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자본으로부터의 편집권 속박
원래 언론의 역할은 아주 간단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보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인들께서는 자기들의 역할을 참으로 막중하게 생각들 하고 계신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고,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훈수둬야 하고, 몽매한 국민들을 계몽해야 하고, 국민 공론의 장도 마련해야 하고.. 이런 저런 거창한 사명감을 가지시다 보니 그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의도대로 취사선택하여 자기들 입맛에 맞게 ‘각색된’ 것을 보도한다.
좋다. 꼴 같진 않지만 그들의 말대로 언론의 역할이 막중하다고 쳐 주자. 그렇다면 역할이 막중한 만큼 그 역할을 공명정대하게 수행하려는 사명감과 책무를 더욱 더 무겁게 져야 한다. 먼저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한다. 이념적으로 결코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그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도 없어야 한다. 그 어떤 유혹이나 간섭에도 흔들림 없어야 한다.. ㅋㅋ
하나같이 우리나라 언론인들에겐 요원한 얘기다. 기자라는 작자들이 얼마나 세속적이고 속물근성이 있는지, 얼마나 이념편향적이고 사회적인 동물들인지, 얼마나 권력지향적인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런 자들이 언론인입네 하고 군림하는 건 고양이가 생선가게 점원으로 앉아있는 꼴이다. 이게 우리나라 언론계다.
그러나 다행히 해결하는 방법이 아주 간단하다. 언론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만 하면 된다. ‘편집권의 독립’ 만 이루어지면 자연히 언론은 바로 선다. 대통령 알기를 시골마을 이장 정도로 여기는 것으로 보아 권력으로부터는 온전히 독립한 것 같다. 문제는 자본이다. 자본으로부터의 속박은 여전히 공고하다. 언론사 내부에서의 심각한 간섭과 통제는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기자를 뽑을 때에도 간섭하고, 기사에도 간섭한다. 언론의 생명은 다양성에 있다. 그러나 족벌사주의 절대 영향하에 다양성은 있을 수 없다. 사주의 입맛에 맞는 기사들만 나간다.
우리나라의 신문기업들이 이런 내부의 간섭으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막강한 권력의 사주가 ‘인사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에 있어본 사람은 이 인사권의 무서움을 안다. 조직내의 ‘절대권력’이다. 신문사주는 바로 이 인사권을 통해 신문사의 경영과 기사 내용에 대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도대체 우리나라 중앙일간지들의 사주들이 얼마만큼의 지분을 갖고있길래 그리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걸까? 먼저 조선일보를 보자. 방상훈 35% 방성훈 21.9% 방일영문화재단 15% 방용훈 10.6% 방준호 7.7% 방우영 3.4% 이다. 방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지분이 무려 93.6%다. 중앙일보는 홍석현 36.8% CJ㈜ 14.71% CJ개발 7.31% 유민문화재단 4.04%.. 삼성과 관련된 사람들이 60%가 넘는다. 동아일보는 인촌기념회 24.14% 김재호 21.28% ㈜동아일보 8.59% 김재열 7.7% 김병건 6.79% 김재혁 4.06% 김형중 3.97%.. 김씨성을 가진사람들이 70%가 넘는다.
2. 사주의 충직한 개, 신문사 기자
족벌의 지분율이 최저 63%에서 최고 94%다. 이건희회장이 본인, 일가, 계열사의 지분을 전부 합쳐 15% 정도의 지분만을 가지고서도 삼성전자를 지배하는데, 신문사는 족벌이 94%의 지분율을 가졌다? 물건을 만드는 제조사도 아닌, 사실을 보도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신문사의 소유구조가 이렇게 100%에 가까울 정도의 족벌소유다? 그래서 그 족벌이 신문을 통해 여론을 좌지우지한다? 놀라움을 넘어 경악이다.
기자들 스스로도 사주의 영향력이 편집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이 비정상적 언론 구조라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사주의 지배권력에 도전하여 편집의 독립권을 쟁취하려는 기자는? 없다. 나름대로 똑똑하던 젊은이들이 조중동에 입사하지만 철저하게 사주의 이념만을 추종하는 개가 되어버리고 마는 이유는 이것이었다. 사주의 지분이 최소 60%에서 최고 90%가 넘는 현실에선 결코 사주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정치권력은 늘 오가는 나그네들. 삼성이라 할지라도 때에 따라선 주인이 바뀔 수도 있는 법.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바뀌지 않는 건 우리신문사의 사주.
