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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초음속 세월

안경이 자꾸 둘로 분해가 된다. 무테 안경인데 테를 고정하는 안경알의 구멍이 헐거워져서 그렇다. 꽉 끼워놓으면 일주일 정도는 그런대로 지나간다. 새로 한지 아직 2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새 다시 바꾼다는 게 좀 그래서 불편하긴 하지만 좀 더 버티기로 했다. 그런데 갈수록 나빠져 이제는 하루에도 한번씩은 빠지는 것 같다. 잘못하다간 운전하다가 안경이 분해되어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 무슨 안경이 2년만에 부서지냐.. 할 수 없이 안경점엘 갔다.

파일을 찾아야 한다며 언제 한 안경이냐고 묻는다. '한 2년쯤..'
한참만에 내 파일을 가지고 온다. '2년전이 아니라 2007년이셨는데요'

뭐 2007년? 5년전이라고? 그럴리가 없다고 잠시 우겨보다가 곧 인정했다. 기록이 당연히 맞겠지.. 5년전 일을 2년전으로 기억하고 있다니..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 실제 세월은 두배이상 빨리 지나가 버렸다. 세월이 '쏜살'이 아니라 '초음속' 수준으로 흘러가버린거다.

쓴웃음이 나온다. 나이가 들었구나.. 나이가 들면 이렇게 세월이 빨리 가는 이유.. 크게 두가지다.

첫째, 기억력이 떨어져서 지나간 일들을 듬성듬성 기억하는 것.
둘째, 생활패턴이 단순해서 세월흐름을 가늠할 특징적인 사건이 없는 것. 

두가지 다 정확히 내 경우와 맞아 떨어진다. 기억력이 떨어진거.. 확실하다. 얼마전 멜로디 연주곡 Danny Boy와 Maria Elena를 마스터한다고 한달정도 삐꾸(Pick)만 잡았던 적이 있었다. 그 두곡을 겨우겨우 마쳤다. 근데 이 두곡을 얻은 대신 잃어버린 게 있었다. 한달사이에 핑거스타일 레퍼토리의 상당부분이 날아가버린거다. 오래전부터 연주하던 곡들은 남아있었지만 일이년사이 추가됐었던 곡들은 악보를 첨부터 다시봐야 할 정도로 날아가버렸다. 그래서 날아간 핑거스타일 곡들을 복구하느라 다시 두어달을 보냈더니, 이번엔 기껏 완성한Danny Boy와 Maria Elena가 다시 가물가물해져 버렸다. 

얼마전 live 기기에 온 신경을 쏟던 내게 고무밴드님이 곧 '녹음'도 시작하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이러다간 연주는 고사하고 자칫하다간 내가 그런 곡을 연주했었다는 기억마저 없어지지 않겠는가. 이런 기억력을 믿고선 안심이 안된다. 녹음이든 녹화든 '기록'을 해둬야겠다.

그리고 내 생활패턴.. 1년 365일이 똑같다. 징그러울 정도로 밋밋한 일상이다. 세월을 가늠할 특징적인 사건자체가 아-예 없다. 잠시동안 내 인생모토인 'work hard, retire young!' 때문이다. 증말 드럽게 재미없는 생활.. 그래서 누군가 내게 이랬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이 사슈?'

하지만 조금만 더 버티련다. 세월이 잠시동안만은 지금처럼 팍팍 흘러서, 세월을 가늠할 특징적인 사건들이 많이 있는 그런 인생이 턱- 오기를 바란다. 다리 튼튼하고 에너지 넘칠때 맘대로 놀 수 있게 말이다. 지금은 비록 죽을만큼 지루한 인생이지만 그때까진 계속 work hard 다.

이렇게 세월을 빨리 보내면.. 가카 퇴임하시는 날이 빨리 오는게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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