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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깨달음 2 - Enlight? or Realize?

기독교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세상 고난 이기고서 떠나가리라’

이 말이 그냥 빨리 죽어버리겠다는 뜻만은 아닐 터.. 세상살이는 이렇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고난의 연속인가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통해 열반에 드는 것이고, 기독교에서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말 같지만 사실은 완전히 똑 같은 말이다. 苦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그래서 예수님과 부처님, 그분들끼리는 통한다. 제자라는 무식한 잡놈들이 다퉈서 문제지.

깨달음이란 것을 종교를 완전히 배제하고 우리의 일상용어로 말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의 동요없이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 혹은 ‘세상의 모든 돌아가는 이치가 유리알처럼 환히 보여 모든 것에 초월할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도인의 경지이고 깨달음을 얻은 해탈, 열반의 경지인 것 같다.

하지만 겪어봐서 안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이거 불가능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별 괴상한 사람들과 만나 부딪히다 보면 평상심을 유지하기란 하늘에 별 달기보다 어렵다. 한창때 사랑하는 사람을 사정상 돌부처 보듯 해야 하는 것이나 죽이고 싶도록 증오하는 사람을 웃으면서 대하기 같은 것도 사실상 범인들에겐 불가능하다. 깨달음의 경지, 도인의 경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평상심 지키기의 어려움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정말로 대단한 경지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또 세상의 모든 이치가 머리속에 환하게 들어와 있으면 세상사 그 어떤 것도 내 마음을 탁하게 만들 수 없겠다. 분노도 없고 노여움도 없고 슬픔도 없겠다. 정말로 이러한 경지가 있다면, 물론 있으니까 그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밑에 제자들이 꾸역꾸역 몰려 있겠지만, 정말로 좋겠다.

그래서 그 황홀한 경지를 맛보려 오늘도 심심산천 선방에서, 빌딩숲 요가원에서, 단전호흡수련원에서, 혹은 계룡산 돌덩이 밑에서 정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개중엔 공중부양이나 유체이탈 같은 허황된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의 수행중, 깨달음의 그 긴 과정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부작용 같은 현상들을 말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들이 바로 산란심(번뇌심), 혼침, 수마, 무기등이 되겠다. 그것들이 뭔지 간단하게나마 짚어보고자 한다. 상기병만 얘기하고 끝내려니까 뭔가 허전해서 전체과정에 나타난다는 그것들을 알아보고 싶어졌다.


→ 깨달음 1 – 쉽게 생각해 보자
→ 깨달음 2 – Enlight? Realize?
→ 깨달음 3 – 중간단계의 부작용
→ 깨달음 4 – 불가사의한 과정
→ 깨달음 5 – 추상화는 사기다
→ 깨달음 6 – 깨달음도 혹시 사기?
→ 깨달음 7 – 이단아, 성철스님
→ 깨달음 8 – 절에 갈 필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