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연자실 내무반 침상에 앉아서 숨막히는 적막이 흐르다가, 한 병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찌 될거 같노?’
'.....'
‘아마.. 그냥 덮는거 같습니다’ 공일병이 대답했다.
‘덮다이?’
‘워낙 대형사고라 위에서 그냥 덮는거 같습니다’
‘아까 작전관이 병기관한테 하는 소리 들었는데 ‘다 채울수 있냐’고 묻습디다. 우리가 날려버린 것들 채울 수 있냐고 물은 거 아니겠습니까. 채운다는 뜻은 덮는다는 거 아닙니까.. 이 정도 사고면 아마 사단장까지도 위험할 겁니다’
'사단장도 이 사고를 안단 말이가? 설마 이걸 사단장한테까지 보고했을라고'
'개울건너 M초소 애들이 있잖습니까. 다른부대 애들이잖아요.틀림없이 어젯밤 터지는거 걔네들도 똑똑히 봤을테고 또 당연히 위로 보고했을거고, 그렇다면 그쪽 연대에서도 위로 보고 했을거고..당연히 사단장도 알고 있겠죠. 하지만 다행히 걔네들은 상황을 정확히 모를게 아닙니까? 걔네들한테는 그냥 훈련이었다고 해버렸겠죠'
연대장은 물론 사단장도 그때까지 아주 잘나가던 육사출신들, 진급이 빠른편이라고 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기네 휘하부대에서 발생한 이런 대형사고는 그들의 진급에 치명타가 될것은 뻔하다.
'그렇다면 연대 군기교육대나 사단영창 정도는 가지 않겠나..'
'굳이 긁어 부스럼 낼려고 하겠습니까. 그냥 덮는게 피차 제일 안전한거죠. 아마 거기도 안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우리중에 죽거나 크게 다친사람이 없으니까 이게 가능한 겁니다. 그리고 우리 중대원들 아까 새벽에 어디간줄 아십니까? 전부 작업도구 챙겨 갔습니다, 현장 덮으러 가는 겁니다’
'...'
'깨끗이 덮는 겁니다'
설명하는 공일병도 스스로 놀랍다. 어떻게 이 짦은시간에 이런 추리가 가능할까.. 스스로도 놀랍다.
공일병의 일목요연한 상황설명에 병사들 조금씩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아 그새끼 대갈 잘돌아가네.. 역시 가방끈 긴 새끼가 틀리구마'
그러나 가방끈이 길어서 그런게 아니라 유일하게 공일병만 이성을 잃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상황들을 봤다면 객관적으로 누구나 이런 추리가 가능했다. 그러나 제대를 코앞에 둔 다른 병사들은 이성을 잃었었기 때문에 이런 객관적인 상황판단이 불가능했었다.
그러나 확실히 결론이 나서 모든게 안전해질 때까지는 죽은듯이 조용히 있어야 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모두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크게 반성하고 근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전혀 졸리운 기색은 없다. 워낙 긴장한 데다가 결론이 확실하게 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자. 위장한 얼굴도 씻지않고 복장도 그대로 전부 침상위에 앉아 있었다. 괜히 자빠져 자고 있는 모습 보이면 좋을리가 없다. 괜히 쓸렁대다가 군기교육대로 끝날 일이 영창으로 올라가는 수가 생긴다. 그래 자지말고 버티자. 이거였다. 영악한 것들.
두어시간쯤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씩 몸에 피로가 느껴지면서 졸음이 닥쳐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잠을 자면 안된다. 억지로 버텼다.
모두들 비몽사몽 혼미한 상태다. 그때 벌컥 내무반 문이 열리며 중대장이 들어왔다.
‘중대장님께 경례’
‘그냥 앉아.. 니들 지금부터 내 얘기 잘 들어’
평소의 중대장이 아니다. 굉장히 엄숙하고 긴장한 모습이다.
‘너 제대 얼마 남았냐?'
'한달 남았습니다'
너는? 너는?..’ 차례대로 묻는다.
공일병 차례다. 그러나 묻지 않는다. 새털처럼 많이 남아있었거든.
'어제 새벽... 아무일도 없었다. 알았냐..'
'예 알겠쉼니다'
그러리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중대장으로부터 확인을 받으니 형언하기 힘든 느낌이 치받친다. 살았구나... 목구멍에서 아랫배까지 뭔가가 쭉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곧이어 온몸에 힘이 쫙 풀린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경험 처음이다. 몸이 풀린다.
