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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오랫만에 별을 보다

70년대 동해바다의 밤하늘은 ‘별(stars)천지’였다. 말 그대로 ‘하늘 반 별 반’이었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이 도대체 어떤 광경을 묘사하는지 생생히 보여주던 곳, 보석처럼 박혀있던 별들이 금세라도 후두둑 거리며 바다로 떨어질 것 같은 그런 하늘이었다.  

별들이 비워준 공간들도 그냥 까만 하늘이 아니었다. 길다란 연기처럼 은하수가 뒤덮고 있었다. 어렸을때부터 이해하기 어려웠던 가사 ‘푸른하늘 은하수~’.. 푸른하늘이면 낮이라는 얘긴데 낮에 무슨 은하수? 하지만 별이 많고 은하수가 있으면 밤하늘이 ‘푸른빛'을 띤다는 걸 70년대 동해바닷가가 처음 알려줬었다. 

해안가 모래언덕에 앉아 밤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지만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평상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면 온 시야가 별들로만 뒤덮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온통 하늘과 별들로만 이루어진 이상한 세상.

유명한 별자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북두칠성 카시오페아자리 오리온자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분해내는 별자리들이다. 국자모양, W자 모양, 네모 가운데 별 세개 나란히.. 어린 시절 남산 어린이회관 천체돔에 갔다가 감동을 받고 별자리 전설들을 몇개 외웠었었는데, 나중에 이게 아주 요긴하게 쓰일줄 그땐 몰랐었다. ^^

여학생들에게 잘 먹힌다.ㅋㅋ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누가 누구의 왕비이고..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를 질투해서.. 그래서 안타깝게 죽었는데 그 죽음을 가엽게 여긴 제우스가 별로 만들어줬다..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오리온으로 일차 분위기 조성한 후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혹시 전갈자리 알아?' 
'모르는데' 
‘자 봐. 저기 별 세개 수직으로 나란히 있는거 보이니?’
‘어디?’
‘자 봐바 저-기.. 아래 위로 하나씩 더 해서 원래는 다섯개’
‘아- 저거’
‘그게 전갈 대가리야.. 그리고 왼쪽밑으로 쭉.. 그리고 끝에 요렇게 꺾이잖아. 거기가 꼬리야’
‘어머 진짜 전갈처럼 생겼네. 와 신기하다.’
‘이건 여기 아니면 못봐. 여름에만 나오는데다가 낮은 하늘에 뜨기 때문에 도시에선 절대 못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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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 저녁, 마당에서 야채가 나와보라며 부른다. UFO가 하늘에 떠 있단다. 나가다 보니 마침 헬기 한대가 황급히 날아간다. ‘와- 지구 방위대다..’ 하지만 그녀가 UFO라며 가리키는 건 그냥 별이었다. 뭐 재밌는 비행기라도 되겠거니 기대하고 나왔던 건데.. 어쨌든 깜깜해지면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깜깜해 진후 나와 확인해 봤다. 역시 별이었다. 들어가려다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 봤다. 이게 대체 얼마만인가, 밤하늘을 쳐다 보는게.. 갯수를 셀 수 있을만큼 띄엄띄엄 별들이 박혀있다. 그래도 북두칠성과 오리온은 또렷이 보인다. 카시오페아는 긴가 민가 확실히 모르겠고.. 혹시나 하고 전갈자리를 찾아봤다. 갑자기 웃음이 번진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어디 갔지? 아 참 전갈자리는 여름에만 보이지.ㅎㅎ 입가에 또 웃음이 번졌다. 

삼십몇년전 동해바다에서 보던 별을 LA에서 찾다가 연신 웃음만 터져 나온다.
별자리 얘기에 깜박 넘어가던, 아니 넘어가는 척하던 그 처자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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