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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얘기

근덕 13호 1 - 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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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사진이 바로 근덕의 해변모습이다. 휴양촌이 있었던 그 해변이 내게는 보인다.
아래사진은 해안도로 고갯마루에서 본 근덕 해안모습이다. 전에 없었던 고가도로같은게 보인다. 꾸불꾸불했던 그 도로가 아주 운치있었는데.. 없애버린 모양이다. 아쉽다.)


75년 처음으로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대관령을 두고 한반도의 영원한 변방이었던 영동지방이 성큼걸음을 걷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강릉, 속초와 삼척을 운행하던 고속버스, 중앙고속과 동부고속. 터미널은 동대문에 있었다. 당시 영동고속도로는 말 그대로 ‘고속도로’였다. 동대문 고속버스 터미널을 출발하여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만 하면 도착할 때까지 단 한번의 교통체증도 없었던 고속도로. 사람이 손 댄 적 없는 자연경관을 그대로 주변에 간직한 관광도로였다. 그 길을 따라 네시간쯤 달린다. 달리는 내내 가끔 버스안을 돌아보는 승무원 누나들의 자태는 죽여줬다. 중딩 고딩시절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 아가씨들의 예쁜 얼굴, 날씬한 몸매, 짧은 치마.. 중앙고속 보다 동부고속의 승무원 복장이 더 섹시했었다. 그래서 우린 오로지 동부고속만 이용했었다.

삼척에 도착한다. 고속버스 터미널이었지만 시설면에선 당시 조그마한 소도시의 시외버스 터미널보다도 후진 곳이었다. 이삼분 이동하면 삼척 시장, 그곳에서 부식거리들을 산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쇼핑이었다. 지금껏 생각해도 가장 즐거웠던 쇼핑이었다. 뭐해먹을건데..미리 멋대로 정한 메뉴에 따라 감자면 상추며..잔뜩 산다.

시내버스인지 시외버스인지 무지하게 오래된 낡은 버스를 타고 포장길 비포장길을 번갈아 달리면 어느 순간 고갯마루위로 올라서고 준비없이 갑자기 눈앞에 닥치는 넓은 바다. 비릿한 바다내음과 펼쳐진 바다.. 누구나 이 순간 탄성을 지른다. 와- 바다다.

하맹방이라는 정류장에서 내린다. 상맹방 하맹방 이중 하맹방이다. 정류장 바로 앞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낡은 가게 하나. 70년대 시골의 가게. 그 가게를 옆으로 끼고 시골길을 걸어들어가면 널따란 노송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바닷가에 있으니 전부 해송, 곧게 뻗은 저건 직송, 구부러진 저건 구불송, 곧았다 구부러진 저건 아리송. 노송들의 군락지는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히다.

노송들의 군락지 왼쪽으로 자그마한 해송단지가 꽉 차있고 오른쪽은 논이다.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버려진 무덤들이 주변에 있다. 무덤들 사이로 좁게 난 길로 접어들면 곧바로 휴양촌의 입구가 나타난다.

전깃불도 없고, 수도시설도 없는 덩그란 방갈로. 79년인가 잠시 전기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곧 끊겼다. 어른들이 알아서 하시는 일이니 필히 연유가 있겠지..하고 말았다. 바닷가에서 1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펌프의 물은 짜지 않았다. 천만 다행이다. 그물의 ‘차디참’은 일품이다. 아무리 불 같은 햇볕이 내려 쬐는 한여름 낮이라도, 아무리 광적으로 놀아서 땀이 비오듯해도 그 펌프물 등목 한번이면 시베리아 겨울이 되곤 했다.

휴양촌은 크게 디귿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가운데에 널따란 공간이 있었고 사람들은 거기서 발야구도 하고 축구도 했고, 밤엔 그곳에 모여 앉아 캠프 파이어를 하곤 했다. 펌프는 원래 그 공간의 중심에 달랑 하나였는데 하나둘씩 사람들이 자기네 방갈로 앞에 펌프를 따로 설치했었다.

