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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얘기

밴조 도전기 11 - 랙타임 기타와의 만남

밴조에 실망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어렵고 진도가 늦자 제가 꾀가 난 겁니다. 꽤 오랫동안 기타를 쳐 왔으니 밴조도 조금만 하면 될 수 있을거다.. 그런 착각을 가지고 있었던 건데 만만의 콩떡.. 밴조가 결코 녹녹한 상대가 아님을 알고 꾀가 난거죠.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전에 얘기했었던 그 문제, 혼자 해야 하는 그 어려움이었습니다. 반주 없이 나홀로 밴조를 연습 연주하는 건 고통입니다. 다른 악기와 맞춰보는 재미가 없으니 연습의 모티베이션이 적은데다가 또 어떨 땐 독고다이 밴조가 소음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주변에 밴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조차 없으니..고립무원에서 밴조하나 달랑 메고. 

기타를 치다가도 변칙튜닝곡을 만나면 왠지 어색하고 짜증이 나는데, 아무리 해도 익혀지지 않는 밴조의 오픈 튜닝은 제게 큰 저항이었습니다. 밴조튜닝과 기타튜닝이 별도로 머리속에 따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아무리 해도 밴조로는 ‘도레미파솔라시도’조차 외워지질 않았습니다. 나쁜 머리 탓이지요. 그럼 기타에서는 스케일을 매끈하게 구사하느냐.. 물론 그건 아니지만 밴조는 그게 안되도 너무 안되었습니다. 오선 밴조악보는 본적도 없고, 오로지 Tab만 보면서 표시된대로 기계적으로 손가락만 움직여야 한다는 것, 좀 무망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밴조 연습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때.. 그때 그걸 돌파하려던 방법이 바로 '교재에 있는 연습곡'이 아니라 ‘내가 치고 싶은 곡’을 연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가 뻑이 가 있던 곡, 오리지날 Dueling Banjos 를 다음 곡으로 삼고 그 악보를 찾아 헤맸었는데..아시다시피 그 악보는 끝내 못 구했습니다. 우리 알프스선배님께서 그렇게 진심으로 애써주셨었는데 말입니다. 유튜브를 뒤져서 그 곡을 원곡과 비슷하게 치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그에게 메일을 보내서 악보를 부탁하기까지 했었는데 한넘도 답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밴조 튜닝조차 머리속에 없는 제가 그 곡을 귀로 듣고 채보한다는 건 가능성 제로였구요. 기타부분은 한두번만에 간단히 채보했는데, 채보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밴조의 벽에 기가 막히고.. 이때 상당부분 연습의 동력을 상실했던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초심을 잃고 연습의 동력을 잃어버리자 기약없이 밴조와 이별을 더럭 해버렸습니다. ‘너 밴조 칠줄 아냐?’ 누군가 물었을 때 ‘아주 조금’ 이러면서 몇곡 칠 정도는 되었으니 그냥 여기서 일단 마무리 하자. 나중에 다시 필이 오면 그때 다시 시작하지 뭐..

제가 비록 기타를 잘 치는 건 아니지만, 이제 막 시작한 내 밴조 실력이 기타 수준까지 도달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고생을 해야할까라는 생각이 들자 지레 기운이 빠져버린 겁니다. 어차피 매끈하게 잘 치지 못할 바에야 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피터지게 고생하느니 차라리 기타에 더 노력을 쏟아 부어 기타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지요.

밴조를 기필코 마스터하리라.. 그래서 일부러 더 요란법석을 떨면서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시작한 악기였는데, 그걸 중간에 접는다는 것이 스스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동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자존심때문에 억지로 밴조를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이러면서 밴조를 케이스에 가둬 넣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얼마전 ‘랙타임’이란 걸 드디어 알게 되었지요. 이게 아주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동경하던 쓰리핑거 주법에의 동경의 실체는 '밴조보다는 바로 이 랙타임'이 가깝다는 걸 그제서야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거죠.

요즈음 랙타임 기타곡에 빠져서 삽니다. 빠져 산다기보다는 빠져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듣기에는 그렇게 단순하고 쉬운 곡들이, 직접 치려면 참 은근히 어렵습니다. 물론 지저분하게 친다면야 어려울 게 하나도 없지만 Chet Atkins의 그 간결한 소리를 흉내내려 하다보니 너무 어렵습니다. 왜 이분을 기타의 아버지라고 칭송하는지 알겠더군요.


웬만큼 연습하지 않고선 듣기 민망할 소리밖에는 나지 않습니다. 너무 간단명료해서 느낌 살리기가 어려운 멜로디라인과, 제대로 소리내기가 참으로 까다로운 베이스의 ‘팜뮤트’, 그 팜뮤트로 인한 손가락 각도때문에 자꾸 부서지는 손톱, 그럼 그게 다시 자랄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난감하지요. 근데 이것들은 그런대로 참을 만합니다. 가장 열받는것은 이런 고생을 아무리 해도 웬만해선 간결하게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느정도 치다보면 약간 실수를 해도 소리가 섞여서 뭉개지는 다른 핑거스타일 곡들과는 차원이 다르네요. 내가 치는걸 들으면서도 ‘참 따식 초보처럼 치고 자빠졌네..’ 라는 생각이 드는 게 한두번이 아닙니다. 허긴 목표를 쳇앳킨스로 두고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간 좋아질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Chet Atkins의 전형적인 랙타임 스타일의 곡들중 'Baby’s Coming Home'이라는 아주 정감 있는 곡의 연주장면을 링크하려고 했었는데 (보면서 따라 연습하느라 예전에 유튜브에서 찾았고 그걸 다운받아서 flv파일로는 보관하고 있는데) 지금 유튜브를 뒤져보니 못 찾겠습니다. 그렇다고 flv파일을 올려봤자 플레이가 되지도 않을테고.. 참 좋은 곡인데 아쉽습니다. mp3로는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나중에 녹음설비가 준비되면 제가 직접 치고 녹음해서 올리겠습니다. 원곡과 좀 다르겠지만요..

비록 제가 밴조에선 손을 떼었지만 블루그래스와 밴조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냄새가 날 만큼 상투적인 말입니다만 사실입니다. 지금 '두엘링 밴조'를 링크하면서 그곡을 한번 들었는데 여전히 어깨가 들썩이며 밴조에 대한 욕망이 아직도 강렬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하려던 욕심은 접었습니다. 밴조는 저같은 둔재가 하기엔 너무 어렵습니다..

블루그래스와 랙타임 기타곡들이 리듬이 같고 멜로디 흐름이 비슷하니 템포만 맞춰주면 적당한 곡만 하나 선택되면 블루그래스 밴조와 랙타임 기타의 두엣 연주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플랫피킹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기타와 밴조가 어울릴 수 있습니다. 그날을 기다립니다.

 
찾았습니다. 짝퉁마틴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Baby's Coming Home - Chet Atkins


→ 밴조 도전기 1 – 배워야겠다
→ 밴조 도전기 2 – 장르
→ 밴조 도전기 3 – 컨츄리 음악
→ 밴조 도전기 4 – 블루그래스 음악
→ 밴조 도전기 5 – 네가지 문제에 봉착하다
→ 밴조 도전기 6 – 기본문제 겨우 해결
→ 밴조 도전기 7 – 기초편을 덮어버렸다
→ 밴조 도전기 8 – 나홀로 밴조는 외롭다
→ 밴조 도전기 9 – 카포
→ 밴조 도전기 10 – 조강지처에 돌아가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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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조 도전기 12 – 도망자의 변명
→ 밴조 도전기 13 – 장식품 밴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