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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지단 퇴장 유감 2 - 언어폭력이 더 나쁘다

전방 GP에서 동료들을 무차별 살해한 병사가 밝힌 범행동기는 바로 고참들의 ‘언어폭력’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대다수 한국남자들은 ‘븅신 그정도도 못 견디는 넘이.. 쯔쯔’ 이랬다. 오죽했으면 고참이나 동료들이 왕따시키면서 언어폭력을 가했을꼬.. 그래서 군대에선 구타가 허용되어야 한다니까, 때리질 못하게 하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거등.. 어쨌든 무서운 언어폭력에 시달리던 그 유약한 병사는 끔찍한 살해사건을 저지른다.

상습적으로 자기를 구타한다는 남편을 살해한 여자가 무죄로(집행유예였나?) 석방된 일이 있었다. 근데 말이지.. 그 여자가 상습적으로 무능한 남편의 자존심을 긁는 잔소리, 바가지를 긁어댔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이것들은 자격지심에 찌든 남편에게는 심각한 언어폭력이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상습적으로 남편에게 언어 폭력을 행사하는 여성은 죄가 없을까? 어쩄든 마누라의 언어폭력에 시달리던 무능한 남편은 주먹을 참기가 참 어려웠겠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언어폭력좀 당했기로서니 동료병사들을 죽여버리거나, 마누라를 상습적으로 구타한 것은 백번 잘 못했다.


한편, 착실하던 박찬호가 어느날 운동장에서 상대 선수에게 이단옆차기를 가했다. 왜 그랬을까? 그건 상대방 선수의 인종차별적인 욕설때문이었다. 까짓거 그런 말좀 들었다고 그렇게 이단옆차기까지 해야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이다. 인종에 대한 차별은 생각외로 심각하다. 인종은 내 잘못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난 그저 우리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죄밖에는 없다. 그러나 세상은 다르다. 앵글로 색슨을 위시한 코케이지언들이 세상을 주름잡는 세상에서 백인종이 아닌 다른 인종들은 영문도 모른채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산다. 같은 민족끼리만 자기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

이거 굉장히 기분 나쁘다. 굉장히 정도가 아니라 기분이 이만저만 상하는 게 아니다.
예전에 어떤 시골 백인마을의 식당에 갔을때의 일이다. 종업원의 안내로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주문했는데, 얼마후 종업원이 다시 와서는 자리를 좀 저쪽 조용한 곳으로 바꿔주겠다고 한다. 흔쾌히 그러라고 하고 자리를 안쪽으로 바꿨다. 얼마후 식사가 한창 진행중인데 느닷없이 계산서가 테이블위에 올려졌다. 신경쓰지 말고 천천히 들라고 하면서.. 식사가 다 끝난 후 손님이 계산서를 달라고 했을 때 계산서를 가져다 주는게 상례이다. 손님의 요구가 없는데에도 계산서를 갖다주는 것은 영업시간 종료가 임박했을 때 뿐이다. 그러나 지금 시간은 한창 점심시간이다. 새로 들어오는 손님들도 많다. 같이 있던 일행이 눈치를 채고 씁쓸한 표정으로 얘기해 줬다. ‘빨리 먹고 나가라는 소리네’ 그러고 보니 아까 자리를 안쪽 깊숙한 곳으로 이동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다른 백인손님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우릴 잘 안 보이는데로 옮긴 게다.

처음으로 인종차별을 당한 느낌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같은 한국사람들끼리 서비스 차별을 당했다면 당당하게 항의라도 할텐데 이건 문제가 달랐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들이 우리에게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을 한 것도 아니고 그들의 행위에도 일점 의혹도 없었다.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주고 계산서 미리주면서도 신경쓰지 말라고 웃으면서 이야기 했으니.. 얼핏 들으면 그들은 아무런 의사가 없었는데 괜히 우리들이 자격지심으로 착각해서 그런 것이라고 느낄수도 있겠지만 이런 교묘한 인종차별은 수도 없이 많다.

