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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양력을 쓸까 음력을 쓸까 2 - 명절 제사 생일

보름달이어야 하는 팔월한가위(추석)를 음력으로 따지는 것은 당연하겠다. 또 달과는 관계가 없더라도 설과 같은 민족고유의 명절도 전통을 따라 음력으로 쇠는 것 역시 자연스럽겠다. 그러나 부모의 제삿날이나 자기의 생일을 음력으로 쇠는 건 설득력이 별로 없다고 본다. 앞에서 알아본 것처럼 음력에선 해마다 11일의 오차가 발생하는 것을 약 3년만에 한꺼번에 보정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차가 보정되기까지의 중간 3년동안은 부모님 돌아가신 날짜와 내가 태어난 날이 아닌 엉뚱한 날에 제사를 지내거나 생일상을 차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하게 된다. 물론 경우에 따라 음력을 고집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는 있다.

먼저 제사. 돌아가신 조상님들에게 일년에 한번씩 상을 올리는 예이다. 따라서 양력을 사용하기 이전에 돌아가신 조상님의 경우엔 당연히 음력으로 따져서 제사를 지내는 게 맞다. 그 조상님은 전혀 양력의 날짜 개념이 없으시기 때문에 분명히 음력으로 날짜를 헤아리시고 제삿상을 받으러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삿상 드시러 오셨다가 헛걸음을 하시면 분명히 민망해서 노하신다. 조상님 열받으시면 후손들 좋을리 없겠지. 제사는 분명히 음력으로 모시는 게 맞았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양력을 쓰기 시작했는지 보자. 1896년 1월 1일을 기해 공식적으로 양력이 채택되었다. 물론 모든 국민들이 양력에 익숙해진 것은 그로부터 꽤 한참이 지난 뒤일테니 25년쯤이 흐른 1920년경에 전국민이 양력에 익숙해졌을 거라고 치자. 따라서 아무리 조상님이라 할지라도 1920년경 이후에 돌아가신 분들이시라면 확실하게 앙력의 세상에서 양력의 개념으로 살다 가신 ‘양력세대’들이시다.

요즈음 제사는 몇대까지 지낼까? 고리타분한 예법을 따지자면 4대까지 지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하는 집은 일부 종가집을 빼고는 없을 것이다. 요즈음 제사는 대개 부모님까지만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제사를 모셔야 할 부모님이 1920년 이전에 돌아가셨을 경우가 과연 있을까? 극히 일부 고령자나 어릴적 조실부모한 중노년들의 경우가 해당되겠으나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할아버지까지 제사를 지낸다고 해도 할아버지가 1920년 이전에 돌아가셨을 경우 역시 별로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요즈음 제사를 지내는 조상님들은 대부분 양력의 세상에서 살다 가신 양력세대들이시다. 양력을 모르고 가신 분이라면 모를까 양력의 세상에서 살다 가신 분을 음력으로 따져서 제사를 모시는 건 넌센스다. 모여계시는 저승의 달력이 음력 달력만 있다면 모를까 오히려 만세력이 없는 조상님들이 날짜를 잘못 알고 제삿상 드시러 왔다가 헛걸음 하는 코메디가 생기기 십상이다.

