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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소나무.. 자신을 쳐내야만 하는 甲木의 운명

소나무의 독야청청.. 공생이 어렵다
난 소나무를 참 좋아한다. 집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큰 소나무가 많은 집’이었을 정도다. 물론 소나무(Pine Tree)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소나무처럼 생긴 모든 나무들을 다 포함한다. 가문비나무(Spruce) 전나무(Fir) 삼나무(Redwood / Cedar).. 내가 씨애틀 근처나 캐나다에 살고 싶다고 했던 이유나, 한국에 돌아간다면 강원도에 살겠다고 했던 것도, 바로 그 지역에 이런 나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Ponderosa Pine Tree 세 그루가 있다.

 

이 나무들을 가까지 접하게 되면서 내가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소나무.. 근처엔 도저히 다른 식물들이 살기 힘들다는 것. 이 소나무의 엄청난 생장력은 주변의 다른 나무들을 일방적으로 밀어 부친다. 위로도 모자라 아래로도 가지를 뻗쳐 주변 나무들을 괴롭힌다. 또 거의 ‘융단폭격’수준으로 이파리(Pine Needle)들을 떨어뜨리는데, 바람에 잘 날아가지도 않고 쉽게 썩지도 않는다. 그냥 켜켜이 쌓인다. 다른 식물의 싹은 물론 소나무의 새싹조차 아예 솟아 날 수 없는 거다. 소나무에 밀려 겨우 목숨을 부지하던 주변 나무들이 이 이파리 폭격에 더 시들시들해진다. 소나무 아랜 거의 죽음의 땅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주말이면 이 소나무 이파리들을 치우는 게 큰 일중의 하나다. 많이 떨어지는 계절엔 큰 쓰레기통(green container) 하나가 거의 다 찰 정도로 엄청나다. 작업을 하다 뾰족한 소나무 이파리에 손이 찔리는 건 다반사고, 이파리가 켜켜이 쌓인 곳은 발을 딛을 때에 조심해야 한다. 푹신거릴 뿐만 아니라 미끄럽기 때문에 언덕에서 발을 잘못 딛으면 미끄러져 뒤로 자빠지기 일쑤다. 그리고 너무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하다보니 view를 가린다는 윗동네 주민들의 항의도 거세다. 이 소나무.. 독야청청한 건 보기 좋지만, 참 문제가 많은 나무다. 


이지버튼 그녀
광고에 '도움이 필요할 때 누르라'는 Easy button 이 있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 이 사람은 주변사람 누구라도 도움을 청해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그 일을 해결해 준다. ‘쟤 미친 거 아냐?’ 할 정도로 남의 일에 발벗고 나선다. 자기가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이면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서라도 반드시 해결해 준다. 또 남에게 폐를 끼치는 법도 없다. 만사 사리분별과 공사가 분명하다.

근데 요즈음 그의 얼굴이 말이 아니다. 기미 같은 것이 온 얼굴을 덮어 시커멓다. 건강이 많이 상한 듯 했다. 농삼아 ‘한 석달동안 멀리 떠나 있어야 안죽겠네’ 했더니 자기 생각도 그렇단다. 안 그러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든단다. ‘단명할 팔자’라는 소릴 들었었는데 그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잔다르크 그녀. 갑목의 그녀
정말로 강한 甲木 일주다. 갑목중에서도 젤 고집이 세다는 甲子일주. (갑자는 아니지만 후배중에도 이 갑목 일주를 가진 이가 하나 있다. 갑진 일주인 그도 어지간히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안 듣는다.)

근데 이 ‘정의의 사도’가 왜 병이 났을까? 올 신묘년이 갑목일주에게 ‘양인’이라서 그런걸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의 경우엔 원인이 명확해 보인다. 외로움과 배신감 때문이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발등 찍히고, 도둑놈 사기꾼들이 끝없이 꼬이는데 정작 반면 마음 터놓고 얘기를 하거나 자길 도와줄 사람은 주변에 하나도 없다. 사람은 없고 파리떼만 들끓고 있었던 거다. 자기의 이런 상황에 크게 실망한 듯하다. 외로움과 배신감에 마음을 상했고 그게 결국 몸까지 상하게 한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앞장서기 좋아했으며 친구들 도와주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많았었고 늘 우두머리였다. 하지만 고집이 세고 남의 말 듣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주변엔 자연스레 그의 말에 순종하고 그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었다. 비록 의롭고 영리했지만 사람을 보는 눈이 멀기 시작한 것이다.

