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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깨달음 4 - 불가사의한 과정

그 첫번째가 몽중일여(夢中一如)의 단계. 깨어 있을 때 완벽하게 三昧(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상태)가 유지가 되면 나중에는 꿈속에서도 깨어 있을 때와 꼭 마찬가지로 삼매가 유지가 된다고 한다. 이것을 몽중일여라고 한다.


두번째는 숙면일여(熟眠一如)의 단계이다. 깊은 잠에서도 삼매가 유지되는 단계다. 오매일여(寤寐一如)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즉 깨어있거나 잠에 빼져있거나 항시 삼매가 유지 된다는 뜻이다. 이 오매일여의 단계를 불퇴전(不退轉)의 경지라고 하는데, 다시는 보통사람의 삶으로 퇴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이 자칭 도사라고 한다.

사실 여기서부터 약간 껄적지근하다. 꿈에서 삼매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비슷한 경험을 우리도 하니까. 그러나 깊은 잠에 빠져있어도 그 상태를 유지한다고? 뭔가 작위적이고 추상적인 냄새가 난다. 그러나 자기가 그렇다고 우기면 도리가 없다.

오매일여가 되면 모든 번뇌가 소멸되고 무기와 번뇌가 밝음으로 꿰뚫어지는 ‘內外明徹’이 된다고 한다. 이 단계를 넘어서자마자 드디어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돈오(頓悟)다. 의식의 주체를 보게 되는 이 돈오는 대부분 내외명철과 동시에 일어난다고 한다.

돈오 후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스승에게 인가를 받게 되는데, 스승으로부터 인증을 받으면 그때에 돈오했을 때 알게 된 의식의 주체를 어떻게 쓰는지를 알게 된다고 한다. 두번째 깨달음이다. 돈오가 저 언덕에 배가 닿은 상태라 표현한다면 두번째 깨침은 배를 버리고 저 언덕에 내려선 상태를 이야기한다. 듣기만 해도 그럴듯한 단계이다. 음양공부를 할 때 어느 단계에서 그 음양이란 용어에서 자유로워지고 결국엔 그것을 버리듯 하는 건가 보다.

세번째 깨달음도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이 경지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지라면 이게 도대체 뭔가? 부처님이나 예수님만 이르렀던 경지인가보다.



勇猛정진
잠도 안자고 먹지도 않고 눕지도 않으면서 일주일 혹은 한달을 용맹하게 수련만 하는 아주 무식스런 방법이다. 만약에 진짜로 이런 수련을 시작했다고 치자. 일주일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앉아서 버티면, 사람은 당연히 ‘돈다’. 환각상태에 접어들면서 환청이 들리고 환상이 보인다. 극한상황에 이르렀을 때 아무런 고통이 없이 스르르 편안함 속에서 최후를 맞듯이 이들은 그러한 편안함의 극치와 극렬한 엑스터시에 빠진다.

얼마전 어떤 비구니 하나가 백일동안 단식투쟁을 했느니 어쩌느니 했다가 그 진위 여부로 곤욕을 치루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런 얘기들.. 괜히 웃음거리만 된다. 그래서 선사들로부터 수습된 고행의 결정체 사리를 보고도 ‘욕구불만의 결정체’ 라는 둥, 영양결핍에 의한 단순한 결석이라는 둥..그러지 않는가.


깨달음의 원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중도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라 하셨다는데 이러한 극한방법을 동원하면 환각상태에 빠짐을 경고하신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솔직히 전혀 짐작도 되지 않는 그런 세계이지만 틀림없이 내가 알지 못하는 그런 경지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들의 깨달음, 혹은 '그들만의 깨달음' 자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다만 이 돈오라는 것, 깨달음이라는 것의 ‘인증’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내가 깨달았는지 환각인지..이런걸 도대체 누구에게 인증을 받는단 말인가?


→ 깨달음 1 – 쉽게 생각해 보자
→ 깨달음 2 – Enlight? Realize?
→ 깨달음 3 – 중간단계의 부작용
→ 깨달음 4 – 불가사의한 과정
→ 깨달음 5 – 추상화는 사기다
→ 깨달음 6 – 깨달음도 혹시 사기?
→ 깨달음 7 – 이단아, 성철스님
→ 깨달음 8 – 절에 갈 필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