박찬호는 이런 무언의 인종차별을 당한게 아니라 면전에서 인종차별적 욕설을 들었다. 순간적으로 태권도 기술을 발휘해서 이단옆차기를 날린 박찬호를 그래서 나는 이해했다.



비과학적 룰과 껄끄러운 진행으로 스트레스만 주던 월드컵이 드디어 끝났다. 그 스트레스의 행진은 급기야 마지막 날까지도 이어졌다. 지단의 돌발적 박치기와 퇴장.



평소 조용하고 차분하다는 지단이 왜 그런 돌발적 행동을 했을까? 월드컵때마다 더티한 플레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이태리 선수들이 도대체 지단에게 어떤 말을 했길래 지단이 순간 이성을 잃고 그런 행동을 했을까.

유난히 인종차별이 극심한 곳이 유럽의 축구계다. 얼마전 미국의 한 스포츠채널에서 그걸 특집으로 방영했을 정도이다. 아프리카 흑인선수가 공을 잡으면 관중석에서 바나나가 날아들고 멍키라고 야유하는 건 예사이다. 그렇게 모욕을 당한 흑인선수들이 경기도중 울분을 참지 못해서 경기장을 그대로 나가버리고 동료들이 달려가서 그를 달래는 장면이 여러 번 방송되었다.

상대선수와 언쟁끝에 돌발 박치기를 날린 지단. 그는 알제리계 프랑스인이다. 스스로를 ‘예배하지 않는 무슬림’이라고 얘기한다고 한다. 그는 이번 사건 이전에도 유독 인종차별적 발언에 대해선 분을 참지 못하고 사고를 친 전력이 있다고 한다. 아마 유럽의 광범위한 인종차별 문화와 깊이 연관이 있는 듯 하다. 이번에도 이태리의 마테라치가 무슬림 테러리스트와 연관시켜 욕설을 해서 지단을 자극했다는 것이 가장 정통한 소식이다.

프랑스의 인종차별 감시단체인 ‘SOS Racism’은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비열한 테러리스트(Dirty Terrorist)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또 지단의 가족을 모욕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브라질 TV ‘글로부’는 독화술 전문가의 말을 인용, 마테라치가 2번이나 지단의 누이를 ‘매춘부’로 불렀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도 역시 독화술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마테라치가 ‘테러리스트 매춘부의 아들’이라고 놀렸다고 보도했고 대중지 ‘더 선’도 같은 보도를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하르키스의 아들’이라고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르키스(Harkis)는 알제리 독립전쟁 때 프랑스 편에서 싸운 사람들로 알제리인에게는 심각한 모욕이다. 아마 우리에게 따지면 ‘이완용의 아들’ 정도가 되겠다. 또는 “나 어제 네 엄마랑 잤다. 너네 엄마가 알제리안 창녀란거 세상이 다 알고 있다” 등등 억측이 구구하다.

당사자들이 입을 닫고 있으니 알수는 없지만 그게 인종차별적 발언이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것도 정통백인들에게는 순수 백인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이태리인들의 입에서.


인정한다. 사실 언어폭력중 상당수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상대, 꼬라지를 모르고 날뛰는 상대, 사사건건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상대, 조직의 융화에 해를 끼치는 상대.. 물리적 폭력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니 이런 사람들에게 내 뜻을 전달하는 방법이 언어폭력밖에는 없을 수도 있다. 인격이나 외모를 모독, 비하하는 말이 가장 많고 비꼬거나 조롱하는 말이 그뒤를 따르고,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말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이 단지 그의 피부색을 가지고 또는 그가 단지 아랍혈통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모욕적인 인종차별적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부당하다. 인종차별적 욕설에 대한 지단의 돌발 박치기를 그래서 나는 이해한다.


‘상처로 깊이 남는 인종차별 욕설’과 ‘며칠 아프다가 낫는 가슴 박치기’ 뭐가 더 나쁜데?
‘언어폭력’과 ‘신체폭력’ 뭐가 더 나쁜데?


→ 지단 퇴장 유감 1 – 신체폭력, 언어폭력
→ 지단 퇴장 유감 2 – 언어폭력이 더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