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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개고기 문화 1 - 버리는 것이 맞다

개고기 문화에 대한 시각과 입장차이, 이것이 이번 주제의 중요한 상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잠깐 이에 대한 생각을 먼저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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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개고기 문화'와 어떤 나라의 '할례 문화', 이성적으로 따지면 둘은 분명히 다르다.


클리토리스 제거는 여성의 성적 쾌감을 근본적으로 앗아가 버린다는 여권의 문제를 떠나 인류 번식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는, 자연의 이치에 반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그래서 이 관습은 야만적이기에 앞서 반 인류적이다.


반면 개고기문화는 단순히 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사람들의 관념차이일 뿐이다. 한쪽은 거의 사람과 비슷한 친구로 생각하고 한쪽은 그냥 잡아먹어도 되는 보통의 짐승으로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내가 개고기문화와 할례문화를 같은 선상에 놓은 건 분명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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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는 것은 감성의 문제라고 했다. 따라서 그건 자유의사이다. 이성적으로 설득한 들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개를 그냥 보통 짐승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유이듯이, 그들이 개를 인간과 거의 비슷한 친구로 생각하는 것도 자유이다. 우리가 개고기를 먹는 것이 우리 자유이듯이, 개고기를 먹는 우릴 싫어하는 것도 그들의 자유이다. 왜 개고기를 먹으면 안되는지 그들이 우릴 이성적으로 설득할 수 없듯, 왜 개고기를 먹어도 괜찮은지 우리도 그들을 이성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

비유를 들어보자.

최수종이 인기가 있지만 일부 사람들은 최수종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솔직한 말로 '존나 재수없다.' 마누라에 대한 사랑표현이 지나치게 유난스럽고 닭살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최수종의 잘잘못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진짜로 마누라가 사랑스러워 그리 하는 것이든, 이미지관리 전략이든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내 마누라 이뻐서 그리 하는데 니들이 웬 참견이냐고.. 맞는 말이다. 다른사람들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마누라에 대한 애정표현에 대해 사람들의 가진 생각들이 다른 것일 뿐이다.

여기서 최종판단은 최수종의 몫이다. 각별한 마누라 사랑표현을 계속 밀고 갈 것이냐, 안티팬을 위해 내가 자제를 좀 할 것이냐.. 그러나 최수종은 그대로 밀고 나가는 걸 택한 것 같다.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는 초대형 수퍼스타로서 막강한 스타 파워를 가졌기 때문이다. 일부 안티팬들의 독설은 무시해도 될만큼 막강한 파워를 이미 가졌다. 그리고 두번째는 그런 이미지 전략으로 얻는 게 더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전략 때문에 같은 남자들중 일부가 아무리 자기를 증오한다고 해도 그 전략으로 확보하는 팬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최수종의 유난스런 사랑표현은 최수종이 옳은 것도 팬들이 옳은 것도 아니지만 최수종은 그걸 밀고 나가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얼마전 여가수 유니라는 아이가 안티팬의 극성때문에 자살했다고 했다. 티비에서 얼굴을 본적도 없는 아이이니 어떤 아이였는지, 왜 안티팬이 그렇게 많았는지 난 전혀 모른다. 아마 지나치게 예쁜척한다, 역겨울 정도로 깜찍한 척한다.. 이런것이 아니었나 싶다. 틀림없이 소속사 이미지전략의 실패일 것이다. 빨리 이미지 전략을 수정해서 바꿨어야 했다. 그러나 소속사도 유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가 진짜 얼굴도 예쁘고 천성도 그렇게 깜찍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걸 억지로 아닌척하기가 오히려 어려웠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아인 안티팬들이 증오하는 걸 끝내 고치지 못했고 결국 자살을 택했다. 예뻐서 예쁜척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그걸 억지로라도 고치지 못한 것도그 아이의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도 상황은 이 아이를 죽음으로까지 몰고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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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문제.
어느 한쪽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닌.. 그저 자기들의 자유의사,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나는 개를 음식으로 생각하고, 너는 개를 친구로 생각하고. 단지 그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이 문제로 감정이 서로 상한다. 하루에도 수십만마리 소를 도살하는 그들의 육식습관을 따지고 싶다. 그렇게 개를 사랑한다면서 하루에 몇천마리씩 보호소의 개들을 안락사시키는 그들의 이중성을 따지고 싶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다. 

