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 걱정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생각해서 현재에서 일어난 일처럼 착각할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과거에 겪었던 일을 다시 기억해서 마치 현재에 일어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면 마음이 괴로워지는 것과 같지요. 여러분들은 TV에서 연속극을 볼 때 사랑하는 남자가 죽어서 주인공 여자가 울거나 여자가 죽어서 남자가 울면 덩달아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전원을 끄면 그런 슬픈 상황이나 사람은 없고 그냥 TV이라는 물건만 있어요. 그렇다면 이 아무것도 아닌 것에 왜 울까요? 그것은 우리가 연속극에 몰입되어 있을 때는 TV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현실과 동일시하는 착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거나 웃는 것도 책 속의 일을 내가 지금 경험하는 현실로 착각을 하기 때문이에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꿈을 꿀 때는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속에 빠져 있을 때는 꿈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꿈속에서 울기도 하고 두려워서 도망가기도 하고 아깝다고 안 내어놓으려고도 하지요. 꿈인 줄 안다면 누가 달라고 하면 줘 버리고 누가 가자고 하면 가겠지요. 눈을 뜨면 꿈인 줄 알지만 눈을 감으면 꿈이 현실이에요.
그런 것처럼 내가 과거의 기억을 되새겨서 내 머릿속을 차지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이 되어 버립니다. 마치 꿈처럼 말이지요. 여러분들이 부모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 자기 부모님 생각을 하면 눈에 눈물이 나는 이유도 그것이 지금 현실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해서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처럼 내가 생각을 하면 머릿속에서는 현실이 되어 버려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이것이 다 마음의 장난이에요. 그렇다고 과거를 잊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은 있지만 현재화하지는 말라는 말이에요. 과거의 기억 속에 사는 사람도 미래의 염려 속에 사는 사람도 꿈속에 사는 사람이에요. 둘 다 현재에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살아 있으되 살아있는 게 아니라 꿈속을 헤매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앉으나 서나 과거의 기억 속 아니면 미래에 대한 생각 속에서 살고 있어요. 이것을 번뇌라고 합니다. 그래서 꿈에서 깨라는 거예요. 우리들은 늘 꿈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이에요. 괴롭다고 울고불고 아우성치거나 좋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 다 꿈이에요. 가만히 누워 자는 사람이 악몽을 꾸면서 사람 살려 달라고 고함을 치면 깨어 있는 사람이 볼 때는 ‘아이고 잠꼬대도 많이 한다.’ 하지요. 잠꼬대는 헛소리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인생살이에서 희로애락을 일으키는 것은 헛소리, 잠꼬대에 속합니다. 그러니 과거의 상처 때문에 지금도 괴롭게 사는 사람은 꿈속에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 몸에 한번 비유해 봅시다. 만약에 내 어깨에 상처가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살짝만 건드려도 아프지요. 그래서 “야!” 하고 성질을 버럭 냅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볼 때는 과민 반응한다고 해요. 상처를 입은 사람은 “네가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해 놓고는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어?” 하면서 화를 더 내는 거예요. 그때 부딪친 상대방은 도대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요. “내가 뭘 어쨌는데 네가 화를 이렇게 내느냐” 하면서 싸움이 점점 커지는 거예요. 아내는 나름대로 과거의 상처가 있는데 남편은 그것을 전혀 모르니 남편은 자기 생각대로 얘기를 해요. 그것이 아내의 상처하고 결합하면 마음의 상처가 굉장히 커져서 남편이 모독하는 것처럼 느끼지요. 아내가 토라져서 말도 안 하고 화를 내면 남편이 볼 때는 아내가 왜 저러는지 모르니까, “그 여자 성질 참 더럽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5-60대 중에는 집이 가난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대학 못 간 여자 분들이 많습니다. 오빠만 보내주고 자기는 안 보내주고 친구들도 다 자기보다 공부 못 해도 대학 갔는데 자기는 공부도 잘 했는데 대학을 못 갔다면 학벌에 대한 상처가 꽤 크겠지요. 이런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있는 데서 서로 소개하다가 “몇 학번이니?” 하고 물으면 이 사람은 상처를 크게 받습니다. 대번에 하는 소리가 “여기 대학 자랑하려고 모였나?”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대학 나온 사람들은 누구를 멸시하려고 몇 학번이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몇 살이냐고 묻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물었는데 그 사람은 상처를 입는 거지요. 이런 일들이 하나 둘 쌓이면 갈등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그렇듯 별일 아닌 것을 가지고 고통을 키우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려서 없고 한 밤의 꿈과 같은 것인데 그 꿈을 현실처럼 움켜쥐고 살아갑니다. 