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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빈자리로 그리움을 받는 이, 아버지 아버지를 16년만에 만났습니다. 아직 새잎이 나기전 숲은 몹시 우울했습니다. 제 인생중 가장 가슴 아팠던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셨다는 연락을 받고서도 움직이지 못했던 참담한 처지. 15년이 지나서야 아버질 찾아온 천하 불효막심한 놈이 아버지가 뿌려진 곳에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제사'라는 형식을 제 대에서 끊기로 아버지께 양해를 구한터라, 떠나신지 15년이 되던 날 가족들이 모여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식빵과 커피로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아버지 이야기를 참 많이 했습니다. 저나 누나들이나 어머니도 아마 이렇게 오래도록 아버지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을 겁니다. 빈자리가 되고서야 비로소 진한 그리움을 받는 가슴아픈 이름,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모든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나이가 들고서야 아버지를.. 더보기
'엄마'라는 신비한 존재 서른가까이 된 사내 조카아이들이 자기 엄마들을 ‘어머니’라고 부르더군요. 그 아이들 앞에서 저는 제 어머니를 보란듯이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아마 그 아이들은 삼촌을 철없다고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엄마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닌 애매모호한 호칭을 쓰던 제가 다시 확실하게 ‘엄마’라고 고쳐 부르기 시작한게 아마 사십대 중반무렵부터였을 겁니다. 어머니가 가장 행복하게 여기시는 시절이 바로 우리들이 당신께 '엄마!'라고 철없이 부르던 시절이라는 걸 알고 난 이후입니다. 16년만에 어머니를 뵈었다고 하면 다들 놀랍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렇습니다.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소릴 듣고서야 움직였습니다. 참으로 불효막심한 아들이었습니다. 육십대 중반의 어머니를 떠났다가 병원에 계신 낯선 할머니에게 돌.. 더보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그 이름, 가족 피를 나눈 가족이 얼마나 따뜻하고 소중한 것인지, 그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감을 주는지 이번에 알게되었습니다. 단순히 관념차원이 아니라 온몸의 세포들이 그야말로 '열열하게' 반응하더군요. 우리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시던 샌드위치와 커피를 함께 만들어 대했을때의 그 행복감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정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하고서야, 16년을 떨어져 지내고서야 이걸 알게되었으니.. 참으로 무심한 아들이며 동생이었습니다. 표현에 서툰 제가 돌아와서야 겨우 전합니다. 엄마야 누나야 사랑합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