이 평행선을 계속 고집하면 누구의 손해일지 그걸 살펴야 한다. 생각할 것도 없이 우리 손해이다. 게다가 이건 FTA 협상보다 훨씬 더 중차대한 국가와 민족의 이미지 문제이다. 잘못된 협상은 언젠가 바로잡으면 되지만 한번 일그러진 이미지는 좀처럼 되찾아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좀 외람된 얘기지만.. 지난 월드컵 좀 어거지같았던 우리나라의 4강은 잃은 것이 더 많은 이벤트였다. 실추된 민족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은 거의 한 세대가 바뀌어서야 가능해진다.

외국인들이 가진 한국인의 이미지 밑에는 늘 ‘개고기 먹는 민족’이란 게 깔려있다. 이는 ‘자기에게 충성 바친 충직한 신하를 배신하고 잡아먹는다’는 이미지로 확대된다. 이게 무섭다. 그들에게 있어 '개'는 충직한 신하이자 둘도 없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인들을 경계한다. 언제 나를 배신하고 등 돌릴지 모를 사람들. 내가 좀 오버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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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할례'를 야만적 관습이라고 혐오한다면, 우리의 개고기 문화가 혐오받는걸 뭐라 할 수 없다. 인정할 수 없겠지만 인정해야 한다. 혐오하는 건 그들의 자유의사이기 때문이다. 혐오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둘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여성을 단지 애 낳는 짐승으로 보고 클리토리스를 잘라버린 짓이나, 인간의 친구인 충직한 개를 배신하고 잔인하게 잡아 먹는 짓이나.. 혐오스럽긴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혐오의 정도차이로 본다면.. 할례는 생명이 달린 문제까지는 아니므로 개를 잡아 먹는 걸 오히려 더 혐오할 수도 있다. 즉 서양인들은 할례보다 개고기먹는 걸 더 혐오할 수도 있다. 여기서 또 논리를 들이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논리인들 필요 없다. 혐오는 그들의 감정이며 자유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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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남이 싫어하면 까짓거 안 하면 된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개고기 먹는 거.. 이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 것은 모조리 다 버리고 백인들을 무작정 따라 하는 우리들이, 굳이 개고기문화만은 우리의 신성한 자존심이 걸려 있는 양 버티는 것은 정말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개고기를 안 먹으면 당장 누가 죽어 나가는 것도, 우리의 민족적 자긍심이 날아가는 게 아니다. 안 먹으면 안 먹을수록 오히려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우린 이 문제에 이상하게 집착한다. 한국인들 자체내에서도 개고기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들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개고기 문화를 혐오하며 그걸 추방하자고 주장한다. 이런 마당에 서양인들이 합세해서 우리의 개고기 식탁을 간섭한다고 불쾌해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같은 한국인들도 뭐라고 할땐 괜찮다가 서양인들이 뭐라고 하는 건 기분 나쁘다? 이건 자격지심이다. 같은 한국인들의 비난을 받아들이듯이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허긴 우리가 우리의 독특한 문화를 고집해도 될 만큼 강한 국력과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다면 고집을 부려도 될지도 모른다. 막강한 스타파워를 가진 최수종처럼 말이다. 또 우리의 독특한 식문화를 동경하는 나라들이 많다면 그들을 규합해서 세를 모으면 된다. 다 같이 세계인을 계몽해서 개고기 식습관에 동참시키면 되니까.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더 잘 안다. 고집을 부려봐야 따돌림만 당하고 비웃음만 점점 더 산다.

우리들은 '최수종'이 아니다. 잘못하면 '유니'꼴이 된다.
그렇다면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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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에게 魂이 있다고 느낀다. 다른 동물들과는 분명히 다름을 느낀다. 그래서 예전에 멋도 모르고 내가 맛있게 씹어 먹었었던 개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를 했다.

개고기 문화 이젠 버리자.


→ 개고기 문화 1 – 버리는 것이 맞다
→ 개고기 문화 2 – 독일병정의 생각
→ 개고기 문화 3 – 싣니보이의 생각
→ 개고기 문화 4 – 요팡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