‘니들.. 입 다물고 살어, 사회에 나가서도 죽을때까지 이 얘기 하지마.. 무슨소린지 알겠나? 나중에라도 알려지면 니들 사회에 있다가도 다시 붙들려 온다. 군대엔 공소시효가 없어’
‘옜- 알게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중대원들한테도 절대로 무슨일이 있었는지 얘기하지 말아라.’
‘일단 빨리 씻고, 밥먹고 좀 자라’
‘에 알게쉼다’
잠을 자려고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는게 신상에 이로울 것 같다는 의견으로 그대로 자지 않고 버티기로 했다. 그러나 극도의 긴장감이 갑자기 풀리면서 쏟아져 내리는 잠에는 장사가 없었다. 다들 내무반 이곳저곳에 쭈그려 잠에 떨어졌다.
소대원들이 일과를 마치고 돌아왔다. 고참들이 아무 말 하지 않으니 전 소대원이 똑같이 침묵이다.
현장에 없던 다른 병사들과 같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무반에 섞여 있으니 지난밤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다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진짜로 꿈을 꾼 듯한 딱 그런 느낌이다.
저녁먹고 공일병이 담배 피우러 나가는데 동기 원빵이 따라 나온다.
‘야 도대체 무슨일 있었던거냐? 분침호가 아주 작살이 났던데’
‘거기 어떻게 됐디?’
‘주변 수박밭도 아주 작살이 났던데.. 그거 니네가 다 터뜨려 먹은거지?’
‘아니..묻지마’
‘씨바 나한텐 얘기해도 돼, 어쩌다 다 터뜨려 먹은거냐?’
‘몰라 묻지마 이 씨바쉐이야’
현장을 직접 정리하고 온 넘이니 대충 짐작은 하고 물은 거였지만, 스스로 인정하는 거 하곤 틀릴거 같아서 끝까지 입을 다문다. 묻는 넘도 어차피 짐작하고 있던일이니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대단한 쉐이들이야.. 너 살아있는게 신기하다'
하나씩 하나씩 제대를 해 나간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제대병사가 나가기 전 꼭 치렀던 행사가 있었다. 당시 사고현장 멤버들이 몰래 모여 다짐을 하는 시간이다.
‘나가서도 죽을때까정 이야기하지 말자..’
군대에선 공소시효가 없고 언제라도 알려지면 다시 붙들려 들어올 수도 있다는 그말을 철떡같이 믿은 때문이다. 굳이 그 자리에서 초를 치진 않았지만 사실 말이 안된다. 공소시효가 없는 게 세상에 어디 있나? 물어볼 수도, 물어볼 데도 없으니.. 그저 한 십년쯤 되겠거니..하면서 이렇게 입조심할 뿐이지.
그 사고가 다른사람을 다치게 했거나 죽게 한 그런 사고는 아니고(별거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군대에서 초병이 근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만큼 큰 과오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여름이 다가오자 불과 몇 개월인데도 그 현장은 눈을 씻고 당시의 흔적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게끔 새로 자란 풀들로 덮혀 있고, 또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다행히 당시의 사고를 모두 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다.
7년6개월 남한산성이라는 것도 상당히 과장된거 같고, 공소시효 운운하는 것은 더 말이 안되는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 그대로 입다물고 지내는 수밖에..
불과 서너달 후, 모두들 제대하고 나가니 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중 남아 있는 사람은 공일병뿐이다.
그렇게 그 사건은 공일병 마음속에만 남고 다른 이들에겐 모두가 잊혀졌다.
세월이 흘러 공일병이 제대할 때가 되었다. 근데 이전까지 전례가 전혀 없던 제대장병을 위한 중대장실 파티가 열린댄다. 갔더니 중대장이 그 좁은 중대장실에서 혼자 삼겹살을 굽고 있다.
‘앉아.. 다른 애들은 좀 있다 올거다’
공병장 상당히 불편하다. 아무리 제대말년이라지만 중대장과 둘이서 앉아있기가 여간 어색한게 아니다.
그날의 사고가 공병장 마음에만 남아있는 줄 알았더니 중대장 마음속에도 남아있었나 보다. 중대장이 이해는 된다. 또라이 제대하는데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다짐을 받아두고 싶었겠지.
‘어이 시한폭탄.. 고생 많았다.’
‘원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하하하..’ 과장되게 웃었다.
‘한잔 받아’ 소줏잔이 온다.
