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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올림픽 유감 2 - 8관왕? 종합4위?

올림픽에서 국가별 순위는 어떤 방식으로 매겨지는 걸까? 금메달로만 따지는 방식(rank by gold)과 메달전체를 합계하는 방식(rank by total) 이렇게 두가지다. 

rank by gold.. 은메달 100개가 금메달 한개보다 못한 거다. 승자독식이 자연계의 냉엄한 원칙이니 금메달을 지극히 우대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친다. 하지만 국가별 랭킹을 매기는 데에도 이렇게 금메달만 가지고 산정한다?.. 물론 금메달이 많으면 은메달도 많고 동메달도 많게 마련이니 이게 그나마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박태환과 같은 돌연변이 반짝 스타도 있다. 그 종목에 대한 국가의 전체역량과는 별개로 선수 하나가 비 정상적으로 잘하는 경우다. 즉 박태환 하날 대한민국 전체 수영의 역량으로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또 대부분의 경우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의 차이는 그야말로 박빙의 차이다. 앞서던 선수의 금메달이 결정적일 무렵 잠시의 방심으로 뒤집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개개인의 일희일비를 국가 전체의 순위와 직결시킨다? 이건 아니다. 은메달 백개를 따봤자 금메달 한 개 딴 거보다 국가 순위가 뒤쳐진다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다. 그래서 미국의 CNN과 USA투데이는 합산한 메달 숫자가 가장 많은 순서에 따라 국가별 순위를 보도하고 있다. rank by total.. 금은동메달의 가치를 동등하게 보는 거다. 아깝게 은메달 동메달 많은 나라들이 좋아하겠다.

근데 이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그것이 실력이든 운이든, 피눈물 쏟아가며 그렇게 어렵게 금메달을 땄는데 그게 동메달과 가치가 똑같다? 이것도 좀 억울하다. 또, 전체순위를 모두 다 매길게 아니라면 우승 준우승만 가리면 되지 3,4위전을 벌여 동메달을 주는 건 뭔가? 은메달리스트보다 동메달리스트가 더 기뻐하는 게 이래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 현재의 방식으로는 미국이나 중국처럼 쪽수가 많은 나라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작은 나라들은 나라 작아 서러운데 올림픽 메달 못따 또 서럽다. 지금처럼 쪽수많은 나라에서 메달 많이 따서 순위 높게 표시되는 건 체육역량이 정직하게 표시된 게 아니다.

그래서 내가 새로운 방안을 IOC에 제안한다. (물론 아무도 안 듣는다는 건 나도 안다.)

1. 결승까지 올라온 놈들끼리 승자와 패자만 가려 금메달과 은메달만 준다.
2. 금메달과 은메달의 점수를 정해 (금5 은3) 국가별 점수를 합산한다.
3. 이 점수를 그 국가의 인구수로 나눈다.

어떤가? 이 정도면 상당히 괜찮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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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해도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지 않는다.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종목에 따라 배정된 메달 숫자가 편차가 너무 많다는 것.. 바로 이거다.

총 302개 메달(28개 종목)이 있는데 이중 '93개의 메달'이 달랑 '2 종목'에 걸려있단다. 전체메달의 31%가 단 2개 종목에 집중되어 있다? 이거 말이 안되는 쏠림이다. 찾아봤다.

육상에 47개, 수영에 46개의 메달이 몰려 있다. 이 두 종목에 메달의 31%가 몰려있다면 이걸 올림픽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 ‘세계 육상&수영대회’다. 물론 더 멀리 더 높이 더 빠르게(?)라는 올림픽의 슬로건에 육상과 수영이 가장 잘 부합한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건 해도 너무 한다. 도대체 메달수가 왜 이렇게 많은지 찾아봤다.

[육상남자] - 24개
100m/200m/400m/800m/1500m/5000m/10000m/110 m 허들/400m허들/400릴레이/1600릴레이/3000m장애물/높이뛰기/멀리뛰기/ 세단뛰기/ 장대높이뛰기/포환던지기/원반던지기/창던지기/ 해머던지기/20km경보/50km경보/ 마라톤/10종경기

[육상여자] - 23개
100m/200m/400m/800m/1500m/3000m/10000m/100m허들/400m허들/400릴레이/1600릴레이/2000m장애물/높이뛰기/멀리뛰기/ 세단뛰기/ 장대높이뛰기/포환던지기/ 원반던지기/창던지기/ 해머던지기/20km경보/ 마라톤/7종경기


그러려니- 하고 봐왔을땐 몰랐는데 이렇게 펼쳐놓고 보니 복창이 터진다. ‘짧은거리 잘뛰는 놈’ 하나 뽑으면 될걸 100m 200m 400m 잘뛰는 놈을 각각 가려 뽑는다. ‘먼거리 잘뛰는 놈’ 하나 뽑으면 될걸 1500, 3000,10000을 구분해서 뽑는다. ‘잘 던지는 놈’ 하나 뽑으면 될걸 포환 해머 원반 창을 나눠 던진다. 허긴 몇백년전 하던 짱돌던지기 창던지기를 아직 한다는 게 더 웃기긴 하다.

