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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수행? 깨달음? 1 - 그게 뭔데?

‘중도 제 머리는 못 깎는다’ 고 하지 않습니까? 이게 무슨 뜻일까요? 진짜로 자기 두발을 못 깎는다는 말일까요? 그렇다면 ‘이발사도 자기 머리는 못 깎는다’ 라고 했겠지요. 그게 아니지요. 대중들에게 도움되는 말 잘하시는 스님이라 할지라도 막상 내 맘 다스리는 일에는 서툴러서 스님들 역시 때로는 분을 삭히지 못해, 어른의 말씀을 듣거나 암자에 틀어박혀 힘들게 마음을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좋은 말씀을 해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습니다. 저도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님, 그리고 법륜스님의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내가 희미하게 밖에 떠올리지 못하던 모습들을 그분들은 유리알처럼 맑게 이야기 해 주십니다.

혹시 이렇게 생각해 본적 있습니까? 그분들의 일상이 과연 그분들의 말씀과 일치할까?
글쎼요.. 저는 그분들의 일상생활들이 그분들의 말씀과 일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을 貶下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곳에서도 숭배가 싹틀 수 있다는 걸 경계하는 겁니다. 더 까놓고 얘기해 볼까요? 그분들은 그게 직업입니다. 좋은 말씀과 글을 사람들에게 많이 전해주는 것이 그분들의 직업입니다. 물론 그분들을 근거리에서 자주 뵌 분들은 제 말을 인정하지 않으실 겁니다. ‘일상에서도 흐트러짐 없으십니다’ 하실겁니다.

한의학에서 체질을 따지는 사상의학에서 성정을 가지고 체질을 구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접근에서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습득하여 언행을 교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언행이 본질이고 어떤 언행이 노력에 의한 가식인지는 알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반인들도 이럴진대 하물며 ‘수’가 아주 높은 분들의 경우엔 거의 구분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법정스님과 이해인수녀님과 법륜스님을 존경합니다. 허상에 대해 예를 들려다보니 본의 아니게 제가 존경하는 분들의 존함을 이렇게 오해받기 쉬운 구절에 올렸습니다.죄송합니다.스님 수녀님.)  



그래서 저는 성철스님을 참 좋아합니다. 이 분의 경우엔 그분의 말씀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분의 ‘솔직함’을 좋아합니다.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자길 서운하게 대한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잘못 된 일에 노여워하기도 하고, 화가 나면 욕도 거리낌없이 쏟아내는 그분의 그 거리낄 것 없는 솔직한 성정을 좋아합니다. 세상사람이 당신을 생불이라고 추앙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깡패처럼 행동하던 그분의 자신감을 좋아합니다. ‘지금껏 너희들 속여서 미안했다..’ 고백하고 가시던 그 솔직함과 자신감을 좋아합니다. (이 말의 뜻을 놓고 의견이 분분함을 압니다. 지금은 그 얘길 하는게 아니니 생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또는 ‘지 조때로의 신념’에 따라 수행을 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수행을 하지만 일부는 전문적인 길로 들어서기도 합니다. 자기자리에서 하면 보통 ‘수양’이라고 말하고 좀더 전문적으로 자리 깔고 들어서면 ‘수행’이라고 말하겠지요. 잘은 모르지만.. 비우고, 버리고, 깨어있는 훈련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절제하고,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고, 늘 깨어있으려 하는 것.
이것은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이거 아주 부자연스러운 것이며 굉장히 불편한 시도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탐욕스럽고, 파괴적입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아무리 절제하면서 살려고 해도 때때로 그런 본능이 불쑥 고개를 내미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러나 이럴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수양이 덜 됐군..’ 어디까지 도달하는 것이 수양의 끝인지는 모릅니다만, 본능이 자주 꿈틀대는 사람을 수양이 덜 된 인간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주 일반적입니다.

수양을 좀더 전문적으로 하는 수행. 이런 수행은 보통 극한의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을 겪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든가.


미술계의 해묵은 논쟁, '추상화는 사기다'.
전문가들이 보면 틀림없이 뭔가 다를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그러나 알고 봤더니 추상화는 전문가들이 봐도 추상화더군요. 그러니 '추상화는 사기'라는 소리가 미술계에 나왔습니다.




아폴로 13호의 달착륙에 대해사도 말들이 많습니다. 조작극이라는 거지요. 암스트롱이 그때 진짜로 달에 갔다 왔는지는 본인들의 주장 외에는 달리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수행끝에 얻는다는 어떤 경지. 이걸 증명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한사람은 달에 다녀왔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토성에 다녀왔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명왕성에 갔다 왔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뭐 명왕성? 나도 거기 갔다 왔었는데.. 너 진짜야? 그거 어떻게 생겼든?’
‘이러저러 생겼더라’
‘아닌데 저러이러 생겼는데..’
‘내가 갔던 건 아마 명왕성 뒷쪽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런 모양이다'



명왕성 바깥에는 별이 훨씬 더 많습니다.



→ 수행? 깨달음? 1 – 그게 뭔데?
→ 수행? 깨달음? 2 – 도대체 뭘 깨달아?
→ 수행? 깨달음? 3 – 괴로워서 출가했을 뿐
→ 수행? 깨달음? 4 – 무아의 경지?
→ 수행? 깨달음? 5 – 수행자를 왜 존경?
→ 수행? 깨달음? 6 – 괜히 헛심 쓰지 말고
→ 수행? 깨달음? 7 – 우리가 해야 할 진짜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