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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Hollywood 일산화탄소 중독

연말의 새벽.. 헬리콥터 소리와 불자동차 소리에 잠이 잠깐 깼다. 소리가 가까운 것으로 보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불이 난 것 같다. 귀를 세우고 들어보니 우리 동네는 아니다. 우리 동네도 아닌데.. 그냥 계속 잤다.

아침까지도 헬기소리가 여전하다. 헬기가 아직도? 예사 작은 불이 아닌 모양이다. 뉴스를 들어보니 '웨스트헐리웃'에서 방화로 의심되는 불이 있어서 자동차와 아파트들이 불에 탄거란다. 웨스트헐리웃이라면 바로 아랫동네다. 밖을 내다보니 실제로 그쪽 하늘이 뿌옇다. 뭐 바람 좀 불면 곧 깨끗해지겠지..

하지만 다음날 아침,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졌다. 계곡 너머 앞동네가 희미할 정도다. 뿌옇기만 한게 아니다. 공기가 매캐하다. 몇년전 로스펠리츠 산불때완 다르다. 나무 타는 냄새가 아니라 유독물질들이 타면서 내뿜은 그런 나쁜 냄새다. 밤새 다른 방화사건들이 계속 또 있었단다. 어떤 미친 놈이.. 바람마저 잔잔해서 뿌연 하늘과 매캐한 공기는 하루 종일 계속 되었다. 목도 칼칼하고 저녁이 되니 눈이 따갑기 시작한다.

새해 아침,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세상은 별로 맑지가 않다. 지형상 나쁜공기들이 산이 넘지 못하고 우리동네에서 머물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다행히 오후 들어 바람이 약간 불기 시작한다. 내일이면 맑은 공기를 다시 마실 수 있겠다.  

새해 둘째날 아침, 일어나보니 세상이 깨끗해졌다. 밖으로 나가 맑은 공기를 맘껏 들이마셨다. 공기가 맑아진 겸에 미뤘던 일을 다 해치워버렸다. 뭐 대단한 일은 아니고 잡초(잡나무) 뿌리 캐내는 일. 근데 일을 다 마치고 아홉시가 되어오도록 어부인이 기침을 안하신다. 왠일이지? 날만 밝아지면 먼저 밖으로 나가던 사람이? 얼마 후 어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밥 달라고 하려는 찰나, 어부인의 낯이 창백함을 알았다. 왜 그래? 몰라 속이 안 좋아.. 어제 우리가 뭘 잘못 먹었지? 아무리 따져봐도 특별한 거 없다. 엊저녁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었나부다. 오늘은 아이스크림 먹지 말자.

그리고 오늘 첫 출근 날, 이번엔 내가 이상하다. 속이 닝닝하고 머리도 약간 어질하다. 어제 뭘 잘못 먹었나? 하지만 어젠 평소보다 더 연하게 먹었다. 어부인 속이 안좋고 했으니. 밤에 아이스크림도 안 먹고. 그럼 일하기 싫어서 이런건 모양이다. 아 띠바..

늦게서야 알았다. 아주 예전 삼사십년전에 이와 똑같은 증상을 겪었던 경험. 연탄가스중독.. 
할리웃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거였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