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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방울이의 작별인사

trap안에 갇혔지만 아직 살아있는 쥐를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다.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 집게로 몸을 잡고 머리를 망치로 강타하는 거라는데.. 이렇게 하기는 아무래도 좀 그렇다. 그래서 쥐덫을 놓기로 했다. 스프링으로 작동하는 그 전통의 쥐덫, 걸리면 거의 즉사하기 때문에 이게 그나마 좀 인간적인 것 같았다

지난 금요일 저녁, 한꺼번에 덫 여덟개를 설치했다그동안 trap으로 하면서 쥐 한마리 처리에 사나흘씩 소비했었던 것이 지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현장을 살피는데.. 눈에 보이는 곳에 놓아 두었던 덫 두개가 없어졌다. 덩치 큰 쥐가 걸려서 덫 채로 끌고 간 모양이다. 허긴 덫이 좀 작긴 작았다. 그 때 바깥을 살피러 나갔던 야채가 슬픈 얼굴로 들어왔다. 덫에 뭐가 걸려 죽어있는데 ''가 아니라 ''란다. 그것도 우리집 터줏대감 방울이..   

쥐 덫에 먹이로 '빵가루'를 놓은게 화근이었다방울이들에게 늘 주던 그 빵가루.. 새 한마리가 죽었는데 희한하게 가슴이 아파온다. 그럼 혹시 다른 덫에도 얘들이? 걱정스런 마음에 다른 덫을 살피는데 다른 덫 근처에 뭔가 웅크리고 있는게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 이번에도 방울이다.

.. 방울이를 두마리씩이나.. 시체를 집어들려는 찰나 방울이가 푸드득 움직이며 도망간다이 방울이는 아직 살아있었던 거다. 근데 멀리 못 간다. 다친거다. 일단 살리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그 방울이를 다시 잡으려는데 방울이가 계속 도망간다가만보니 날개와 다리가 멀쩡하다. 정상적으로 날지는 못하지만 한번 날개를 퍼덕이면 그래도 일이미터는 족히 움직인다. 다행이다 싶었다. 몇번을 잡으려 시도하다 방울이가 언덕 중간쪽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잡기를 포기했다. 저 정도 체력이면 곧 회복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방울이는 그 언덕에 꽤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한시간쯤 후에 다시 그곳에 가보니.. 방울이가 안 보인다. 아 다행이다. 기력을 회복해서 날아갔구나.. 


근데 그로부터 한시간 쯤 후 방울이가 다시 나타났다. 근데 이번엔 언덕위가 아니라 덱의 한가운데에 나타났다. 평소에 먹이를 먹던 그 자리도 아니고 그곳보다 훨씬 집과 가까운 덱의 한가운데에.. 마치 자기를 좀 봐 달라는 듯이 열린 공간에 나타난 거다

근데 열심히 움직여야 할 방울이가 왠일인지 한 자리에 가만히 웅크려 앉아 있기만 한다. 고개만 가끔 움직일 뿐. 햇볕을 쬐고 있는 건가? 일단 빨리 물과 먹을걸 줘야겠다. 늘 하던대로 휘파람을 불면서 방울이가 제일 좋아하는 해바라기 씨와 물을 준비했다, 그리곤 휘파람을 불고 방울이를 불렀다. 늘 하던대로. 방울아 밥먹자.. 휘파람과 목소리를 듣자 방울이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움직인다

슬그머니 방울이 쪽으로 먹이를 놓았다. 근데 먹이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그래서 좀더 가까이 밀어줬다. 역시 방울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평소에 그렇게 맛있게 먹던 해바라기 씨인데 전혀 반응을 안 하는 거다. 얘가 왜 이러지? 더 가까이 갔다. 30센티도 안되는 거리까지 갔는데도 방울이는 그대로 있다. 손을 살며시 댔는데도 도망가지 않는다. 휘파람 소리로 내가 누군지 알고 안심했던 것일까?

자세히 확인해 보니.. 한쪽 눈에 문제가 있다. 약간 짓이겨져 눈을 뜨질 못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리도 아래위가 맞지 않게 약간 돌아가 있다. 덫에 머리 부분을 맞아서 눈과 부리에 부상을 입은 거다. 얼마나 아팠을까.. 반대쪽 눈을 살피니 그 눈은 다행히 괜찮은 것 같다

방울이가 물끄러미 날 쳐다본다. 조금 전엔 너무 놀라서 기를 쓰고 달아나려 했었지만 알고보니 아침마다 먹이를 주던 그 사람이란 걸 이제야 안거다. 코 끝이 찡해진다. 내가 왜 이러지? 한줌도 안되는 새 한마리 때문에. 십분정도를 그렇게 방울이와 마주보며 앉아있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부디 이거 먹고 기운차려라.. 그런데 방울이는 계속 먹이에 관심을 두질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 같다부리가 돌아간 바람에 먹이를 못 먹는 것 같다. 할 수없이 주사기라도 이용해서 일단 물부터 먹여야겠다. 그래서 살며시 방울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데.. 그때였다

방울이가 웅크렸던 다리를 펴고 걷기 시작한다. 몇걸음 걷다가 다시 내 쪽으로 돌아오고, 또 몇걸음 걷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리곤 또 나를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고. 방울아 - 안으로 들어가자.. 한동안 집 안에서 살다가 다 나으면 다시 밖으로 나오자..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듯 방울이가 내 주위를 천천히 맴돈다

잠시 후 물끄러미 날 쳐다보던 방울이가 걸음을 옮긴다. 이번엔 덱 끝까지 걸어간다순간 방울이가 덱 밑으로 사라졌다. 앞이 온전히 보이지 않는 방울이가 날지 못하고 그만 덱 밑으로 떨어진거다. 황급히 달려가 내려다보니 다행히 향나무 가지들 밑에 방울이가 떨어져 있다. 몸을 움직이는 걸 보니 다행히 더 다치진 않은 것 같다

재빨리 덱 밑으로 내려갔다보이지 않는 한쪽 눈, 비뚤어진 부리.. 그리고 눈과 부리가 저 정도로 다쳤다면 뇌가 온전할 리도 의문이고. 빨리 데리고 와야 한다. 하지만 방울이가 떨어진 곳에 방울이는 없었다샅샅이 뒤졌다. 방울아- 방울아없었다. 그래.. 힘내서 돌아갔을 거야.. 어차피 이 부근이 방울이네 집이잖아. 잘 살거야

근데 몇시간 후에 그곳에 또 내려갔다. 마음이 영 편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상태론 하루도 아니 어쩌면 몇시간도 못 넘긴다. 어떻게든 방울이를 다시 찾아서 회복시킨 다음에 돌려보내야 했다. 꽤 멀리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사라진 방울이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 덫이 내가 놓은 줄은 모를테니 날 원망하진 않았을 거야' 애써 위로해 봤지만
'그동안 먹이줘서 고마워요' 하며 간것 같아서
'다친 날 따뜻하게 살펴줘서 고마워요' 하며 간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아프다. 차라리 날 원망하면서 갔다면 이렇게 마음이 아프진 않았을텐데..


물끄러미 날 바라보던 방울이의 얼굴.. 
아픈 몸을 끌고 일부러 나타난 방울이가 그렇게 우리에게 전해준 마지막 작별인사.. 


좀처럼 지워지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