‘감사합니다’ 바로 들이키곤
‘중대장님도 한잔 받으십시요’ 바로 벽치기를 한다.
계속 오바를 한다.
‘새끼..’
슬쩍 웃지만..중대장.. 역시 이사람 무섭다. 오바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참 일 많았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저 양반.. 내 덕분에 표창도 받고, 또 내 덕분에 군대생활 완전히 접을 뻔도 했었지..
나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적이 많았겠지. 내가 얼마나 아슬아슬했을까..
공병장도 저양반때문에 별일 참 많았지.
덕분에 꽤 여러번 힘든 훈련 빠진적도 있고
덕분에 포상휴가도 나갔었고
반면, 저양반 덕에 남들 한번도 안 가는 군기교육대를 두번이나 갔다왔고..
아하.. 그렇구나..
제대 보름 남겨둔 공병장을 굳이 군기교육대에 보낸것이 마음에 걸려서 이러나보다..
사실 제대 보름남기고 갔었던 군기교육대는 정말 지옥같았었다. 중대장 욕 그때 정말 많이 했었지.
공병장 속이 그 일로 엉켜 있을까봐 그거 풀어주느라고..
‘말 안해도 알지?’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중대장님’
그렇게 공병장도 모든 것을 뒤에 두고 ‘안전하게’ ‘별탈없이’ 제대를 하였다.
그리고 공병장이 스스로 생각하던 공소시효 10년도 무사히 지나갔고
당시 연대장 사단장은 별넷까지는 아무도 올라가지 못했나 보다. 그들의 이름이 신문에 난 적이 없다.
공병장 탓은 아니다.
그 후로도 또 10년이 지나갔다.
사고싯점부터 따지면 20년이 넘게 흘렀다. 이제는 정말 모두 끝났다.
어차피 얼마 되지도 않았었을 공소시효가 끝났다는게 아니라 가끔 어쩌다가 꿈에 보여서 목을 죄던 그 불꽃에서 이제는 완전히 벗어난 것 같다.
예비역병장 공병장.
만으로 26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근데 그도 아직까지 불은 좀 무섭댄다.
→ 불놀이 1
→ 불놀이 2
→ 불놀이 3
→ 불놀이 4
→ 불놀이 5
→ 불놀이 6
→ 불놀이 7
→ 불놀이 8
‘우찌 될거 같노?’
'.....'
‘아마.. 그냥 덮는거 같습니다’ 공일병이 대답했다.
‘덮다이?’
‘워낙 대형사고라 위에서 그냥 덮는거 같습니다’
‘아까 작전관이 병기관한테 하는 소리 들었는데 ‘다 채울수 있냐’고 묻습디다. 우리가 날려버린 것들 채울 수 있냐고 물은 거 아니겠습니까. 채운다는 뜻은 덮는다는 거 아닙니까.. 이 정도 사고면 아마 사단장까지도 위험할 겁니다’
'사단장도 이 사고를 안단 말이가? 설마 이걸 사단장한테까지 보고했을라고'
'개울건너 M초소 애들이 있잖습니까. 다른부대 애들이잖아요.틀림없이 어젯밤 터지는거 걔네들도 똑똑히 봤을테고 또 당연히 위로 보고했을거고, 그렇다면 그쪽 연대에서도 위로 보고 했을거고..당연히 사단장도 알고 있겠죠. 하지만 다행히 걔네들은 상황을 정확히 모를게 아닙니까? 걔네들한테는 그냥 훈련이었다고 해버렸겠죠'
연대장은 물론 사단장도 그때까지 아주 잘나가던 육사출신들, 진급이 빠른편이라고 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기네 휘하부대에서 발생한 이런 대형사고는 그들의 진급에 치명타가 될것은 뻔하다.
'그렇다면 연대 군기교육대나 사단영창 정도는 가지 않겠나..'
'굳이 긁어 부스럼 낼려고 하겠습니까. 그냥 덮는게 피차 제일 안전한거죠. 아마 거기도 안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우리중에 죽거나 크게 다친사람이 없으니까 이게 가능한 겁니다. 그리고 우리 중대원들 아까 새벽에 어디간줄 아십니까? 전부 작업도구 챙겨 갔습니다, 현장 덮으러 가는 겁니다’
'...'
'깨끗이 덮는 겁니다'
설명하는 공일병도 스스로 놀랍다. 어떻게 이 짦은시간에 이런 추리가 가능할까.. 스스로도 놀랍다.
