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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조중동 살리기 7 - 조중동을 살려야 한다

1. 권언유착은 족벌소유 언론의 운명
한나라당의 어떤 인사가 신문사의 족벌소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에 이렇게 반문을 했었다. ‘주인 없는 민중신문을 만들어 버리자는 겁니까?’ 얘기인즉슨 모름지기 신문사에 주인이 없으면 좌파신문이 되어버리니 신문사엔 꼭 주인이 있어야 보수신문이 가능하다는 말이겠다. 신문사의 주인 정도라면 당연히 기득권층이고 기득권층은 근본적으로 변혁을 바라지 않으니 보수적일 것은 자명한 일. 따라서 주인이 있어야 보수신문이 된다는 정도는 쉽게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주인 없는 민중신문을 만들어버리자는 겁니까?’ 라는 말은 이 정도의 간단한 인식이 아니다. 또 다른 복잡한 인식이 숨어있다. 과연 주인이 있는 신문과 주인이 없는 신문의 차이점은 뭘까?

언론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권의 입장에서 신문사에는 ‘주인’이 꼭 있어야 한다. 신문사에 구워삶아야 할 놈이 많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신문사에 주인이 있으면 주인 한놈만 구워삶아 적당한 떡고물을 약속해주면 그 신문사 전체가 정권의 나팔수와 보호막이 되어준다. 정권은 신문사의 족벌소유를 계속 유지시켜주고 신문사는 그 정권에 보답한다. 이게 바로 그 지긋지긋한 권언유착이다.

지난 십년간 두명의 대통령이 이런 족벌언론과 정권과의 권언유착을 끊어내고자 시도를 했었지만 실패했다. 아니 실패한 게 아니라 두번째 대통령은 족벌언론에게 KO당하고 목숨마저 끊어질 뻔했었다. ‘잃어버린 십년’.. 족벌언론은 이 추상적인 문구 하나로 지난 십년간의 모든 개혁 노력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어 버렸다. 다시는 언론 개혁 꿈도 꾸지마라. 이 좌빠들아..

대통령에게 2연속 KO승을 거둔 조중동, 이제 그들의 안하무인은 하늘을 찌른다. 결국 대통령에게 버젓이 수렴첨정을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조중동이 간택해 주셔서 꿈을 이룬 대통령과, 조중동의 비호로 간신히 연명해 온 정당의 처량한 신세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조중동의 권력에 감히 맞설 수 있는 자는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에 이런 권언유착과 망국적인 언론권력이 극성을 부리는 바탕은 단 하나다. 바로 신문사에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이 있기 때문에 권력을 탐했고 권언유착이 가능했다. 따라서이들 족벌언론의 소유와 경영만 분리하면 권언유착의 가능성은 대부분 원천 차단된다. 그러나 두명의 대통령이 연속 KO패를 당한데다가, 현재의 대통령은 아예 조중동의 머슴이 되길 자처하는 마당에 족벌언론의 소유와 경영분리는 실현이 불가능한 일이다. 조중동의 거대한 벽은 이래서 너무나도 높았다.


꽤 오래도록 조중동 반대운동이 있어왔지만 그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아니 계란으로 바위를 쳤다면 얼룩이라도 남았겠지만 오히려 바위만 반짝반짝해졌으니 그냥 ‘솜으로 바위깎기’였다고 하는게 맞겠다. 시민운동가들이 온 진실을 담아 족벌언론 조중동의 패악을 알리며 국민들을 깨우려 했었지만 조중동의 권력은 꿈쩍도 안했다. 바로 그들 조중동이 조장해 온 ‘보혁대결 구도’ 때문이었다. 조중동은 자기네들과 뜻을 달리하거나 시비를 걸면 무조건 ‘친북좌파’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을 찍었다. 전쟁을 일으킬만한 힘도 의사도 없는 북한이지만 조중동은 우리 국민들이 발맞추어 나가지 않으면 북한이 곧 전쟁을 도발할 것으로 안보를 가르쳤었다. 이렇게 허망한 보혁대결을 부추겨 세상을 반분하고 감정을 자극해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었었다. 수십년간 조중동에 세뇌받아온 국민들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애국보수vs 친북좌파라는 이 이분법에 휘둘렸었다. 대한민국은 조중동의 손아귀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2. 언론개혁의 청신호
하지만 얼마전 참 다행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권력에 도취되어 사고능력이 마비된 조중동 그들이 스스로 결정적인 패착을 두어준 것이다. 바뀐 것이라곤 정권밖에 없는데 그들은 사실마저 180도 바꾸어 주장했었다. 국민들을 얼마나 얕잡아 봤길래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백주 대낮 길거리에 그렇게 똥을 싸질러놨다. 그래놓고도 그들은 몽매한 국민들이 늘 그래왔듯 그걸 된장으로 여길 줄 자신했었다. 분에 넘치는 권력에 마취되어 세상의 변화를 놓친 그들이 여전히 색바랜 교과서와 분필을 들고 국민들을 가르치려 하다가 딱- 걸렸다. 첨단으로 무장한 국민들에게 말이다.

