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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Raven과 Crow 구별하는 방법

우리 동네 까만 새들을 한동안 까마귀(crow)인 것으로 알았었다. 까마귀를 별 이유도 없이 싫어하던 나는 그래서 그 새들을 늘 쫓았었다. 우리집 나무에 앉기라도 하면 바로 고성능 새총으로.. 하지만 아무리 미국 까마귀라고는 하지만 크기가 너무 크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그게 까마귀가 아니라 레이븐(raven)이라는 걸 알게 되었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인터넷에서 얻은 여러가지 구분법상 그들이 raven일 확률이 90%쯤 되었으나, 단 한가지 부분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건 crow’라는 부분에서 걸린 것이다. 우리 동네 까만새들이 많게는 수십마리의 떼를 짓기도 하기 때문이다. ‘떼지어 날아다니는 건 crow’이고 raven은 한마리나 한 쌍 정도로만 다닌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래서 동네 이장 할아버지에게 이메일로 물어봤다. 우리 동네 까만 새들이 도대체 뭡니까? 답장이 꽤 늦는다. 그 양반도 잘 몰랐는지 동네 다른 노인네들에게 내 질문을 포워딩했고, 답장들이 모이자 그걸 한꺼번에 보내준 것이다. 근데 동네 사람들 답변이.. 중구난방이다. crow라는 답변이 대세이고 raven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두사람이었다. 대부분은 crow이고는 일부가 raven이라고 하는 대답도 있었고.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시간만 나면 인터넷을 뒤지고 하늘을 살폈다. 두달여의 연구끝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동네 까만 새들은 raven이다. 구분법을 소개한다. 


크기
레이븐은 ‘매우 커다란 까마귀’다. 두 새는 샘김새가 거의 흡사한데 가장 큰 차이는 크기다. 부리 끝에서 꼬리 끝까지의 길이가 crow는 17 인치 정도이지만, raven은 24-27인치에 달한다. 한배 반정도의 차이다. 날개를 폈을 때의 wing span은 crow가 2.5 ft정도이고 raven은 3.5-4 ft정도다. 즉 하늘을 날 때엔 거의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무게 차이는 더 크다. raven이 crow에 비해 무려 3배정도 무겁다.

보다시피 크기에서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 두 새를 나란히 놓고 본다면 대번에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새를 같이 볼 기회란 사실 별로 없다. 그래서 한 종만 보면 그게 큰지 작은지 알 수가 없다. 까마귀도 가까이에서 보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용 가능한 크기 비교법은.. 자주 보는 다른 새들, LA에 제일 많은 새인 비둘기 갈매기와 비교하는 방법이다.. 크고 까만 새가 있는데 비둘기보다 크고 갈매기보다 작다면 crow다. 하지만 갈매기보다 크거나 비슷하고 매(red-tailed hawk)와 비슷하다면 raven이다. 차례대로 비교해 보자.

까마귀와 비둘기 (까마귀가 비둘기보다 한배반정도 크다)


까마귀와 갈매기(종에 따라 까마귀보다 두배 정도 큰 갈매기도 있다)


까마귀와 매(red-tailed hawk) 물론 종에 따라 까마귀 크기의 매도 있다.


레이븐과 갈매기(종에 따라 레이븐과 비슷한 크기의 갈매기도 있다)


레이븐과 매 (종에 따라 레이븐보다 작은 매도 있다)

우리 동네엔 red-tailed hawk와 raven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산다. 그래서 이 둘이 나란히 선회하는 걸 자주 본다. 레이븐이 자기 영역에서 매를 쫓아내려는 비행이다. 둘의 크기는 거의 같다. 햇빛의 방향에 따라 둘의 색깔이 구분되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모양도 흡사하다.


비행하는 모양

까만 새가 날개를 펄럭이면서 날아간다면 그건 crow다. 반면 날개를 펄럭이며 날기도 하지만 매나 독수리처럼 공중에서 큰 원을 그리면서 선회하는 시간이 길다면 그건 raven이다. 미국 만화영화에서 높은 절벽이나 산을 나타낼 때에 무리 지어 선회하는 새들을 많이 그리는데 그게 바로 이 raven이다. 까마귀는 날개 크기가 작아 근본적으로 이런 고공 선회가 어렵다.  