공일병의 일목요연한 상황설명에 병사들 조금씩 안도의 한숨을 쉰다.
'아 그새끼 대갈 잘돌아가네.. 역시 가방끈 긴 새끼가 틀리구마'
그러나 가방끈이 길어서 그런게 아니라 유일하게 공일병만 이성을 잃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상황들을 봤다면 객관적으로 누구나 이런 추리가 가능했다. 그러나 제대를 코앞에 둔 다른 병사들은 이성을 잃었었기 때문에 이런 객관적인 상황판단이 불가능했었다.
그러나 확실히 결론이 나서 모든게 안전해질 때까지는 죽은듯이 조용히 있어야 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모두 잠을 자지 않기로 했다. 크게 반성하고 근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전혀 졸리운 기색은 없다. 워낙 긴장한 데다가 결론이 확실하게 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자. 위장한 얼굴도 씻지않고 복장도 그대로 전부 침상위에 앉아 있었다. 괜히 자빠져 자고 있는 모습 보이면 좋을리가 없다. 괜히 쓸렁대다가 군기교육대로 끝날 일이 영창으로 올라가는 수가 생긴다. 그래 자지말고 버티자. 이거였다. 영악한 것들.
두어시간쯤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씩 몸에 피로가 느껴지면서 졸음이 닥쳐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잠을 자면 안된다. 억지로 버텼다.
모두들 비몽사몽 혼미한 상태다. 그때 벌컥 내무반 문이 열리며 중대장이 들어왔다.
‘중대장님께 경례’
‘그냥 앉아.. 니들 지금부터 내 얘기 잘 들어’
평소의 중대장이 아니다. 굉장히 엄숙하고 긴장한 모습이다.
‘너 제대 얼마 남았냐?'
'한달 남았습니다'
너는? 너는?..’ 차례대로 묻는다.
공일병 차례다. 그러나 묻지 않는다. 새털처럼 많이 남아있었거든.
'어제 새벽... 아무일도 없었다. 알았냐..'
'예 알겠쉼니다'
그러리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중대장으로부터 확인을 받으니 형언하기 힘든 느낌이 치받친다. 살았구나... 목구멍에서 아랫배까지 뭔가가 쭉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곧이어 온몸에 힘이 쫙 풀린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경험 처음이다. 몸이 풀린다.
‘니들.. 입 다물고 살어, 사회에 나가서도 죽을때까지 이 얘기 하지마.. 무슨소린지 알겠나? 나중에라도 알려지면 니들 사회에 있다가도 다시 붙들려 온다. 군대엔 공소시효가 없어’
‘옜- 알게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중대원들한테도 절대로 무슨일이 있었는지 얘기하지 말아라.’
‘일단 빨리 씻고, 밥먹고 좀 자라’
‘에 알게쉼다’
잠을 자려고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는게 신상에 이로울 것 같다는 의견으로 그대로 자지 않고 버티기로 했다. 그러나 극도의 긴장감이 갑자기 풀리면서 쏟아져 내리는 잠에는 장사가 없었다. 다들 내무반 이곳저곳에 쭈그려 잠에 떨어졌다.
소대원들이 일과를 마치고 돌아왔다. 고참들이 아무 말 하지 않으니 전 소대원이 똑같이 침묵이다.
현장에 없던 다른 병사들과 같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무반에 섞여 있으니 지난밤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었다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진짜로 꿈을 꾼 듯한 딱 그런 느낌이다.
저녁먹고 공일병이 담배 피우러 나가는데 동기 원빵이 따라 나온다.
‘야 도대체 무슨일 있었던거냐? 분침호가 아주 작살이 났던데’
‘거기 어떻게 됐디?’
‘주변 수박밭도 아주 작살이 났던데.. 그거 니네가 다 터뜨려 먹은거지?’
‘아니..묻지마’
‘씨바 나한텐 얘기해도 돼, 어쩌다 다 터뜨려 먹은거냐?’
‘몰라 묻지마 이 씨바쉐이야’
현장을 직접 정리하고 온 넘이니 대충 짐작은 하고 물은 거였지만, 스스로 인정하는 거 하곤 틀릴거 같아서 끝까지 입을 다문다. 묻는 넘도 어차피 짐작하고 있던일이니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대단한 쉐이들이야.. 너 살아있는게 신기하다'
하나씩 하나씩 제대를 해 나간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제대병사가 나가기 전 꼭 치렀던 행사가 있었다. 당시 사고현장 멤버들이 몰래 모여 다짐을 하는 시간이다.
