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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개고기 문화 4 - 요팡 마무리

일단 내 잘못이 크다. 인종차별을 이야기하다가 느닷없이 개고기 이야기를 꺼낸 내가 잘못이다. 덕분에 인종차별에 대한 주제는 관심에서 사라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개고기에 대한 주장들이 다 일리가 있다. 독일병정의 말처럼(원래 이거 내가 종교이야기에서 줄기차게 주장하는 건데 표절당한 느낌이다 - -::) 남의 입장을 ‘틀림incorrect’으로 보지 않고 ‘다름 different’으로 인정하며 존중하면 된다. 혹 마음이 열리면 상대방의 주장중 일부를 내가 취하면 더 좋고. 그래서 서양인들은 우리의 개고기 식습관에 대해 더 이상 재랄하지 말고, 우리도 그들의 심정을 고려하여 잘 안 보이는데서 먹거나 덜 먹으면 참 좋겠다.


1. 동물의 생명은 다 존귀하다. 인간의 입이 즐겁자고 동물들을 열악한 환경하에서 식용으로 집단사육하다 잔인하게 잡아먹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사람을 따르는 충직한 개를 그렇게 잡아먹는다는 것은 너와 나의 문화를 떠나 잔인한 짓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개에 대해 유별난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서양인들이 한국인들의 개고기 식습관을 야만적으로 보는 걸 이해한다. 개고기 문화를 내가 반대하는 것은 ‘서양인들이 그 문화를 혐오하기 때문’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그것이 당연히 옳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은 육식동물이 아니다. 불을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 어찌어찌하다가 고기를 먹게 되었지만 인간이 고기를 먹음은 아직까지 여전히 부자연스럽다. 원칙적으로 인간은 개고기뿐만 아니라 모든 고기에서 자유로와져야 한다. 육식숭배는 인류의 존폐와도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서양인들이 소고기를 먹는 것도 당연히 배척받아 마땅하다.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 육식숭배는 이미 인류의 보편적 정서가 되고 말았다. 곧 기후의 재앙이 다가오면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그것을 바꾸기엔 우리로선 역부족이다.

개는 분명히 다른 동물과 다르다.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개에겐 혼이 분명히 있다. 죽을때까지 주인을 충성으로 섬긴다. 그런 동물이 개다. 죽을때도 주인의 품에서 죽고 싶어하는 그런 감정을 지닌 우리의 친구다. 키우던 개가 죽으면 한동안 가슴이 구멍이 뚫려 주인을 슬프게 하는 동물이 바로 개다. 달리 먹을게 없어서 기르던 개를 잡아먹었다면 그건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력에 좋다고, 수술 후 회복에 좋다고, 또 그냥 맛이 있다고 개를 잡아 먹는건 슬픈 일이다. 이거 하지 말자.

이것이 서양인들에게 밀려서 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 상하고 찝찝하다면.. 발상의 전환을 하자.
이번 기회에 소고기를 끊어버리자.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강요하자.
'야만족속들아 소고기 먹지 말아라'



2. 버뜨, 서양인애들이 개에 대해 가진 유별나고 비상식적인 개념을 우리에게까지 억지로 ‘강요’하면서 국제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브리짓 바르도(내가 소피아 로렌이라고 한건 착오)가 만약 진정한 동물 보호론자라면 그년은 마땅히 미국에 가서 미국의 축산산업과 맞짱을 떠야 한다. 또 자기네 서양인들의 육식숭배와 맞짱을 떠야 한다. 근데 이년은 이상하게도 한국의 개고기 문화만 트집을 잡고 있다. 그래서 이년은 ‘동물보호론자’가 아니라 ‘강아지사랑에 돌아버린 인종차별주의 미친년’일 뿐이다. 갈보같던 년이 늙어서까지 재랄을 한다.


개라고 해서 존중받아야 할 특별한 동물인 것은 아니다. 다만 좀 영리한 동물일 뿐이다. 너무 영리해서 꼭 혼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개도 동물이다. 게다가 우리가 먹는 개는 인간세상과 단절하여 식용으로 집단사육한 개다. 식용으로 사육한 소와 다를 바 없다. 소처럼 덜 영리한 동물은 잡아 먹어도 되고 개처럼 영리한 동물은 잡아먹으면 안된다는 것, 개처럼 사람을 따르는 동물은 먹으면 안되고, 소처럼 사람을 무감하게 생각하는 동물은 먹어도 된다는 것은 모순이다. 둘다 먹거나 아니면 둘다 먹지 않는게 이치에 맞다. 따라서 개고기를 먹고 안 먹고는, 소고기를 먹고 안먹고처럼 개인 호불호의 문제이므로 다른사람에게 강요할 부분이 아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원래 동물의 생명은 하나도 존귀하지 않다. 인간을 포함해서 말이다. 서로 죽이기도 하고 잡아먹기도 하는 게 자연의 섭리이다. 육식동물이 다른 동물을 죽여 잡아먹는 것이야 하나도 이상할 게 없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사실은 이상한 행동이 아니다. 지금이야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감방에 가고 난리가 나지만.. 자연상태에서 음식을 두고, 여자를 두고 서로 싸우다 죽이기도 하는 건 아주 자연스런 행위들이다. 따라서 사람이 때로는 개를 죽여서 좀 잡아 먹기로서니.. 이거 아무 일도 아니다.



