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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올림픽 유감 1 - 그냥 체육대회다

‘올림픽 경기대회는 개인 간의 경기이며 국가 간의 경기가 아니다’
‘IOC는 국가별 종합순위를 작성해서는 아니된다’

IOC 헌장의 내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IOC 홈페이지엔 국가별 메달 집계표가 국가별 순위와 함께 발표된다. 올림픽 헌장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위를 IOC 스스로 하고 있다. 내어놓은 핑계는 더 추잡하다. ‘The IOC does not recognise global ranking per country; the medal tables are displayed for information onl      y'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인포메이션 온리? IOC는 이렇게 올림픽 기본정신을 위배하며 국가별 순위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여 국가간 경쟁을 대놓고 부추긴다. 왜일까? 평소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축구를 국가대항전이나 월드컵에서는 전 한국인이 광적으로 응원하는 것, 바로 그거다.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IOC는 이런 꼼수를 부린다.

그렇다. 결국 흥행, 즉 돈 때문이다.
그러니 IOC라는 거대조직이 해체되지 않는 한 국가별 순위가 발표되고 올림픽에서 메달의 숫자와 국가별 순위가 운운되는 건 뭐 어쩔 도리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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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미국과 소련의 올림픽 메달 경쟁이 치열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의 그것은 ‘국가간의 경쟁’ 수준이 아니었다. 그건 ‘체제간의 전쟁’이었다. ‘체력은 국력’ ‘체력은 체제력’임을 입증하기 위해 어린애들을 ‘올림픽 메달 기계’로 강제 사육하는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행위가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광범위하게 있었다.

그러나 소련의 해체와 동독의 붕괴로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승리,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패배가 입증된 이후 미국과 소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의 메달경쟁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올림픽 메달 숫자가 체제의 우열, 국력, 국가의 자존심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선진국들에서 올림픽에서의 국가별 메달 순위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되자 미국의 독주가 재미없이 계속되었다. 이제서야 올림픽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세계인들의 축제, 세계인들의 ‘체육대회’가 되었다.

이렇게 세계인들은 이제 올림픽 메달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그저 그 체육대회에서 선수들의 경쟁에 재미를 느끼고 거기에 더해 새삼스레 발휘되는 애국심을 그냥 즐길 뿐이다. 따라서 메달을 못 따도 그만, 자기나라 순위가 내려앉아도 그만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나라들이 올림픽을 ‘즐기고’ 있는 수준에 오른 때, 느닷없이 중간에 뛰어들어 국가별 메달순위에 ‘광’집착하며 목숨을 거는 나라가 나타났다. 올림픽을 마치 ‘전쟁터’로 여기는 듯한 그들.

뚱궈, 중국이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이며, 아직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 후진국가이며, 일사불란한 전체주의 국가다. 따라서 정권의 유지를 위해 체제의 우월성을 인민들에게 입증해야 하는 정권이 그들만의 중화주의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애국주의를 부추긴다. 젊은 중국 학생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난동을 부리고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 바로 이런 미친 애국주의 때문이다.

중국인들에게 이번 올림픽은 체육대회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한풀이 마당인 듯 하다. 올림픽을 통해 보이는 그들의 광적인 승부욕과 경쟁심, 자긍심과 애국심은 지나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근데.. 중국은 그렇다 치고..
중국을 그렇게 깔보고 무시하는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도 아직 태릉선수촌이란 곳에서 메달기계들을 집중 사육하고 있다. 올림픽 출전선수들을 체육단체가 아닌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나라가 얼마나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좌우간 이 점에 있어서만은 우리나라도 중국과 똑 같다. 그렇다면 아직도 ‘체력은 국력’이란 캐치프레이즈가 대한민국에서 통하는 것일까? 금메달이 하나 나오면 전국민들의 가슴속에 실제로 자긍심과 애국심이 불끈불끈 솟고 세계적으로 국가의 위상이 상승하는 것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올림픽 메달경쟁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며, 우리나라의 태릉 선수촌과 ‘체력은 국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독재정권의 잔재다. 국민들의 관심을 스포츠에 쏠리게 하고 국제대회에서의 메달 숫자로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작태는 빛 바랜 구시대의 유물이다. 우리 국민들 대부분이 이 점을 잘 알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중국인들의 광적인 자긍심을 비웃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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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올림픽 종합 4위.. 때는 바야흐로 전두환 노태우 시대였다. 텃세와 판정시비에도 불구하고 때가 때였으니만큼 그럴 수 있었다고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2002 월드컵 4위.. 판정시비로 얼룩지고 세계가 놀란 '거리응원'이 있었다.



당시 그 월드컵 4강 성적으로 가슴 뿌듯해 하는 국민들이 많았을까? 아니면 ‘자긍심’보다는 ‘자괴감’을 느낀 국민들이 더 많았었을까? 손님들 불러놓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라는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느낀 국민들이 훨씬 더 많았었을 것이다. Salt Lake City 동계 올림픽을 두고 '편파판정에 얼룩진 가장 추악한 올림픽'이라고 흥분했던 국민들. 한국 월드컵을 보면서는 어떤 감정을 가졌었을까? 아마 국민 대부분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었을 것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부끄럼과 수치를 잘 모르는 중국인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아마 상상을 뛰어넘는 행태를 꽤 보일 것이다. 2002월드컵 때 우리나라의 섬뜩했던 거리응원보다 더 무시무시한 광기가 중국 전체에서 뿜어져 나올 것이다. 팬더 사육하듯 국가가 체계적으로 사육해 온 ‘메달기계’들이 중국에게 올림픽 종합 1위의 성과를 안겨줄 것이다. 그래 놓곤 지들끼리 난리가 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꽃피고, 모든 면에서 성숙해진 우리나라 국민들은 다르다. 더우기 승자만 대우받고 기억되는 한국사회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이, 그것과 똑같이 승자만 기억되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집착할 리가 없다. 성숙한 우리 국민들에게 이제 월드컵과 올림픽을 그저 체육대회일 뿐이다. 그래서 정정당당하지 못한 판정이나 필요이상의 치열한 승부경쟁에는 오히려 염증을 느낀다. 금메달 갯수에 호들갑 떠는 언론들을 한심하게 여긴다. 우리 국민들은 '박태환의 금메달은 박태환의 승리이며 한국 수영의 승리이지 그것이 결코 대한민국의 승리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영웅의 탄생에 환호할 뿐, 그것이 대한민국의 승리는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변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살아 남아 아직도 ‘금메달 만세, 우리나라 만세, 발맞추어 나가자 앞으로 가자’ 하는 것 같다. 국민들은 그저 스포츠의 짜릿함과 자긍심에 뿌듯해 할 뿐인데, 아직도 중국수준에 머물러 있는 일부 사람들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신독립군가를 부른다. 

그러지 말자.


→ 올림픽 유감 1 – 체육대회
→ 올림픽 유감 2 – 8관왕? 종합4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