어릴 때 내가 뭘 어쨌다 하는 과거의 기억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과거의 상처를 청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처가 되살아날 때 ‘이것은 내 마음이 일으키는 거다.’라고 알아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에요. 예를 들어 우리가 버스를 기다릴 때 마음만 살펴봐도 마음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에 쫓길 때는 버스가 늦게 오면 발을 동동 구르고 도대체 기사가 뭐 하고 있냐며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친구하고 정류장에서 약속을 했는데 친구가 좀 늦게 오면 이번에는 버스가 올까봐 조마조마 하고 일찍 온다고 난리죠. 버스는 그냥 다만 올 뿐입니다. 늦게 온다고 불평할 일도 아니고 빨리 온다고 조마조마 할 일도 아닌데 내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안절부절 하는 거예요. 이게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마음이 일으키는 것을 알면 같은 현상이 일어날 때 ‘버스는 내가 빨리 오라고 해서 빨리 오는 것도 아니고 늦게 오라고 해서 늦게 오는 것도 아니다. 늦게 오면 좀 늦으면 되고 빨리 오면 보내고 다음 차를 타자.’ 하게 되지요.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집착을 하면 큰 일이 되고 아무리 큰일이라도 집착을 안 하면 아무 일도 아니게 되는 거예요 나로부터 일어난 마음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내가 나를 괴롭힐 때 ‘아 내가 여기에 집착하고 있구나, 집착함으로써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면 마치 쥐가 쥐약인 줄 알면 아무리 맛있어도 먹지 않는 것처럼 근심걱정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놓습니까?”라고 묻는데 답은 ‘그냥 놓는다’는 거예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하지만 말이 됩니다. 컵이 아주 뜨겁다고 합시다. 그럼 내가 쥐어 보고 손이 델 정도로 뜨거우면 어떻게 놓습니까. ‘앗, 뜨거’ 하고 그냥 놓아버리잖아요. 어떤 사람이 컵을 어떻게 놓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그냥 뜨거우니까 놓았다는 대답밖에 못 하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컵을 쥐고 ‘앗 뜨거, 앗, 뜨거.’ 하면서 방법을 몰라서 못 놓는다고 해 봐요. 정말 놓는 방법을 몰라서 못 놓는 것입니까? 방법을 모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갖고 싶은 욕심 때문에 놓기 싫어서 못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뜨거운 게 싫으면 놓거나, 갖고 싶으면 손을 데는 과보를 받는 두 길밖에 없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좋다고 손을 데는 과보를 받는 거고 지혜로운 자는 아무리 좋아도 손을 데어 가면서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놓는 것이지요.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놓는 것입니다.
내가 남편에게 잘 되라고 잔소리를 했는데 결과를 보니 더 나빠졌어요. 결과가 나쁜 줄 알면 더 이상 안 해야 하는데 또 합니다. 그건 남편 문제가 아니고 내 집착에서 오는 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설령 그 습관이 아직 남아 있다 하더라도 이젠 남편한테 시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잔소리하는 습관이 나오면 ‘아이고, 또 내 문제구나.’ 하고 받아들이면서 멈추면 됩니다. 이렇게 내 문제로 받아들여야 여러분들이 갖고 있던 많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마음공부를 하면 아무리 나쁜 경험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 경험이 오히려 자신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내가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기 때문에 나는 불행한 게 아니라 내가 그런 경험을 겪고 괴로워하다가 ‘아, 이게 내가 나를 괴롭히는 거구나’ 하고 놓아버린 경험이 있다면, 이 사람은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더 복된 사람이 됩니다. 만약에 자녀나 이웃에 누가 성추행 당한 경험이 있어 이 사람에게 상담을 하면 그 태도가 경험이 없는 사람하고 판이하게 다를 겁니다. 먼저 아이를 위로할 줄 알고 과거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서 이 아이가 얼마나 힘든지를 이해하고 상처가 되지 않도록 지도해주는 힘이 있게 되지요.
마음공부를 하면 재앙은 안 받고 복을 받는 게 아니라 재앙을 복으로 돌려버리는 것이지요. 재앙을 받아도 복이 되어 버리는데 천하에 복이 아닌 게 뭐가 있겠어요? 그래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이런 기초 위에 바른 마음을 갖고 정진을 해 간다면 만약 하나님이나 신이 있다면 이런 사람 복 안 주고 누구를 주겠어요? 그래서 복도 덤으로 받는 것이지요. 또 누가 복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복을 만들지요. 이렇게 공부를 해야 참으로 복 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법륜)
→ 사주팔자 1 – 팔자 더러운 놈은 어찌 살란 말이냐
→ 사주팔자 2 – 안 좋으면 바꿔야지
→ 사주팔자 3 – 인생의 고비에 서서
→ 사주팔자 4 – 원하는대로 안되는 것이 인생살이
→ 사주팔자 5 – 근심걱정을 놓는 법
→ 사주팔자 6 – 인생에는 계획이 없다
→ 사주팔자 7 – 자투리, 토정비결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꿈을 꿀 때는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속에 빠져 있을 때는 꿈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꿈속에서 울기도 하고 두려워서 도망가기도 하고 아깝다고 안 내어놓으려고도 하지요. 꿈인 줄 안다면 누가 달라고 하면 줘 버리고 누가 가자고 하면 가겠지요. 눈을 뜨면 꿈인 줄 알지만 눈을 감으면 꿈이 현실이에요.