3.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럽고 아니꼬와도 지금은 우리가 현명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때이다. 조상탓인걸 모르고 지들이 원래 잘난 양 뻐기는 그 흰둥이들을, 대운을 만나 큰소리치며 호의호식하는 그 흰둥이들을, 고기 많이 쳐먹어 누린내 지독한 그 흰둥이들을.. 꼴 보기 싫지만 그냥 참고 봐주자는 얘기다.

옷에 겨자가 좀 묻어있는데 그 셰이들이 죽어라하고 그게 똥이라면서 지랄을 한다. 똥이 아니라 겨자라고 아무리 말해도 알아쳐먹질 못한다. 그 씨바들이 그 재랄을 떨면서 우리 영양탕 먹는게 그렇게 싫다고 난리라면, 까짓거 ‘예라 그래라 이 더러븐 셰이들아 안 먹는다 안 먹어’ 하면서 들어주는 척 하자는 얘기다. 타일러봐야, 설명해 줘봐야 못알아 쳐먹는 그들을 설득하느라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그냥 우리가 피해주자는 얘기다. 그게 지금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영양탕 안먹으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낙후되는가? 영양탕 안먹으면 생산이 줄고 수출길이 막히는가? 영양탕 포기하면 민족혼을 팔아먹는 것인가? 영양탕 포기하면 빈혈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생기는가? 영양탕 포기하면 분해서 밤에 잠이 안 오는 사람이 많은가?

아니지 않는가. 그냥 '기호식품' 하나 줄이는 일이다.

물론 우리가 힘이 세다면야 얘기는 다르다. 비상식적인 강요를 하는 (감히 하지도 못하겠지만) 걔네들을 벌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 어디 현실이 그런가? 지구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 족속들이 한마음이 되어 우리를 야만적인 관습을 지닌 민족으로 호도하고 있지 않든가? 그 영양탕 따위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영리한 우리는 어떻게 하면좋은가?.. 그걸 잠시 놓아버리면 된다. 이제와 조상탓을 한들, 선배들 탓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저 때를 기다리며 참다가 때가 오면 그때 맘껏 먹으면 된다.

혹시 우리가 약해서 당하는것 같아 울분이 치솟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에너지를 다른 쪽으로 발산하자. 내 행동거지 조심하고, 내 자식들 엄하게 교육시키고, 내 주변사람들에게 모든 면에서 본보기가 되자. 이렇게 나로부터의 혁명을 시작하고 그것에 내 주변 사람들을 조금씩 동참시키자. 

정치꾼들이나 언론꾼들을 기대하다간 우리나라의 미래가 더 이상 없음을 잘 알지 않는가. 우리나라가 깨어나는 길은 이 방법밖에는 없다. 내가 나를 개혁해 나가는 방법. 박정희가 다시 나오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 위로부터의 개혁은 없다. 언젠가 정도령이 나타난다고? 웃기지 마라. 국민 각자가 실천하는 ‘자신으로부터의 작은 개혁’에서 모인 힘만이 우리 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나라가 강해지는 날,
그때 전 세계인과 개고기 축제를 벌이자.
그때까진 좀 참자.

나도 안다.
개고기 옹호 주장이 '개고기를 먹고 싶다' 혹은 '개고기를 먹겠다' 는 게 아니란 걸.
이 얘긴 일부 '죽어도 개고기를 먹겠다'고 외치는 그들을 위한 얘기다.


혹시 가능하다면 이왕 참는김에 소고기도 같이 참아보자.
그럼 고기를 아예 안먹는 사람으로 변한다.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지구의 미래가 있다.


→ 개고기 문화 1 – 버리는 것이 맞다
→ 개고기 문화 2 – 독일병정의 생각
→ 개고기 문화 3 – 싣니보이의 생각
→ 개고기 문화 4 – 요팡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