 닿는 모든 분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기타를 직접 판매하시는 분을 찾고 싶었지만 못 만났다. 각 기타가 가진 톤의 차이를 진짜로 잘 구분할 수 있으려면 많은 기타를 편안한 분위기에서 차례대로 수없이 쳐 봤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며, 그게 가능한 사람은 오직 기타를 판매하는 분외에는 없을 것이다. 기타매장에서 소비자가 여러가지 기타를 조용한 곳에서 오래도록 쳐 본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기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랬다. ‘기타의 톤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제조사이다. 그 다음이 기타의 재질과 형태이며, 마지막이 줄의 차이이다.’ 말인즉슨 각 회사마다 자기네가 추구하는 음색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모델이 바뀌어도 추구하는 음색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즉 마틴의 기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마틴 특유의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테일러의 기타는 테일러만의 음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겠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첫째, 사람에겐 각자 독특한 취향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기타와 함께 생활해 온 기타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각 기타의 톤에 대해선 나름대로 취향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청명한 소리라고 생각하는 소리를 나는 쇳소리 같아서 싫어하거나, 나는 깊은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무겁다고 느끼거나.. 분명히 이런 취향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둘째, 사람들이 가진 관념의 소스가 제한되어 있다.
마틴과 깁슨의 차이를 잘 아는 분이 있다 치자. 그분의 기타 경력이 아무리 오래 되었어도 그분이 직접 ‘오랜 기간 동안’ 쳐본 마틴과 깁슨의 모델은 한정되어 있을 수 밖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분이 여러가지 모델을 소유하며 쳐 봤다해도 설마 각 회사의 라인업 수십개씩을 가져보았겠는가. 그렇다면 마틴과 깁슨의 전체 소리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시긴 어렵다고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쳐 본 ‘몇가지 마틴’의 소리를 ‘전체 마틴’의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들은 심각하게 편견과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선입관은 무섭다. 예를 들어 ‘이 기타는 마틴인데, 마틴의 특징은 중저음이 죽인다는 거지요’ 이런 얘기를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으로부터 한번 들었다면 이 관념은 평생을 간다. 혹시나 하고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기타에 대한 평가들은 일사불란하다. ‘마틴 특유의 중저음’.. ‘깁슨만이 가진 그 찰랑한 소리’.. ‘라리비 특유의 그 소리’.. 여기서도 ‘발맞추어 나가자 앞으로 가자’ 이다. 나 역시 그런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저음이 좋다는 설명을 듣고 그 기타를 쳐보면 실제로 중저음이 크게 느껴지고, 메탈소리가 아름답다고 하면 진짜 그렇게 느껴졌었다. 더 중요한 건 설사 그렇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그렇게 느껴야만 전문가,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건 아직 내 귀가 열리지 않아서’ 라고 생각한다. 그리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역시 그렇게 똑같이 얘기한다. 다른 얘기를 했다간 ‘저놈은 역시 비전문가’ 라는 소릴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기타 제조사는 경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전통을 중시하고 그걸 유난히 강조하는 ‘악기’이다 보니 자기네만의 독특함을 포기하고 ‘우리도 여러 기타를 다 만든다’ 고 공표하기는 어렵겠다. 그렇지만 과연 요즘 같은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수많은 소비자의 취향을 골고루 고려하지 않고 자기네 회사의 모든 라인업에 모두 똑 같은 음색만을 구현한다는 것이 경영의 차원에서 봤을 때 가능할까? 경영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렇게 한가지 음색만을 고집하는 건 학실히 자살행위이다. 설사 라리비처럼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회사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마틴 깁슨 테일러 길드 같은 대형 메이저회사에서 그러기는 아마 힘들 것이라 생각되었다. 물론 직접 확인해 본적이 없으니 확신은 할 수 없었다.


마틴에서 생산하는 어쿠스틱 기타의 종류만 어림잡아도 백여가지는 가뿐히 넘는 것 같다. 아마 깁슨도 그럴 것이며, 테일러, 길드, 오베이션, 라리비도 다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렇게 몇군데 메이저 기타회사의 기타만 따져도 그 종류는 천여가지에 육박할 것이며, 그중 하이엔드급 이상만으로 한정을 한다하더라도 그 가짓수는 수백가지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마틴의 소리는 전부 이렇다.. 깁슨은 전부 저렇다, 오베이션은 전부 요렇다.. 라는 교통정리가 과연 가능할까? 이게 가능하다 보시는가?

내가 마틴의 기술자라고 치자, 아니 내가 창업자 마틴이라고 치자. 내가 아무리 마틴이라 하더라도 우리 회사에서 생산하는 그 모든 종류의 기타를 톤으로 구분 짓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하거나 실제로 그렇게 구분하여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분명히 ‘먹물티’다. 전문가라는 고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그 짓 말이다. 수백개 기타를 제조사별로 구분 짓는다는 것.. 난 불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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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 기회에 내가 직접 실험해 보기로 했다.
‘당신 귀가 수준이 낮으니 이 실험은 무효’라고 하면 할말은 없다. 그냥 내가 내 멋대로 했다.

