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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펀드투자.. 탐욕이나 기대심리가 아니면 뭔데?

은행원이 꼬시는 바람에 우리 어머니도 펀드라는 것에 투자를 하셨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작년엔 재미를 약간 보신 모양인데.. 올해초 그얘길 듣고 난 어머니께 그걸 환매하시라고 말씀드렸었다. 근데 우리 엄만 귀찮다면서 그냥 놔두셨었다. 그러다 요즈음 그게 반토막이 나버렸다. 속이 많이 상하셨을텐데 우리 어머닌 바로 마음을 털어버렸다. ‘괜한 욕심내다가 이렇게 된거야. 쉽게 들어온 돈은 더 쉽게 나가게 마련이거든.’ 이러고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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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탐욕이나 기대심리
손석희 ‘펀드가 반토막 난 투자자들은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한상춘 ‘지난해 12월 초와 올해 1월 초 이런 위험에 대해 사전에 많이 경고를 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지금까지 환매를 못한 것은 개인의 탐욕이나 기대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에셋의 연구소 부소장 한상춘이라는 사람이 방송에 나와 손석희와 주고받은 이 대화때문에 그 방송을 본 투자자들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돈을 투자했다가 반이 날아가 버린 참담한 투자자들, 근데 그 마당에 투자기관의 전문가라는 놈이 나와 모든 책임을 투자자들에게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했으니 투자자들이 열받을 만도 하다.

회사는 그 싸가지 없는 말을 한 이 한상춘의 모가지를 즉시 잘라버리고 국민들께 사과를 했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은 분이 안 풀렸는지 이젠 회사 전체까지 싸잡아 욕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럴만도 하다. 돈 잃고 부에 안 끓는 놈이 어디 있겠냐. 그 심정 이해한다.

버뜨..
열받으신 투자자들껜 미안하지만 한상춘의 말엔 틀린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펀드를 환매하지 않은 건 100% 개인의 탐욕과 지나친 기대심리 때문인 거 맞다.

여기에서 그 회사가 실제로 투자자들에게 위험경고를 했느냐 안했느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여기저기에서 위험경고가 나온 건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경기예측에는 비관적 예측과 낙관적 예측이 함께 있기는 하지만 이번엔 달랐었다. 미국의 부동산 폭락에 따라 금융위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건 벌써 작년부터였다. 그에 따라 미국 금융시장과 세계금융시장이 위험해질 거라는 경고도 이때부터 터져나오기 시작했었다.

설령 투자회사의 담당자가 이런 위험경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의 말을 믿고 좀 더 지켜보기로 한거였다고 해도, 그렇게 펀드를 환매하지 않은 건 딴 게 아니다. '지금 환매하면 손해가 얼마인데.. 좀더 버티면 시장이 좋아져서 만회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러면서 환매를 미루었던거다. 맞지? 그렇다면 이게 ‘기대심리’나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투자? 투기?
보통 ‘펀드에 투자’ 했다고 얘기한다. 근데 과연 이게 진짜 투자였을까? 혹시 투기 아니었을까?
투자와 투기.. 참 구분하기 어렵다. 경제학적으로 볼때 어떠한 행위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면 투자이고, 그렇지 못하면 투기로 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주식 투자금이 회사로 들어가면 그것이 산업 자금이 되고 그 자금을 근간으로 새로운 경제적 가치가 창출 되기 때문에 주식은 ‘투자’다. 그러나 부동산투자는 전체 가치는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소유만 바뀌기 때문에 투기이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얼핏 주식에 투자한다는 펀드는 건전한 투자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투자와 투기는 이제 사회적 용어에 더 가깝다. 사회적으로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데엔 '경제가치 창조'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투자자의 ‘의도’와 '기간'이다. 만약 단기적으로 시세 차익을 노리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건 투자가 아닌 투기다. 장기적 경제효과를 노리는 것이 투자이고, 단기 차익을 노리는 것이 투기라고 했을 때, 단기간에 대폭적인 수익을 기대했던 우리들의 펀드는 두말할 나위 없이 '투기'다.

이해를 돕기 위해 주식시장에서 구분하여 보자. 주식이 일반적으로 투자라고는 했지만 이것도 구분이 된다. 장기적으로 ‘배당 수익’을 노리는 것은 투자, 단기적으로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것은 투기다. 따라서 하루하루 주가변동표를 보고 일희일비하는 주식투자자들은 엄밀히 말해 투자자가 아니라 투기꾼들이다. 얘기가 길어지므로 투자와 투기에 관한 건 이만 접는다.