그런 것처럼 내가 과거의 기억을 되새겨서 내 머릿속을 차지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이 되어 버립니다. 마치 꿈처럼 말이지요. 여러분들이 부모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 자기 부모님 생각을 하면 눈에 눈물이 나는 이유도 그것이 지금 현실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해서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처럼 내가 생각을 하면 머릿속에서는 현실이 되어 버려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이것이 다 마음의 장난이에요. 그렇다고 과거를 잊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은 있지만 현재화하지는 말라는 말이에요. 과거의 기억 속에 사는 사람도 미래의 염려 속에 사는 사람도 꿈속에 사는 사람이에요. 둘 다 현재에 사는 사람이 아니에요. 살아 있으되 살아있는 게 아니라 꿈속을 헤매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앉으나 서나 과거의 기억 속 아니면 미래에 대한 생각 속에서 살고 있어요. 이것을 번뇌라고 합니다. 그래서 꿈에서 깨라는 거예요. 우리들은 늘 꿈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이에요. 괴롭다고 울고불고 아우성치거나 좋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 다 꿈이에요. 가만히 누워 자는 사람이 악몽을 꾸면서 사람 살려 달라고 고함을 치면 깨어 있는 사람이 볼 때는 ‘아이고 잠꼬대도 많이 한다.’ 하지요. 잠꼬대는 헛소리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인생살이에서 희로애락을 일으키는 것은 헛소리, 잠꼬대에 속합니다. 그러니 과거의 상처 때문에 지금도 괴롭게 사는 사람은 꿈속에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 몸에 한번 비유해 봅시다. 만약에 내 어깨에 상처가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살짝만 건드려도 아프지요. 그래서 “야!” 하고 성질을 버럭 냅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볼 때는 과민 반응한다고 해요. 상처를 입은 사람은 “네가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해 놓고는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어?” 하면서 화를 더 내는 거예요. 그때 부딪친 상대방은 도대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요. “내가 뭘 어쨌는데 네가 화를 이렇게 내느냐” 하면서 싸움이 점점 커지는 거예요. 아내는 나름대로 과거의 상처가 있는데 남편은 그것을 전혀 모르니 남편은 자기 생각대로 얘기를 해요. 그것이 아내의 상처하고 결합하면 마음의 상처가 굉장히 커져서 남편이 모독하는 것처럼 느끼지요. 아내가 토라져서 말도 안 하고 화를 내면 남편이 볼 때는 아내가 왜 저러는지 모르니까, “그 여자 성질 참 더럽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5-60대 중에는 집이 가난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대학 못 간 여자 분들이 많습니다. 오빠만 보내주고 자기는 안 보내주고 친구들도 다 자기보다 공부 못 해도 대학 갔는데 자기는 공부도 잘 했는데 대학을 못 갔다면 학벌에 대한 상처가 꽤 크겠지요. 이런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있는 데서 서로 소개하다가 “몇 학번이니?” 하고 물으면 이 사람은 상처를 크게 받습니다. 대번에 하는 소리가 “여기 대학 자랑하려고 모였나?”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대학 나온 사람들은 누구를 멸시하려고 몇 학번이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몇 살이냐고 묻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물었는데 그 사람은 상처를 입는 거지요. 이런 일들이 하나 둘 쌓이면 갈등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그렇듯 별일 아닌 것을 가지고 고통을 키우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려서 없고 한 밤의 꿈과 같은 것인데 그 꿈을 현실처럼 움켜쥐고 살아갑니다. 어릴 때 내가 뭘 어쨌다 하는 과거의 기억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과거의 상처를 청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처가 되살아날 때 ‘이것은 내 마음이 일으키는 거다.’라고 알아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에요. 예를 들어 우리가 버스를 기다릴 때 마음만 살펴봐도 마음이 수시로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에 쫓길 때는 버스가 늦게 오면 발을 동동 구르고 도대체 기사가 뭐 하고 있냐며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친구하고 정류장에서 약속을 했는데 친구가 좀 늦게 오면 이번에는 버스가 올까봐 조마조마 하고 일찍 온다고 난리죠. 버스는 그냥 다만 올 뿐입니다. 늦게 온다고 불평할 일도 아니고 빨리 온다고 조마조마 할 일도 아닌데 내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안절부절 하는 거예요. 