僞藥효과라는 게 있다. 이 약을 드시면 금세 잠이 옵니다.. 하고 밀가루약을 줬는데 상당수의 사람들은 진짜로 잠 들어 버린다. 이런 게 바로 위약효과이다. 영어로는 placebo effect. 이왕 말 나온김에.. Nocebo effect 라는 것도 있다. 역위약효과라고 하든가? 실제로 건강하던 사람이 우연히 받은 건강검진에서 자기 폐가 나쁜 것을 알게 되고, 그때 갑자기 피를 토하더니 일주일 만에 죽었다라는..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암시’와 ‘기대심리’와 ‘선입관’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라는 것이다.

기타에 대하여서도 이 ‘僞 메이커 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기타의 소리를 객관적으로 변별하려면 기타의 제조사와 모델을 몰라야 한다. 그래서 제조사와 모델을 전혀 보지 않기로 했다. 제약회사에서 신약실험을 할 때 ‘僞藥효과’를 차단하기 위하여 일부에겐 진짜 약을 주고 일부에겐 밀가루 약을 주면서 실험하는 것과 비슷하겠다. 대단한 실험이다. 뚜궁..

다행히 점원이 나를 ‘진짜 사러 온 손님’으로 보았는지 파격적인 배려를 해 주었다. 방음시설이 되어있는 작은 방을 내게 주었다. Take your time.. 하면서. 옷을 신경써서 입고 가길 잘했다.

확인이 가장 쉬운 중저음에 대한 실험부터 했다. 한번에 두세가지씩, 여섯가지 기타를 가지고 들어갔다. 여섯가지 기타를 차례대로 쳐보고 중저음이 가장 훌륭하다고 느껴졌던 기타의 제조사를 확인했다. 소문대로라면 당연히 마틴이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니었다. 의외로 테일러와 오베이션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테일러만 몇가지 들고 들어가서 차례대로 쳐보았다. 웬걸 중저음이 천차만별이었다.

찰랑거리는 밝은 쉿소리 톤이 가장 좋은 기타를 고르기 위해 이번엔 또 다른 몇가지 기타를 골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깁슨이나 라리비였어야 했다. 그러나 선택된 기타는 의외로 마틴이었다. 그래서 다시 마틴만 몇가지 들고 들어갔다. 같은 마틴끼리도 톤은 천차만별이었다.

밝은 톤을 구분하기 위해 들고 들어갔던 그 기타들 중에 중저음이 유난히 강한 게 하나 있었다. 아마 이걸 쳐본 사람들이 '마틴하면 중저음'이라고 얘기했던 모양이다. D-41이었다. 훨씬 강하다고 들었던 D-45는 의외로 중저음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이번엔 같은 마틴중 어떤 타입이 밸런스가 가장 좋은지 실험을 했다. 말대로라면 OM타입이 선택되어야 했다. 그러나 D 타입이었다. 이번엔 다시 OM 과 OOO 만을 가지고 들어갔다. OOO이 선택되었다. 그래서 다시 OOO과 D 를 비교했다. 밸런스는 비슷하게 느껴졌지만 미세한 울림에 있어서 D는 OOO에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점원이 도와준다고 들어왔다. 소리의 미묘한 특색과 차이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점이 많았지만 그 짧은 영어로도 그의 설명을 들으면 그가 말하는 대로 생각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건 핑거스타일용, 이건 플랫픽킹용.. 이 사람도 자기의 취향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에게 물어봤다. 기타의 톤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팩터가 ‘제조회사’냐고.. 대답은 I don’t think so였다. 제조사가 좌우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좌우하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했다. 내가 들어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의견이었지만 이 말이 훨씬 사실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실제로 제조사가 달라도 비슷한 음색을 내는 기타가 많았으며, 제조사가 같아도 전혀 다른 톤의 기타가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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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가 아직 전문가들의 그 수준에 한참 모자란다는 것도 인정하며, 나 역시 소리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또 아직까지 한번도 하이엔드급 기타를 소유해 본 적이 없었다는 뼈저린 결격사유가 있음도 인정한다. 틀림없이 나는 내 취향에 따라 기타의 소리들을 변별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버리려고 노력을 했지만 마틴에 대한 선입관을 버리기도 참 어려웠었다.

인정한다. 그러므로 내 멋대로 해본 이 실험이 전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소문들중 상당부분은 잘못된 편견이라는 것을 나는 확인했다. ‘마틴의 D 40 이상은 중저음이 너무 강해서 합주가 불가능할 정도다’ 와 같은 편견들이 상당부분 위약효과이며 선입견임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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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고르기’라는 한 비디오에서였다. 기타리스트가 낙원상가의 한 매장에서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님, 어떤 기타가 좋은 기타예요?’ 그러자 사장이라는 자가 대답하길.. ‘비싼 기타’

띠바 성의 없이 저 따위로 대답하나.. 싶었는데, 겪어 보니.. 이게 정답이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그게 정답이었다. 비싼 기타가 좋은 기타였다.


→ 기타 고르기 1 – 어렵다
→ 기타 고르기 1.5 – 명필일수록 붓을 가린다
→ 기타 고르기 2 – 비싼 기타가 좋은 기타
→ 기타 고르기 3 – 마틴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