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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또 고향 16년의 긴 세월이 있었지만 낯섬은 아주 잠시동안 뿐이었습니다. 뿌연 하늘과 너무 긴 신호등을 제외하곤 한국의 모든것에 금세 익숙해졌습니다. 아니 익숙해진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제가 잠깐 잊고 있었을뿐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제 모습이었었으니 말입니다. 아무리 16년을 나가 살았어도 저는 여전히 한국에 완벽하게 길들여진 상태 그대로였던 겁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모든것이 익숙하고 편안한 내고향을 두고 남의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이 갑자기 몹시 힘겹게 느껴졌습니다. 그래 이곳이야..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고 내 고향으로 돌아오리라 다짐했습니다.LA에 도착했습니다. 편안한 고국의 사랑에 흠뻑 젖어지내다 70일만에 다시 이방인이 된 겁니다. 그런데 이게 웬.. 더보기
빈자리로 그리움을 받는 이, 아버지 아버지를 16년만에 만났습니다. 아직 새잎이 나기전 숲은 몹시 우울했습니다. 제 인생중 가장 가슴 아팠던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셨다는 연락을 받고서도 움직이지 못했던 참담한 처지. 15년이 지나서야 아버질 찾아온 천하 불효막심한 놈이 아버지가 뿌려진 곳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제사'라는 형식을 제 대에서 끊기로 아버지께 양해를 구한터라, 떠나신지 15년이 되던 날 가족들이 모여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식빵과 커피로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아버지 이야기를 참 많이 했습니다. 저나 누나들이나 어머니도 아마 이렇게 오래도록 아버지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을 겁니다. 빈자리가 되고서야 비로소 진한 그리움을 받는 가슴아픈 이름,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모든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나이가 들고서야 아버지를.. 더보기
'엄마'라는 신비한 존재 서른가까이 된 사내 조카아이들이 자기 엄마들을 ‘어머니’라고 부르더군요. 그 아이들 앞에서 저는 제 어머니를 보란듯이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아마 그 아이들은 삼촌을 철없다고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엄마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닌 애매모호한 호칭을 쓰던 제가 다시 확실하게 ‘엄마’라고 고쳐 부르기 시작한게 아마 사십대 중반무렵부터였을 겁니다. 어머니가 가장 행복하게 여기시는 시절이 바로 우리들이 당신께 '엄마!'라고 철없이 부르던 시절이라는 걸 알고 난 이후입니다. 16년만에 어머니를 뵈었다고 하면 다들 놀랍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렇습니다.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소릴 듣고서야 움직였습니다. 참으로 불효막심한 아들이었습니다. 육십대 중반의 어머니를 떠났다가 병원에 계신 낯선 할머니에게 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