참 열심히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지치기 시작한다. 자기에게만 의지하려하는 사람들이 버겁다. 왜 이럴까? 왜 지쳤을까?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남의 생활에 간섭했기 때문이다. 지치다 보니 젊은 때엔 몰랐던 ‘본전’ 생각이 자꾸 나기 시작한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저것들은 왜 나한테 아무 것도?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무정함'이 '배신'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거다. 인생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건강도 급격히 나빠졌고.


'침잠'만이 살 길
어제 그와의 대화.. ‘충고하는 사람이 없겠구나..’ 싶다. 대화 중간 그의 반응 때문이다. ‘그거 저도 알아요. 근데 알면서도 안돼요..’ 말투는 공손하다. 하지만 아무리 공손해도 하는 말마다 ‘저도 알아요..’라는 반응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하기 싫게 만든다. 게다가 자기가 결론을 낸다. 무조건 떠나야 한단다. 대화 처음에 농반진반으로 얘기했던 ‘한 석달동안 완전히 떠나있기’에만 관심이 꽂혀 움직일 줄을 모른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현실적으로도 어렵고..’ 하지만 아무리 말려도 그 얘기만 자꾸 꺼낸다. ‘석달이 너무 길면 한달은 어떨까요..’

하지만 소용없다. 석달을 떠나 있으면 잠시 건강이 좋아질 지 모르나 돌아오면 또 되풀이된다. 그에게 필요한 건 하나밖에 없다. 甲을 누를 수 있는 庚의 기운을 스스로 북돋우는 것, 현대인의 언어로는 ‘침잠’이 되겠다. 침잠은 ‘마음 다스리는 공부’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미리 양해를 구하고 그의 종교(개신교)에 대한 신념이 어느 정도인지 물어봤다.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히 믿어요’ 한마디로 내 입을 가차없이 막아 버린다.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있는 게 다 기도의 힘이란다. 이러니 이제 남은 방법이란 혼자 ‘구름 쫓는 방법’밖에 없다.

‘지금은 갑옷입고 피 흘리는 잔다르크의 모습인데.. 마음 깊은 어딘가에 소녀의 감성이 남아있을거야. 잔다르크는 그만 버리고, 그 여자앨 끄집어 내서 앞으론 그 모습으로 살아가셔’ 

‘구체적인 방법은 직접 찾아봐. 끝’ 그의 반응..'아.. 알았어요' 하지만 무릎팍 도사의 해결책에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게 없잖아요’ 하던 여배우의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자기 마음 다스리는 걸 누가 도와준단 말인가. 고집을 꺾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버릇들이기를 누가 도와준단 말인가.


자신을 쳐내야 공생하는 소나무
위 사진의 커다란 소나무.. 지금 이렇게 됐다.


View 를 가린다는 원망.. 그러나 니들 view가 중요하냐 나무의 생명이 더 중요하지.. 버텼다. 그러자 그 원망이 드디어 서류로 접수되었다. 붙어봐야 우리가 진단다.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가지치기를 했다. 너무 가지를 많이 쳐내서 몸살을 앓는지 그 왕성하던 나무가 비실대고, 나무 꼴도 말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이제서야 살 것도 같다. 이웃과 괜한 감정싸움이 없어져서 좋고, 하늘이 많이 보여서 좋다. 또 쳐낸 가지덕분에 햇빛이 많이 비추게 되어 좋고, 떨어지는 이파리들이 훨씬 줄어서 너무 좋다. 무엇보다도 누릿누릿 기를 못 펴던 아래쪽 향나무와 작은 나무 풀들이 푸릇푸릇 기운을 내기 시작해서 좋다. 가지를 쳐내자 비로소 소나무 근처의 인간과 식물들이 사이좋게 사는게 가능해 진 것이다. 


갑목이 이 소나무를 닮았다
주변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고, 이파리를 치우러 왔던 사람들도 잠시 머물다 급히 떠나가고.. 그래서 몸을 잘라냈더니 그제서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소나무의 운명, 갑목의 운명과 닮았다.

그러나 갑목의 그 엄청난 고집과 남의 말 안듣는 버릇은 그리 쉽사리 고쳐지지는 않을 거다. 게다가 괜시리 기분 나쁜 양인살이 올해에 있으니.. 2011년은 갑목들에게 참 고난한 한해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