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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Raven 과 Crow

미식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각 팀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었는데, 그 중 이상한 이름이 하나 있었다. 볼티모어 레이븐스(Baltimore Ravens).. 레이븐스? 사전을 찾아보니 ‘까마귀’란 뜻이다. 까마귀는 crow 아닌가? 아무튼 이렇게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워지는 모양이다. 스포츠팀의 이름에 별의 별 동물들이 다 등장하는 미국이니 까마귀라는 이름이라고 해서 놀라울 것은 아니겠으나, 아무리 그래도 NFL 풋볼팀의 이름이 ‘까마귀들’인 것은 좀 의아했다. 어떻게 ‘까마귀’를 팀 이름으로..

그 이유는 까마귀에 대한 옛 기억때문인 것 같다. 83년 1월 그 춥던 논산훈련소.. 하얀 눈밭을 새까맣게 덮고 있다가 짬밥통에 음식물이 버려지면 한꺼번에 ‘마귀처럼’ 달려들어 까악까악- 아귀다툼을 벌이던 그 수백마리의 까마귀들. 가뜩이나 배고프고 황량하던 훈련병들에게 그 까마귀떼의 소리와 모습은 참 싫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까마귀의 영어단어는 crow 였다. 우리집 새를 조사하기 시작했을때 조류도감을 찾아봤더니 까마귀는 역시 crow였다. 그래서 아무런 의심 없이 우리집 새 'crow'라고 쓰고 '까마귀'라고 주석을 달았었다. 그리고 그냥 싫어했었다. 새총으로 쏘고..

 American Crow
그러다 얼마후 못 보던 새 하날 발견해서 조류도감을 다시 보다가 우연히 crow 뒷 페이지에 raven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 레이븐도 까마귀였지 참.. 무슨 차이가 있나? 하지만 사진에서 보이는 생김새로는 전혀 구분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crow와 raven은 '전혀' 다른 새란다. 내가 훈련소 이후부터 싫어하던 그 까마귀가 crow, 그리고 raven은 우리나라엔 살지 않아 내가 전혀 모르는 새였던 것이다. 번역을 보니 '갈까마귀'라고 되어 있었는데, 조사를 해보니 이건 '잘못된 번역'이었다. 갈까마귀는 일반 까마귀들보다도 더 작은 종이란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이 새를 그냥 '레이븐'이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Common Raven
어떻게 다른지 찾아보니 많은 자료가 금세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미국 사람들도 많이 헷갈려 한다는 뜻이다. 자료의 대부분은 레이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공했는데, 아마도 자기들이 사랑하는 레이븐을 크로우 '따위'와 혼동하지 말라는 바램인 것 같다. 실제로 레이븐은 까마귀라기 보다는 '검은 독수리'같은 자태와 포스다. 둘의 차이를 보자.



그렇다면 우리 동네 까만새들은 과연 ‘크로우’인가 ‘레이븐’인가? 

위 동영상에서 배운대로 구분을 해보기 시작했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크기인데(레이븐이 거의 두배 가까이 크다), 우리집 위 창공엔 똑같은 종류들만 날아다니다 보니 그 크기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매(hawk)보다 큰걸 보면 아무래도 raven인 것 같은데, 우리집 매가 정확히 어떤 종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이걸로 결론 짓기는 무리다.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걸 보면 crow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울음소리는 raven에 훨씬 더 가깝다. 꼬리의 모양을 보려 열심히 살폈지만 아무래도 날아다니는 걸 관찰하다보니 확실치가 않다. 삼각형인것 같기도 하고 편평한 것 같기도 하다. 부리의 모양은 더더욱 분간이 힘들다. 뾰족한 것 같기도 하고 구부러진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나중에 동네 노인들에게 여쭤봐야 정체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새총으로 쫓아내던 그 녀석들이 점차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몇몇 동영상을 보니 강아지 못지않게 인간들과 친하다. 특히 raven이 더욱 그렇다. 어느 조류학자가 발표한 조류 지능지수 순위에 부동의 1위는 언제나 이놈들이다. 혹자들은 침팬지보다도 영리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마리 길러보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미국인들에게 이 새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Raven:
Introspection, courage, self-knowledge, magic.


Crow:
Justice, shape shifting, change, creativity, spiritual strength, energy, community sharing, balance.

 
보다시피 우리가 생각하는 '흉조' 까마귀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다. 둘 다 '靈物'급에 속한다. 앞으론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말아야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crow는 여전히 약간 꺼려진다. 다른 걸 떠나 그 울음소리가 영 듣기 싫다. 우리 동네 까만 새들이 부디 crow가 아니라 raven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