이게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마음이 일으키는 것을 알면 같은 현상이 일어날 때 ‘버스는 내가 빨리 오라고 해서 빨리 오는 것도 아니고 늦게 오라고 해서 늦게 오는 것도 아니다. 늦게 오면 좀 늦으면 되고 빨리 오면 보내고 다음 차를 타자.’ 하게 되지요.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집착을 하면 큰 일이 되고 아무리 큰일이라도 집착을 안 하면 아무 일도 아니게 되는 거예요 나로부터 일어난 마음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내가 나를 괴롭힐 때 ‘아 내가 여기에 집착하고 있구나, 집착함으로써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면 마치 쥐가 쥐약인 줄 알면 아무리 맛있어도 먹지 않는 것처럼 근심걱정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놓습니까?”라고 묻는데 답은 ‘그냥 놓는다’는 거예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하지만 말이 됩니다. 컵이 아주 뜨겁다고 합시다. 그럼 내가 쥐어 보고 손이 델 정도로 뜨거우면 어떻게 놓습니까. ‘앗, 뜨거’ 하고 그냥 놓아버리잖아요. 어떤 사람이 컵을 어떻게 놓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그냥 뜨거우니까 놓았다는 대답밖에 못 하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컵을 쥐고 ‘앗 뜨거, 앗, 뜨거.’ 하면서 방법을 몰라서 못 놓는다고 해 봐요. 정말 놓는 방법을 몰라서 못 놓는 것입니까? 방법을 모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갖고 싶은 욕심 때문에 놓기 싫어서 못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뜨거운 게 싫으면 놓거나, 갖고 싶으면 손을 데는 과보를 받는 두 길밖에 없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좋다고 손을 데는 과보를 받는 거고 지혜로운 자는 아무리 좋아도 손을 데어 가면서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놓는 것이지요.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놓는 것입니다.
내가 남편에게 잘 되라고 잔소리를 했는데 결과를 보니 더 나빠졌어요. 결과가 나쁜 줄 알면 더 이상 안 해야 하는데 또 합니다. 그건 남편 문제가 아니고 내 집착에서 오는 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설령 그 습관이 아직 남아 있다 하더라도 이젠 남편한테 시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잔소리하는 습관이 나오면 ‘아이고, 또 내 문제구나.’ 하고 받아들이면서 멈추면 됩니다. 이렇게 내 문제로 받아들여야 여러분들이 갖고 있던 많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마음공부를 하면 아무리 나쁜 경험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 경험이 오히려 자신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내가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기 때문에 나는 불행한 게 아니라 내가 그런 경험을 겪고 괴로워하다가 ‘아, 이게 내가 나를 괴롭히는 거구나’ 하고 놓아버린 경험이 있다면, 이 사람은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더 복된 사람이 됩니다. 만약에 자녀나 이웃에 누가 성추행 당한 경험이 있어 이 사람에게 상담을 하면 그 태도가 경험이 없는 사람하고 판이하게 다를 겁니다. 먼저 아이를 위로할 줄 알고 과거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서 이 아이가 얼마나 힘든지를 이해하고 상처가 되지 않도록 지도해주는 힘이 있게 되지요.
마음공부를 하면 재앙은 안 받고 복을 받는 게 아니라 재앙을 복으로 돌려버리는 것이지요. 재앙을 받아도 복이 되어 버리는데 천하에 복이 아닌 게 뭐가 있겠어요? 그래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이런 기초 위에 바른 마음을 갖고 정진을 해 간다면 만약 하나님이나 신이 있다면 이런 사람 복 안 주고 누구를 주겠어요? 그래서 복도 덤으로 받는 것이지요. 또 누가 복을 주지 않아도 스스로 복을 만들지요. 이렇게 공부를 해야 참으로 복 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법륜)
→ 사주팔자 1 – 팔자 더러운 놈은 어찌 살란 말이냐
→ 사주팔자 2 – 안 좋으면 바꿔야지
→ 사주팔자 3 – 인생의 고비에 서서
→ 사주팔자 4 – 원하는대로 안되는 것이 인생살이
→ 사주팔자 5 – 근심걱정을 놓는 법
→ 사주팔자 6 – 인생에는 계획이 없다
→ 사주팔자 7 – 자투리, 토정비결
'요팡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주팔자 7 - 짜투리, 토정비결 (0) | 2008.01.26 |
---|---|
사주팔자 6 - 인생에는 계획이 없다 (0) | 2008.01.19 |
사주팔자 4 - 원하는대로 안되는 것이 인생살이 (0) | 2008.01.17 |
사주팔자 3 - 인생의 고비에서 (0) | 2008.01.16 |
사주팔자 2 - 안 좋으면 바꿔야지 (0) | 2008.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