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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그립거나 혹은 안타깝거나

1. 

삼년전 미국에서 떠난 친구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한국에서 친구가 왔었습니다기체 이상으로 인천 출발 두시간 지연, 겨우 출발했나 싶더니 다시 기체이상으로 일본에 착륙.. 예정보다 열두시간 지나 LA에 도착했습니다. 최초 출발지인 중국 싱가폴까지 따지면 무려 40몇시간 걸려 온거랍니다. ‘죽은새끼한테 인사하기 졸라 힘드네..’ 글로 옮겨쓰니 참 우악스런 말이지만 우리 첫마디는 이랬었습니다. 이래도 될만큼 우리는 가까운 친구였었습니다.

 

어제 오전, 그가 누운 곳에 갔습니다. ‘얌마.. 수천이 왔다..직접 와서 보니 아무래도 마음이 많이 다른 모양입니다. 수다스런 친구도 잠시 무거운 침묵에 빠졌습니다. 몇분간 그렇게 아무 말없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여기 화장실 있냐?’ 


똥 마렵답니다. 산자와 죽은자를 경계짓는 선언이었습니다. 살아있는 놈 똥누이기 위해 죽은 놈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나도 여기 오는거 이게 마지막인거 같다. 나중에 보자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다시 복기를 해봤습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해봤던 복기였지만 또 그랬습니다. 뭐였을까? 전체적인 정황은 이해되지만, 도대체 어떤 '객관적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지가 계속 의문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복기를 해봐도 역시 답은 하나였습니다. 그 스스로 일으키고 고집하던 자기의 생각을 그가 이기지 못했던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치열하게 자기의 생각과 싸우고 있었던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역시 제가 제 생각을 이기지 못한거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갑자기 떠나리라곤 그도 저도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이렇게 황망하게 끊어져버려 그도 많이 당황했을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좋아지겠지 했던 저도 그랬었습니다. ‘안타깝다이것이 살아있는 둘이 내린 마지막 결론이었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이기지 못했던 그가, 자기의 생각에 묻혔었던 제가 안타까웠습니다.

 

 

2. 

지난 3월 한국, 친구가 누운 곳에 갔었습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친구동생에게 온 전화에 흔들렸습니다. ‘작은 형이 형 많이 기다렸을거예요..’ 간신히 추스렸다가 대니보이를 듣고선 와락 터져버렸습니다. 계란말이를 놓고 소주를 부어주고 앞에 앉아있는데.. 옆에 있던 빈 종이컵이 혼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음악에 반응하듯 그렇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규호왔다..’ 승숙이에게 나즈막히 말했습니다. ‘그러네 규호왔네..’ 승숙이의 대답이 약간 떨렸습니다. 셋이 그렇게 같이 있었습니다. 떠나기 전 그가 겪었던 마음의 고통을 얘기했습니다. 무뚝뚝하면서 따뜻했던 그를 얘기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그 역시 자기의 생각에 이기지 못한거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많이 그리웠습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진한 그리움을 남기고 떠난 그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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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굉장히 가깝던 친구였는데 하나는 안타까움으로 남았고 하나는 그리움으로 남았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누군가가 더 행복합니까 아니면 내가 더 행복합니까? 내가 훨씬 더 행복합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누군가보다 내가 훨씬 더 괴롭습니다. 행복과 불행이 순전히 자기 마음에 달려 있는 겁니다. 나아가 이것이 '영원'토록 '안타까운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리운 사람'이 되기까지 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마음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고 누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내가 누구를 미워하고 있고 누가 나를 미워하고 있는지, 내가 내 생각에 얼마나 묻혀 살고 있는지, 내가 누군가에게 과연 그리운 사람이 될지..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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