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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노스탤지어 금단증

"Nostalgia"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적 고통을 뜻하는 의학용어였다고 합니다. 물론 요즈음엔 이 단어가 '고통'보다는 '그리움' 정도의 서정적 뉘앙스가 되었습니다.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상황에선 '고통스런 그리움'은 잠시이고 금세 '애틋한 그리움'으로 바뀌며, 그 그리움이 고통스런 현실을 이겨내게 해주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군대시절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됩니다. 잠시동안을 제외하곤 '그리움'이란 것이 늘 기쁨의 에너지로 작용했었습니다. 세월에 시달리면서도, 얼차려를 받는 동안에도 그리운 것들을 떠올리면 고통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잊었습니다. 그 짧은 걸 노스탤지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어쨌든 군대에서의 이 '유사' 노스탤지어는 제대와 동시에 씻은듯이 사라졌었습니다.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그리움이 모두 '충족'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노스탤지어는 18년 이민생활에서였습니다. 유사 노스탤지어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효과차원에서 비교한다면.. 군대에서의 그것은 '비타민'이었고, 이민생활에서의 그것은 '마약'이었습니다. 18년 이민생활을 버티게 해준 건 바로 마약효과를 내던 노스탤지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놀랍도록 낯섭니다. 어떻게든 살아내 보려고 발버둥치던 18년전의 이역만리처럼 생경하고, 암울하다 여겼던 35년전의 대한민국보다 더 어두워져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마치 전쟁터에 떨어진 느낌입니다. 전쟁터를 피해 기껏 돌아온 고향이 또 다른 전쟁터로 느껴지는 겁니다.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오래된 노스탤지어는 애틋한 '그리움' 이 아니었습니다.  마약에 쩔어 오랜기간 덧씌워진 '환상'이었습니다. 마약이 끊기자 환상이 깨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오랜 기간 환상으로 품어왔던 첫사랑을 실제로 만나곤 묘하게 마음을 상하듯 말입니다.

고향에 돌아와 오히려 많은 것들을 잃었다고 허전해했었습니다만 사실 그 많은 것들은 '이미 존재하지조차 않던' 환상이었습니다. 환상을 제가 현실로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오래된 노스탤지어의 장난입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 보면 가석방된 장기복역수들이 자유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어떻게든 교도소로 되돌아올 궁리만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았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오랜 이민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역이민자들의 1년이 아마 그런 경우일 것입니다. 

'현실' 쓰나미에 붕괴된 '노스탤지어 없음'이 일상생활에 나른함을 줍니다. 마약중독자가 겪는 금단증인 듯 합니다. 그러는 사이 세번째 노스탤지어가 가슴에 고이고 있습니다


전쟁터가 고향이 되고, 고향이 전쟁터가 되고.. 참 별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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