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메리카

덫(Trap)에 갇힌 쥐를 죽였다

1.
잔디 곳곳을 밤에 몰래 뒤집어 엎어놓는 놈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범행현장을 설명하니 유력한 범인으로 raccoon, skunk, possum 가 물망에 올랐는데 그중에서 범행현장에 가장 부합하는 놈은 possum이었다.

how to get rid of possum? 쥐약을 놓으라기도 하고, 덫으로 잡으라기도 하고, 여우 오줌으로 쫓으라는 사람도 있다. 잔디 좀 망쳤다고 쥐약으로 죽이기까지 하는 건 너무 비인도적인 것 같고, 여우 오줌은 비현실적인 것 같고, 그래서 trap으로 잡은 후 먼 곳에 풀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커다란 trap을 하나 사서 후미진 곳에 설치했다.

근데.. trap을 설치했다는 그 사실자체를 한동안 깜박하고 말았다. 그러다 어느 날 한쪽에서 퀘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그쪽으로 가보았다가, 내가 trap을 설치했었으며 거기에 뭔가 갇혀서 죽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뿔싸.. 이게 뭘까? 살은 다 없어지고 회색 털가죽만 남아있었는데, 그건 바로.. 토끼였다.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그 토끼가 우리가 예뻐하던 토끼, 당근을 주면 귀엽게 받아먹던 바로 그 토끼였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토끼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토끼 하나를 ‘굶겨’ 죽인 건 확실하다. 형언하기 힘든 묘한 심정.. 하루 종일 미안함과 죄책감이 떠나질 않았다. 토끼를 묻어주고 무시무시한 trap은 깊숙한 곳에 밀어 넣어뒀다.


2.
안방 옆 화단의 red apple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 다른 곳은 파랗게 풍성한데 그곳은 누렇게 뜨고, 새로 심어도 일이주 내에 역시 누렇게 뜨거나 비실비실 죽어버린다. 일년 가까이 이걸 반복했었다. 그래서 지난 주엔 red apple을 포기하고 생명력이 강하다는 꽤 큼직한 꽃나무 하날 사서 그곳에 새로 심었다. 아래서부터 줄기가 아주 풍성한 놈.

그 다음날.. 그 꽃나무에 물을 주러 갔다가 줄기들이 밑에서부터 반으로 나뉘어 갈라져 있는 걸 발견했다. 가만히 보니 어떤 동물이 길을 만드려고 그렇게 한 거였다. 결국 그동안 식물이 잘 자라지 못했던 건 어떤 동물의 범행 때문이었던 거다.

깊숙히 밀어뒀던 trap을 다시 꺼내 화단 앞에 설치했다. 범인을 잡아야 하기도 했지만 일단 어떤 놈인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trap의 문이 닫혀있다. 뭔가 안에 걸렸다는 거다. 어떤 놈일까? 어떤 놈이 일년 넘게 화단을 망가뜨렸던 걸까? 가까이 가서 보니.. ‘쥐’였다. 짙은 회색의 그 일반 쥐. 한국의 쥐보다는 훨씬 큰.

문제는 그때 부터였다. 과연 이 놈을 어떡한다? 좀 큰 동물이라면 멀리 데리고 가서 풀어줄 요량이었는데 이건 그냥 집쥐가 아닌가? 게다가 몇 년 전부터 내가 유난히 그 설치류를 싫어하게 되었기도 하고. 이걸 차에다 싣고 가는 것 부터가 찝찝하고 굳이 이걸 멀리에다 풀어줄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죽이기로 했다. 근데 이 놈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가 난감했다. 물론 예전 군바리 시절엔 이 정도는 그냥 삽날로 간단하게 끝냈었다. 근데 이제 그런 짓은 도저히 못 하겠다. 아무리 내가 설치류 쥐를 싫어한다 해도 차마 그렇게 죽이진 못 하겠다. 인터넷을 찾아봤다. how to kill a trapped rat? 비현실적인 대답들이 그득하다. 불쌍하니 멀리 풀어주란다. 풀어주긴.. 

그래서 좀더 구체적으로 찾아봤다. What is the most humane way to kill rats? 역시 비현실적인 대답뿐이다. 머리를 망치로 강하게 가격해서 순간적으로 죽이란다. 덫에 갇힌 쥐를 어떻게 꺼내서 어떻게 붙들고 어떻게 망치로 머리통을 가격하란 말인가? 그리고 만약 그랬는데도 쥐가 한번에 안 죽고 아파서 바둥거리면 그땐 또 어떡하고?

그냥 내버려둬서 서서히 굶겨 죽일까? 하지만 이건 너무 비인도적이다. 토끼에 대한 죄책감도 다시 살아나고. 그렇다면 저걸 죽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쥐약을 먹이는 것.

다행히 요즈음 쥐약은 피를 토하고 죽는 게 아니라 서서히 마비되어가면서 죽는 거란다. 그래서 trap안에 남아있던 음식물을 모두 치우고 쥐약 한 덩어리를 준비했다. 이제 던져 넣기만 하면 된다. 근데 그 순간 또 망설여진다. 이놈도 먹고 살자고 그런건데 화단 좀 망쳤다고 죽여버리는 게 좀 가혹하지 않나?

그래서 잠시 마인드컨트롤에 들어갔다. 이 놈은 내가 젤 싫어하는 바로 그 설치류다. 그러자 마음이 움직였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쥐약을 안에 넣었다. 쥐로 오랫동안 살면서 사람들 괴롭히느니 깨끗하게 정리하고 다시 태어나라..  다음 생엔 쥐로 태어나지 말고 부디 다른 동물로 태어나거라.

다음날 쥐는 죽었다.

'아메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Raven과 Crow 구별하는 방법  (11) 2011.12.08
Santa Ana 강풍이 몰고 온 '전기없는 세상'  (2) 2011.12.06
Raven 과 Crow  (12) 2011.09.29
우리집 새들을 소개합니다  (8) 2011.09.10
우리집 벌새  (12) 2011.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