아무튼 펀드 투자자들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돈을 맡긴 것이니 자신들의 행위가 투자라고 주장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펀드 투자자는 ‘저수익임을 알고도 장기간 돈을 맡긴 것’이 아니었다. ‘단기간 대폭적 이익' 을 기대하고 가입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6개월에 원금의 몇십프로, 몇백만원이 뿔었더라는 주변 얘기를 듣고 너도나도 가입한 사람들이란 말이다.

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투자자는 모르고 있는 사이(아니면 뻔히 알고 있는 사이) 회사는 그 돈으로 불철주야 주식과 채권을 사고 팔며 맹렬히 들락거렸었다. 시세차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투자자가 놀멘놀멘 기다리는 동안 회사는 이렇게 치열하디 치열한 투기를 벌이고 있던 거다. 따라서 투자자 입장에선 펀드투자가 건전하고 장기적인 투자라고 우기고 싶을지 몰라도 본질적으로 그건 투기다.


투자나 투기엔 리스크가 있는 법이다
투자나 투기엔 공통점이 있다. 반드시 리스크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적으면 수익이 낮고, 리스크가 높으면 수익도 크다. 이건 만고불변의 이치이다. 고수익을 선전하고 자금을 모았다는 건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는 걸 같이 선전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도 모르면서 거기에 거액의 투자를 했다면 이런 ‘호구’는 불평할 자격조차 없다. 돈 잃어도 싸다. 이걸 알면서도 투자전문가의 말을 더 믿었다면 이 역시 불평할 자격 없다. 자기가 바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수익과 리스크의 문제는 투자회사가 컨트롤하거나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해 고객들에게 정보를 알리지만, 그게 수익이 날지 손해가 날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난다 긴다하던 월가의 금융회사들도 쪽박을 찼다. 전세계에 그들보다 더 뛰어난 전문가가 있었든가? 없다. 월가의 금융인들이 모두 쪽박을 찬 마당에 한국의 투자회사 직원들을 하느님 받들듯이 했다면 그건 그렇게 투자회사를 숭배한 본인의 책임이다. 시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펀드를 환매하지 않은 건 전적으로 본인의 탐욕과 기대심리 때문이다.


탐욕이나 기대심리가 아닌가?
그렇지만 상황이 이러할진대 분위기는 펀드 운용회사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분위기. 회사는 기분이 나빴을 거다. 자기네 딴엔 분명히 경고도 많이 했었고, 환매하라고 권유도 많이 했었는데, 그땐 손해보기 싫다고 말을 안들어 쳐먹더니 이제와서 돈 더 잃었다고 생지랄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성난 투자자들이 이렇게 앞뒤 따지지 않고 회사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맞받아 칠 수는 없다. '니네 말만 믿다 이렇게 된거니 니네가 책임져라. 잃은 돈 내놔 이 띠바세끼들아..' 해도 묵묵히 듣는 수밖엔 없다. 그래서 회사는 속으로 부글부글 하고 있었을 것이다. 돈 잘 벌게 해줬을 땐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하더니, 돈 좀 잃었다고 눈을 까고 달켜드는 투자자들이 서운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내색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포퓰리즘의 화신, 손석희의 유도심문에 걸려 무심결에 말이 나왔다.
‘개인의 탐욕이나 기대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00% 맞는 말인데도 이 말을 들은 투자자들은 눈이 뒤집어졌다. 아마 ‘탐욕’이라는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뭐 탐욕? 내가 정보가 좀 어두워서, 때를 놓쳐서 이렇게 된건데.. 뭐 탐욕? 이 씨바세끼가 누굴 투기꾼으로 몰아..

그러나 흥분하지 마라. 한상춘은 분명히 탐욕 ‘이나’ 기대심리라고 얘기했다. 탐욕 ‘과’ 기대심리라고 얘기한 게 아니다. 투자자님들.. 백번 양보해서 당신들의 그것이 탐욕이 아니었다 치자. 그럼 기대심리도 없었나? 아니잖아? 혹시 다시 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심리는 누구에게나 있었던 거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상춘의 말에 흥분하고 열받은 투자자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자기가 투기꾼임이 좀 부끄러웠는데 공개적으로 누군가가 나서 자기네를 투기꾼 취급하자 확- 열받았다는 반증이다. 

펀드가 잘 굴러가 돈을 펑펑 벌 때엔 내 판단이 정확해서 돈을 번거고, 펀드가 깡통이 되어버리니까 그것은 전적으로 회사책임이다? 이런 고약한 심보가 어디 있나?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기라는 것엔 '버는 놈'이 있으면 그 반대편 어딘가에 '잃는 놈'이 분명히 존재한다. 지난번엔 운좋게 버는놈 줄에 섰었지만 이번엔 운이 없어 잃는놈 줄에 선 것일 뿐이다. 이번에 돈 좀 잃었다고 그리 분해할 일이 아니란 거다. 담엔 돈버는 줄에 서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