또 날다가 갑자기 급강하하거나 놀면서 비행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면 그것 역시 raven이다. crow는 급강하 하거나 노는것 처럼 비행하지 않는다. 또 날개를 폈을 때 raven의 날개 끝은 마치 손가락처럼 갈라져 있어서 흡사 독수리나 매와 같다. 물론 crow의 날개 끝도 약간 그렇지만 비행중엔 거의 그것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raven은 독수리와 매처럼 선회를 하기 때문에 이 벌어진 날개 끝이 매우 확연하다. 


꼬리의 모양
crow는 비교적 짧고 편평한 모양인데 반해 raven은 길고 다이아몬드 모양처럼 각이 져 있다. 하지만 착륙할 때나 방향을 바꿀 때 꼬리를 넓게 펴면 그게 편평한 건지 각이 진 건지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비행하는 동안’의 꼬리모양을 살펴야 한다. 그러나 이거 역시 따로 따로 보면 약간 헷갈린다. 부드러운 원형인지 각진 다이아몬드인지.. 하지만 레이븐의 꼬리가 아래 그림처럼 명확하게 각졌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비행이나 선회중인 경우 각이 두리 뭉실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래아래 사진처럼 저렇게 확실하게 각진 모양을 보기는 사실 어렵다.



서식지
도시 주택가에서 보이는 건 거의 대부분 crow다. raven은 산이나 숲에서 살기 때문에 주택가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산이나 숲에 있는 주택가에선 raven이 당연히 많이 보인다. LA의 경우 Hollywood Hills 근처에 레이븐들이 많이 사는데, 그곳엔 까마귀들이 없다. 대신 할리웃힐즈 아랫마을 주택가에선 레이븐과 까마귀들이 같이 있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울음소리
crow는 높은 피치의 까악까악-(caw caw) 하는 소리만 낸다. 주변에서 흔히 듣는 그 까마귀소리다. 하지만 raven은 그보다 훨씬 낮은 피치로 까악까악-(caw caw) 하거나, 워억워억(rock rock) 한다. 때로는 구슬 굴러가는 듯한 아기 울음소리 같은 것도 낸다. Raven의 소리는 얼핏 오리나 거위 울음소리와도 비슷하다. 어떤 때엔 밖에 오리나 거위가 온 것으로 착각을 할 정도다.
→ raven 소리 듣기
→ crow 소리 듣기


나는 소리
crow는 날개짓을 해도 별로 소리가 나지 않는데 비해 raven은 크기가 크기 때문에 날개 짓을 할 때 휙휙-(swish swish)하는 소리가 난다.


깃털의 색깔
햇빛에 비쳐졌을 때 오로지 까만 색이면 crow이고, 까맣지만 약간 보라빛 느낌도 나면 raven이다.


목의 깃털
목 부분에 풍부한 깃털이 있으면 raven이다. crow는 그냥 매끈하다.

부리의 모양
부리가 가늘고 뾰족하면서 똑 바르면 crow다. 반면 부리의 윗부분이 굵고 뭉툭하고 전체적으로 약간 구부러진 느낌이 난다면 그건 raven이다. 하지만 사실 이걸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자세히 보면 raven의 부리 윗쪽에 털이 덮여 있다고 하는데 이건 잡아서 보기 전엔 알 수 없겠다.


떼거리 - 틀린 정보
일반적으로 crow는 수십마리 떼지어 다니고 raven는 한마리 혹은 쌍으로 다닌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건 틀렸다. 홀로 다니는 crow도 많고 떼지어 다니는 raven도 많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동네 raven들에 대해 한동안 확신을 못 가졌던 것이 바로 이 정보 때문이었다.



레이븐은 강아지나 고양이보다 '훨씬' 더 영리하단다. 그래서 이 새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도 많다.(물론 불법) 유튜브를 보면 깜짝 놀랄정도로 영리한 애완 레이븐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이 새들을 꼬셔보기로 했다. 고깃덩어리도 놓아보고 근처에 오면 휘파람도 불어보고.. 근데 안된다.

워낙 영리한 탓인지 나를 기억하는 것 같다.
새총쏘면서 우리를 쫓아내던 그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