휴양촌 주변은 온통 소나무 숲이었다. 76년 어머니와 둘이서 숲속에서 자그마한 소나무 묘묙 세그루를 캐어다 13호 앞에 심었다. 모래밭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어디 쉬울까.. 그러나 그 다음해에 가보니 한그루만 죽고 나머지 두 그루는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13호는 디귿자의 한쪽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뒷공간 전체가 우리 13호의 뒷마당이 되었다. 널따란 평상도 하나 맞추어서 갖다 놓았다. 소나무 그늘 아래 평상위에 앉아 수박을 먹으면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 되었다.

화장실.
아마 요즘 아이들 같으면 근처에 가는 것도 꺼려했을 그런 재래식 화장실. 여느 방갈로와 똑같이 생긴 방갈로에 가운데를 길게 갈라 한쪽은 여자용 한쪽은 남자용. 당연히 푸세식, 여름날 그 무지막지한 파리 모기와의 싸움, 냄새와의 싸움.

한참 일을 보다 보면 여자화장실에서의 물줄기 소리가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들리던 적나라한 화장실. 진짜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지만.. 그 물줄기 소리의 주인공을 기어코 밖에 나가서 슬쩍 얼굴을 확인하곤 했었다. 17호 아줌마다.. 오줌발 디게 쎄네.. 키키

아침에 단체로 군가를 부르며 화장실로 일제히 가 한꺼번에 모닝똥을 했던 그해 여름엔.. 옆칸에서 들리는 신음소리와 밑으로 떨어지는 똥덩어리 소리.. 가관이었다.


휴양촌과 바다의 거리는 불과 50여미터, 중간에 야트막한 둔턱이 있다. 그 둔턱 오른쪽에 약간 등성이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 올라 앉아 바다쪽을 보면 정확히 삼등분된다. 맨 윗쪽은 파란 하늘, 가운데는 푸르스름한 바다, 맨 아래쪽은 백사장. 그곳에 앉아 바다를 보는 걸 좋아했다.

해변의 오른쪽 끝엔 높다란 봉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옆에 또 다른 남대천이 흐르고 섬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 봉우리. 그 아래에 물안경을 쓰고 들어가면 별세계가 있곤 했다. 이른 아침 고기잡이 하고 돌아오는 어부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 옆 강가에 있었다. 싱싱한 생선들을 진짜로 싼값에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강을 따라 올라가면 천렵하기에 딱 좋은 그런 자리들이 자꾸 나타난다. 한번 시도했었다.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초당굴과 초당 저수지다. 바다 반대쪽으로 한 두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동굴과 만난다. 들어가 봤다. 대단했다. 15소년 표류기가 떠올랐다. 다시 돌아 내려오면 초당 저수지와 만난다. 1급수에서만 산다는 산천어와 송어. 바다에 발을 안 담그는 한이 있어도 이곳은 항상 들러서 송어회와 소주를 잊지는 않았다.


밤이 되면 바닷가는 통행금지구역이 된다. 휴양촌과 해변사이에 약간의 둔턱, 그 둔턱을 경계로 한쪽은 피서온 젊은 애들의 편안하고 느긋한 모습, 반대쪽은 똑같이 젊은 애들이 푸른 군복을 입고 밤새 바다만 주시하는 숨막히는 적막. 군대가기 전엔 그들과 가능한 한 마주치지 않으려 했었고 예비역이 된 후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참호까지 가서 담배를 주기도 했었다.


→ 근덕 13호 1 – 75년
→ 근덕 13호 2 – 76년 ~ 79년
→ 근덕 13호 3 – 81, 82년
→ 근덕 13호 4 – 85, 86년
→ 근덕 13호 5 – 86년 이후
→ 근덕 13호 6 – 79년 보충
→ 근덕 13호 7 – 82년 보충
→ 근덕 13호 8 – 79년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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