그러나 육상의 종목 가르기는 수영에 대면 아예 애교에 속한다. 육상이야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니 까짓거 종목이 여러 개가 있어도 그런대로 참아줄 수는 있다. 하지만 물에서 헤엄을 치는 이 수영은 경우가 다르다. 현대인의 생활에서 비중으로 본다면 메달 한개쯤 배정받으면 감지덕지할 정도의 수준이다. 수영대회를 빼곤 도대체 다른 데서 써먹을 데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고래'들의 올림픽이라면 모를까 육상동물인 인간들의 올림픽에 수영이 우대받아야 하는 까닭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영은 육상보다 훨씬 더 세분되어 있다. 

[수영남자] - 21개
50m 자유형/100m 배형/평형/접형/자유형/200m 배형/평형/접형/자유형/개인혼영/400m 자유형/개인혼영/1500m 자유형/ 4*100m 자유형 릴레이/ 4*100m 혼영 릴레이/4*200 m 자유형 릴레이/10K 마라톤/다이빙 3m 스프링보드/10m 플랫폼/싱크로(다이빙)/수구

[수영여자] - 23개
50m 자유형/100m 배형/평형/접형/자유형/200m 배형/평형/접형/자유형/개인혼영/400m 자유형/개인혼영/4*100m 자유형 릴레이/4*100m 혼영 릴레이/4*200m 자유형 릴레이/800m 자유형/10K 마라톤/다이빙 3m 스프링보드/10m 플랫폼/싱크로(다이빙)/수구/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두엣/팀

(전체가 46개라는데 2개는 어디에 있는지 못 찾았다)

거리별로 나누는 것도 모자라 ‘헤엄치는 방법’ 따라 또 나눴다. 거리 기록 스포츠경기는 ‘출발에서 끝까지 누가 빨리 가느냐’만 따지면 된다. 근데 수영에선 '그걸 어떤 헤엄으로 가느냐'로 또 나눴다. 나참.. 빨리가기 시합에서 개구리처럼 헤엄치느냐 발랑 뒤집혀서 헤엄치느냐..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냔 말이다.

이 어거지는 육상100미터를 그냥 앞으로 뛰느냐/ 뒷걸음으로 뛰느냐/ 짝발로 뛰느냐/ 토끼뜀으로 뛰냐로 나눈 것과 똑같은 짓이다. 육상 200미터를 50미터는 토끼뜀으로/ 50미터는 뒷걸음으로/ 50미터는 짝발로/ 나머지 50미터는 앞으로 전력질주하는 것을 별개의 종목으로 떡하니 만든 것과 똑 같은 짓이다. 우스꽝스러움을 넘어 이 횡포엔 화가 난다.


축구에선 열한명이 90분짜리 경기를 몇번이나 하면서 죽을똥 살똥 그 고생을 해도 금메달 한 개 딸까 말까이다. 또 못 따면 감독이 쪼다라느니 선수선발을 잘못했다느니 욕을 먹어야 하는 위험부담까지 있다. 그런데 이 그지같은 수영에선 한놈이 2~3분짜리 경기 몇번으로 무려 금메달 8개를 따느니 못 따느니 한다. 이게 말이 된다고 보시는가? 한놈이 8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다는것은 8개 종목을 나눈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올림픽에 수영종목이 들어갔고 어떤 놈이 이따위로 그지같이 나눠놨는지는 모르겠지만 불평등도 이런 불평등이 없고 횡포도 이런 횡포가 없다. 어찌 한놈이 한 대회에서 금메달 8개를 딸 수 있게끔 만들어 놨냔 말이다. 

말 난김에 수영종목 나누듯이 양궁을 함 나눠볼까?
거리별로 예닐곱개 나누고.. 각 거리별로 오른손으로쏴/왼손으로쏴.. 서서쏴/ 걸으면서쏴/ 뛰면서쏴/ 말타고쏴/ 앉아서쏴/ 엎드려서쏴.. 앞으로쏴/ 옆으로쏴.. 양궁에서만 세부종목 50개쯤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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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올림픽을 보며 그저 선수 개개인들의 아름다운 준비와 도전(사실 돈과 명예를 위해 하는 것이니 그리 아름다운 것만도 아니다)과 그 역동의 인간 드라마를 흥미롭게 보며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종합순위는 정말 손톱의 때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 올림픽 유감 1 – 체육대회
→ 올림픽 유감 2 – 8관왕? 종합4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