사주의 이념이 신문사의 이념이고, 그것이 일선기자들의 이념이 된다. 뼈속부터 투철한 조선맨 중앙맨 동아맨이 된다. 일상에선 똑똑한 축에 끼이던 사람들이었지만 신문사입사와 동시에 사주의 충직한 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짖으라면 언제나 열심히 짖는다.
3. 조중동이 보수인 까닭
나는 그동안 조중동의 투철한 우익논조가 그들의 조상 탓이라고 여겨왔었다.
조선일보의 방응모, 동아일보의 김성수가 일제시대에 노골적인 친일행각을 했었는데, 그 부끄러운 친일행각을 물타기하려 해방후 그렇게 목소리 높여 반공을 내세웠다는 것, 그리고 권력에 데이고 언론에 울었던 이병철이 한을 품으며 만든 신문사가 중앙일보라는 것. 이후 이 세 신문사가 반공이 국시인 독재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며, 안보를 무기로 국민들을 볼모로 잡고 사세를 비약적으로 키웠다는 것. 즉 조중동의 우익논조는 ‘친일행각’을 ‘반공’으로 물타기 해야만 했던 그들의 조상탓, 그리고 독재정권하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역사탓이라고 여겨왔었다. 그러나 조중동의 이 경악스런 지분 현황을 보고서야 그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그들에게 ‘권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 권력이 어디 이건희에 비할소냐.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력이다. 자기 마음 먹은 대로 대통령도 세웠다 끌어내릴 수도 있는 절대 권력이다. 이 막강한 언론 권력을 손에 틀어쥔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권력이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의 모든 조건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이 상황으로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문제는 결코 공론화되어선 안되는 사안이다. 그래서 그들은 재벌의 경영권문제에 사회적 관심이 모이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삼성이 흔들리면 국가경제가 흔들린다’와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건 전적으로 이건희의 공이다’등이 이들 족벌언론들이 국민들을 호도 세뇌한 대표적인 예다.
이런 조중동이 ‘개혁’이라는 단어에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그들은 개혁정권이라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목숨을 걸고 비난하고 훼방을 놓았다. 개혁의 도미노가 자신들의 족벌체제에까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에겐 무조건 ‘반미친북좌파’라는 색깔을 칠해버렸다. ‘언론 개혁’이라는 명제엔 ‘언론 탄압’이라며 맞섰다. 족벌언론 사주의 충실한 개, 영혼 없는 데스크들이 이 낯부끄러운 전쟁에 대신 앞장섰다. 75%의 국민들은 그런 줄 알고 있었다. 진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얼마전 사립학교 개정으로 시끄러울 때, 아무리 생각해도 개정하는 게 절대적으로 맞는 건데 이상하게도 조중동은 그것을 개악이라고 게거품을 물었었다. 왜 그랬을까? 간단하다. 조중동의 사주들이 사학의 소유주였기 때문이다. 조선은 연세대학교, 동아는 고려대학교의 주인이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사학법 개정을 가만 두고 볼리가 없다.
학력위주 사회를 개선해야한다고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이지만 조선과 동아는 늘 딴청이었다. 학벌사회를 걱정하는 척 하면서 교묘하게 학벌을 더욱 부추겨왔다. 왜냐하면 그들이 연세대와 고려대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연대와 고대가 불가사의할 정도로 아직까지 사학명문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이유도 간단하다. 조선과 동아가 줄창 그렇게 기사화했었기 때문이다. 조중동은 대통령만 만드는 게 아니라 대학의 서열도 맘대로 만든다.
조중동은 보수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절대권력을 영속화하려는 족벌들이 보수와 우파의 가면을 씌워 키우는 개들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쓰레기더미들이다.
그러나 이들 조중동의 시장점유율이 무려 75%다. 조선중앙동아 자체가 나쁜 신문인 것은 아니다. 만약 조선 중앙 동아의 사주가 각기 다른 이념이나 각기 다른 관심을 지녔다면 까짓거 이 정도 시장점유율도 문제삼을 필요 없다. 하지만 이 점유율이 문제가 되는 것은 조선 중앙 동아의 사주들의 이념과 관심이 복제인간들처럼 동일하기 때문이다. '개혁을 막아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 사주들이 말하는 보수란 것이 바로 이것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십년간 조중동(사주)에게 '세뇌'되어 조중동에 '집착'하고 조중동에 '중독'된 75%의 국민들은 조중동이야 말로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통 민족신문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상계동의 판잣집 주민들도 남궁원의 아들에게 투표하는 코미디가 있는 것이다.