제사를 음력으로 모시는 건 이제 곧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생일.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당연히 양력생일로 출생신고를 하겠지만 나이가 든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주민등록상 생일이 음력생일로 올려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모든 일상생활은 양력으로 살면서 굳이 태어난 날만큼은 음력으로 환산해서 출생신고를 했다는 것인데 이거 참 이상하다. 매년 생일을 찾아먹을 때마다 음력이 표시된 달력을 봐야만 자기 생일이 언제인줄을 안다. 또 말했듯이 오차가 보정되기 전까진 실제로 지난번 자기 생일이 지난지 아직 일년이 안 지났는데도 한살 더 먹는다며 생일상을 받게 된다. 100% 양력세대가 100% 양력사회에 살면서 왜 이렇게 불편하게 음력생일을 고집할까? 아무리 이런 것들이 감성적인 차원이니 민족 전통이니 어쩌니 해도 생일을 음력으로 따지는 건 한가지 이유밖에 없어 보인다. 즉 우리 국민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운명학, 바로 토정비결이나 명리학의 영향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세번째. 위에서 언급한대로 사주명리학에서는 立春을 기준으로 새해를 시작한다고 했다. 따라서 ‘띠’ 역시 立春에 따른다. 예를 들어 올 2008년 2월 5일에 태어난 아이는 올 음력설이 2월7일이므로 아직 무자년이 아니니 당연히 전년의 정해년 돼지띠일 것 같지만 2월 5일이 입춘(2월4일) 이후이므로 이 아이는 쥐띠가 된다. 이무렵에 태어나신 분들은 다시한번 찬찬히 자기 띠를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의외로 띠가 바뀌는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뿌리깊게 박혀있는 운명학, 토정비결과 명리학. 명리학에서는 사람의 출생년월일시에 해당하는 四柱인 年柱, 月柱, 日柱, 時柱를 적용하여 사람의 인생을 알아보고, 토정비결에서는 時柱는 제외한 年柱, 月柱, 日柱를 數理法에 대입하여 數로 변환한 뒤 다시 이를 주어진 공식에 따라 계산해서 얻어진 값으로 운세를 풀이하는데.. 이 모든 것이 음력을 기준으로 이루어 진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음력이 아니라 24절기와 절입일이라는 좀 복잡한 개념이 더 적용된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겐 그걸 그냥 음력이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의 아이가 태어나면 음력 생일을 따져보고 그것을 기준으로 자기 자식의 미래를 본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이렇게 음력 생일을 중시하는 것 같다. 사주는 당연히 음력생일로 보는거잖아..

그러나 사주팔자를 보기위해 음력생일을 따지는 것이라면 사실은 음력생일을 중요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음력 생일만으론 사주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24절기를 따져야만 사주가 세워진다. 그래서 점쟁이나 명리학자들은 음력생일을 대든 양력생일을 대든 반드시 만세력을 보고 사주를 세운다. 음력이든 양력이든 날짜만 가지고서는 사주를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월 몇일 음력생일을 중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일은 양력으로 쇠고 필요하다면 ‘갑자 을축’ 이렇게 사주를 외워두는 게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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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중간에 생뚱맞게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의 양력보다는 봄에 새해를 시작한다는 음력이 심정적으로 정이 가기는 하지만.. 어차피 음력 정월역시 요즘 세상에서 봄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 ‘택일’ 같은 것을 할 때에는 할 수 없이 음력날짜를 따져야 하겠지만 그것 역시 일반인들과는 무관한 세상, 이제 요즈음 세상에서 음력이 필요한 곳은 더 이상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이치적으로는 분명 이러하지만.. 띠를 중요시하고 음력명절을 즐기는 국민들의 뿌리깊은 문화전통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터.. 따라서 음력은 우리 국민들에게 앞으로도 영원히 중요한 것일 듯 하다. ^^ 우리나라에서 양력과 음력의 공존은 어쩔 수 없겠다. 내 개인적으론 택일이나 명절과 띠는 음력으로 계속 따지되, 제사와 생일은 이제 양력으로 다들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정말 어색한 거 한가지. 양력 1월 1일부터 무자년을 운운하는 것..
엊그제 2008년 1월 1일은 분명히 무자년이 아니다. 여전히 정해년이다. 일반적으로는 양력 2월 7일이 음력 1월 1일 설날이므로 2월 7일부터가 무자년이다. 또 명리학으로는 올해 입춘이 2월 4일이므로 2월 4일부터가 무자년이다.

아예 음력개념을 말살할 요량은 아니라고 했으니 이것만은 지키자. 양력 새해에 무자년이 밝았느니.. 이런 말은 안 하는 게 맞겠다.


→ 양력을 쓸까 음력을 쓸까? 1 – 한해의 시작은 왜 January?
→ 양력을 쓸까 음력을 쓸까? 2 – 명절 제사 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