이성도 없고, 과학도 없고, 부끄럼도 없고, 기억력도 없고, 사명감은 커녕 최소한의 기본윤리조차도 없는 조중동의 그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나 버렸다. 시대착오적인 ‘반공’과 ‘독재개발’과 ‘숭미’가 골수에 박혀 세상의 변화를 모르는 채, 최소한의 자기 정화마저 거부해온 오만방자한 쓰레기 더미가 결국 스스로의 올가미에 걸려 패착을 두고 만 것이다. 빛바랜 이데올로기 속에서 허우적대며, 자기들 권력이 약화되는 걸 막기 위해 미친듯이 발악하다가 치부를 훤히 드러내고야 말았다.


요즈음 거의 전쟁이라 불리워도 좋을만큼 언론사간 대결이 치열하다. 다름아닌 ‘주인이 없는’ 경향 한겨레 KBS MBC와 ‘주인이 있는’ 조선 중앙 동아의 사활을 건 전쟁이다. 이런 언론사간의 전쟁이 일어났다는 뜻은 그만큼 정보소스의 다양화로 깨여진 국민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즉 이건 결코 언론사간의 대결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도 결코 아니다. 과연 ‘진실보도’라는 언론 본연의 영역에서 벗어나 그동안 갖은 패악을 서슴지 않았던 언론이 누구인지 가려내는 진실게임이며, 그런 족벌언론의 회개와 반성을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다.

이렇게 족벌언론과 국민들간 전쟁이 벌어진 요즈음.. 대한민국에겐 절호의 기회이다. 그간 그 어떤 정권도 이루어내지 못했던 언론개혁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본질과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을 침소봉대해 왜곡하는 쓰레기더미가 누구인지를 국민들이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3. 꼭 살려내야할 민족 언론, 조중동
그 어떤 정치권력도 해내지 못할 일을 지금 우리 국민들이 해내고 있다. 자전거와 경품에 눈이 멀어 조중동 정기구독을 했던 많은 국민들이 반성을 하며 절독하고 있다. 조중동을 평생 읽어오신 연세드신 부모님께 경향과 한겨레를 같이 넣어드리고 있다. 또 젊은 네티즌들은 열심히 조중동 광고주 압박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 국민들은 조중동의 폐간을 바라는 게 아니다. 다만 권력에 탐닉하느라 언론의 사명을 잠시 망각했던 조중동을 깨우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하루 빨리 깨어나 그들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주길 외치고 있는 중이다.

그러기 위해선 조중동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필연적으로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업에게 소유와 경영분리를 강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스스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게끔 해야 한다. 족벌언론의 진실왜곡이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 족벌언론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진실왜곡과 권언유착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들은 반드시 그런 언론을 심판하고 철저하게 외면해야 한다. 그래서 족벌소유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광고가 줄고 구독자가 줄어 신문사의 운영이 어려워져야 한다. 그래서 족벌이 국민들에게 굴복하고 신문사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끔 해야 한다.

이미 인터넷이 장악한 세상에 종이신문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하물며 진실왜곡을 일삼는 종이신문이 멸종하는 건 시간문제이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가 지면 그때가 바로 그 신문들이 멸종하는 때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우리민족의 신문 조중동이 그렇게 허망하게 멸종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조중동은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부디 이번 기회에 족벌의 마수에서 벗어나 언론의 사명에 충실한 중도신문으로 다시 살아나길 간절히 원할 뿐이다. 소수 극렬한 우익신문과 좌익신문들의 사이에서 튼튼한 균형을 유지해 주는 그런 건강한 민족언론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고 있다.


이번기회에 반드시 조중동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조중동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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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중동 살리기 3 – 미디어 세뇌의 무서움
→ 조중동 살리기 4 – ‘보이지 않는 손’이 없다
→ 조중동 살리기 5 – 족벌언론의 폐해
→ 조중동 살리기 6 – 지금의 조중동은 민족의 해악
→ 조중동 살리기 7 – 조중동을 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