4. 전설의 인종 콘크리안
이명박이라는 잡놈 사기꾼을 대통령까지 시켜준 게 조중동이다. 친미반공, 독재개발주의, 부정축재, 개혁회피.. 조중동 사주들의 입맛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큰 빚을 진 이명박이 ‘신문 방송 겸업허용’으로 그 크신 은혜를 갚으려는 모양이다. 썩어 문드러진 상처에 구더기를 쏟아 붓겠단다. 조중동 사주들 난리났다. 바뀌지만 않게 해줘도 되는 거였는데 웬걸 이명박은 한술 더 떠 더 큰 권력을 드리겠단다. 그래서 조중동 사주들이 은혜를 알고 자기들 말 잘듣는 이명박 밀어주기와 감싸기에 미쳐 날뛰었다. 그러다 딱 걸렸다.
조중동의 어이없는 왜곡보도가 국민들에게 딱 걸린 것이다. 아무 의구심없이 수십년간 조중동을 집에서 읽던 사람들도 고개가 갸우뚱했었다. 미국 쇠고기 얘기.. 1년사이에 180도 다른 얘길 뻔뻔스럽게 하다가 그게 딱 걸렸었다. 그래서 분노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던 거였다. 그렇짐ㄴ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이명박을 감싸기만 했다.
결국 춧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쇠고기문제에서 이명박 하야로 조중동 폐간으로 번져나갔다. 조중동의 영향력에서 자유롭던 재기발랄한 젊은이들이 나섰다.
한편 또 다른 저쪽, 유행의 변화와 담 쌓고 사는 중년이상의 사람들. 옷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도 과거의 한 시점에서 더 이상 변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런 그들이 민족정론지 조중동이 똑같이 말하는 똑 같은 얘기를 지난 수십년간 들어왔었다. 민족의 신문 조중동만이 민족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신문임을 결코 의심치 않는다. 바로 이들이 전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에만 일부 남아 있다는 전설의 인종 콘크리안들이다.
촛불이 타 오를 때, 조중동 사주들이 이 콘크리안들에게 행동명령을 전달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 맞불을 놓아라.’ 그래? 근데 우린 이런 행동명령을 그 신문에서 본 적이 없다. 당연하다. 그 행동명령은 콘크리안들만이 이해하는 비밀암호로 전달되었었기 때문이다. 그 비밀암호는 바로 ‘촛불의 배후는 친북좌파’ 이거였다. 이 말 하나에 눈이 뒤집힌 콘크리안들이 총 궐기했다. 뭐 친북좌파? 저거떨이 김정일이의 지시를 받는거라고?
마침 오늘이 6.25다.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이다.
맨주먹 붉은피로 원수를 막아내며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찬 날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내나라 내겨레
어릴땐 몰랐는데 지금 가사를 쓰다보니 참 어지간히도 숭악한 가사다. 하지만 콘크리안들은 여전히 가슴이 울컥울컥한다. 어떻게 지킨 나라인데.. 얼마나 피를 흘리며 지킨 나라인데.. 저 극악무도한 친북좌파들이 나라를 송두리째 김정일에게 바치려고 한다. 철없는 어린 것들을 혼구녕 내줘야하고, 친북좌파들은 때려 잡아야 한다. 그래서 서둘러 군복을 꺼내입고 쇠파이프와 가스통으로 무장하고 나라를 구하려 장엄하게 나간다.
‘물어’ 하면 물던 개도 상대가 호랑이라면 물지 않는다. 그 정도는 생각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의 작동이 완전히 멈춰 선 콘크리안들은 ‘물어’ 하면 상대가 누구든 달려든다. 완전 멸종된줄 알았던 이 인종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조중동 사주들이 사회와 격리시킨 채 남몰래 길러오고 있었다. 조중동 족벌 언론사주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최후의 개.. 전설의 인종 콘크리안들이다.
→ 조중동 살리기 1 – 멸공 숭미 기독근본주의
→ 조중동 살리기 2 – 정치인과 종교인의 밥줄
→ 조중동 살리기 3 – 미디어 세뇌의 무서움
→ 조중동 살리기 4 – ‘보이지 않는 손’이 없다
→ 조중동 살리기 5 – 족벌언론의 폐해
→ 조중동 살리기 6 – 지금의 조중동은 민족의 해악
→ 조중동 살리기 7 – 조중동을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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