‘나가서도 죽을때까정 이야기하지 말자..’
군대에선 공소시효가 없고 언제라도 알려지면 다시 붙들려 들어올 수도 있다는 그말을 철떡같이 믿은 때문이다. 굳이 그 자리에서 초를 치진 않았지만 사실 말이 안된다. 공소시효가 없는 게 세상에 어디 있나? 물어볼 수도, 물어볼 데도 없으니.. 그저 한 십년쯤 되겠거니..하면서 이렇게 입조심할 뿐이지.
그 사고가 다른사람을 다치게 했거나 죽게 한 그런 사고는 아니고(별거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군대에서 초병이 근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만큼 큰 과오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여름이 다가오자 불과 몇 개월인데도 그 현장은 눈을 씻고 당시의 흔적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게끔 새로 자란 풀들로 덮혀 있고, 또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다행히 당시의 사고를 모두 까맣게 잊고 지내고 있다.
7년6개월 남한산성이라는 것도 상당히 과장된거 같고, 공소시효 운운하는 것은 더 말이 안되는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 그대로 입다물고 지내는 수밖에..
불과 서너달 후, 모두들 제대하고 나가니 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중 남아 있는 사람은 공일병뿐이다.
그렇게 그 사건은 공일병 마음속에만 남고 다른 이들에겐 모두가 잊혀졌다.
세월이 흘러 공일병이 제대할 때가 되었다. 근데 이전까지 전례가 전혀 없던 제대장병을 위한 중대장실 파티가 열린댄다. 갔더니 중대장이 그 좁은 중대장실에서 혼자 삼겹살을 굽고 있다.
‘앉아.. 다른 애들은 좀 있다 올거다’
공병장 상당히 불편하다. 아무리 제대말년이라지만 중대장과 둘이서 앉아있기가 여간 어색한게 아니다.
그날의 사고가 공병장 마음에만 남아있는 줄 알았더니 중대장 마음속에도 남아있었나 보다. 중대장이 이해는 된다. 또라이 제대하는데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다짐을 받아두고 싶었겠지.
‘어이 시한폭탄.. 고생 많았다.’
‘원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하하하..’ 과장되게 웃었다.
‘한잔 받아’ 소줏잔이 온다.
‘감사합니다’ 바로 들이키곤
‘중대장님도 한잔 받으십시요’ 바로 벽치기를 한다.
계속 오바를 한다.
‘새끼..’
슬쩍 웃지만..중대장.. 역시 이사람 무섭다. 오바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참 일 많았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저 양반.. 내 덕분에 표창도 받고, 또 내 덕분에 군대생활 완전히 접을 뻔도 했었지..
나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적이 많았겠지. 내가 얼마나 아슬아슬했을까..
공병장도 저양반때문에 별일 참 많았지.
덕분에 꽤 여러번 힘든 훈련 빠진적도 있고
덕분에 포상휴가도 나갔었고
반면, 저양반 덕에 남들 한번도 안 가는 군기교육대를 두번이나 갔다왔고..
아하.. 그렇구나..
제대 보름 남겨둔 공병장을 굳이 군기교육대에 보낸것이 마음에 걸려서 이러나보다..
사실 제대 보름남기고 갔었던 군기교육대는 정말 지옥같았었다. 중대장 욕 그때 정말 많이 했었지.
공병장 속이 그 일로 엉켜 있을까봐 그거 풀어주느라고..
‘말 안해도 알지?’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중대장님’
그렇게 공병장도 모든 것을 뒤에 두고 ‘안전하게’ ‘별탈없이’ 제대를 하였다.
그리고 공병장이 스스로 생각하던 공소시효 10년도 무사히 지나갔고
당시 연대장 사단장은 별넷까지는 아무도 올라가지 못했나 보다. 그들의 이름이 신문에 난 적이 없다.
공병장 탓은 아니다.
그 후로도 또 10년이 지나갔다.
사고싯점부터 따지면 20년이 넘게 흘렀다. 이제는 정말 모두 끝났다.
어차피 얼마 되지도 않았었을 공소시효가 끝났다는게 아니라 가끔 어쩌다가 꿈에 보여서 목을 죄던 그 불꽃에서 이제는 완전히 벗어난 것 같다.
예비역병장 공병장.
만으로 26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근데 그도 아직까지 불은 좀 무섭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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