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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사랑이 절실한 이.. 46년째 살아있는 루게릭병의 호킹박사

호킹박사
유명한 과학자중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이라는 사람이 있다. 거의 모두가 이 사람을 안다. ‘아 그 사람.. 휠체어타고 있는 과학자’. 이 사람이 유명한 것은 물론 그의 과학적 업적 때문일 것이다. 근데 우리들은 그의 업적을 전혀 모른다. 우주에 관련된 이론 물리학자라니 우리 실생활과는 전혀 관련없는, 아주 골치아픈 분야 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를 안다. 그렇다. 우리가 이 사람을 아는 것은 그가 ‘천재물리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휠체어 위의 이상한 모습의 과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중증 장애인이 천재물리학자? 이래서 사람들이 그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의 병이라는 루게릭병이 뭔지 알아본다. 근육은 망가지지만 지적능력은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 이상한 병, 그래서 과학자를 할 수 있는 거였다. 근데 이상한 점이 있다. 루게릭병은 발병후 1~5년 사이에 사망한다고 하는데 호킹박사 근황소식은 벌써 십년도 넘게 듣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루게릭병으로 46년째 살아있다
알면 알수록 이 사람은 희한하다. 그가 유난히 유명할 수밖에 없는 건 그가 ‘일이년밖에 못 산다는 루게릭병에 걸렸으면서 무려 50년 가까이 살아있다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중간에 결혼도 두번이나 했었고 자식들까지 있다. 현재 67세(1942년생)인데 21세때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었다니 무려 46년간 생존해 있는 셈이다. 남들은 짧으면 일년, 길어야 오년을 넘기기 힘들다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46년 동안이나 살아있는 걸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오래 살아있을 수 있었는지는 의사는 물론 그 누구도 모른다. 부자라서 비싼 약을 많이 써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불굴의 의지와 낙천적인 성격으로,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도전과 개척정신으로,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사실은 루게릭병이 아니어서.. 그러나 아무것도 호킹박사의 생존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의 생존은 한마디로 ‘기적’이다. 아니 폐암 말기 환자가 자연치료법으로 살았다는 것이 기적이라면, 호킹의 생존은 기적중의 기적, 기적의 할아버지쯤 된다.


그래서 설교의 메뉴
호킹박사 스스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의 가장 큰 업적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도 호킹이 위대한 까닭은 그가 천재라서가 아니라 장애를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목사 스님 신부 교수 선생 시인 소설가.. 먹물이 낀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설교한다. 호킹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고,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그래, 저런 사람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멀쩡한 나는 저 사람에 비하면..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약간 의아한 부분이 하나 있다. 일어날 확률이 없다시피한 기적의 케이스를 말하며 그걸 사람들에게 본보기 삼으라는 것이 과연 진정한 희망인가?


불가능한 희망은 떄론 무책임할 수 있다
일억불 로또의 주인공이 신문에 나온다. ‘저봐 누군가는 로또에 당첨되게 되어있다. 그게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그래서 그런 광고를 보고 수천만명이 매번 로또를 산다. 주식투자로 수십억 번 사람이 가물에 콩 나듯 소개된다. 그를 강사로 초빙해서 설명회를 열고.. ‘그래 나라고 저 새끼만큼 못할 이유 없지..’ 수천만 개미들은 피 같은 돈을 허망하게 날린다.

헛된 기대때문이다.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확률에 헛된 기대를 가졌다가 돈과 시간과 희망을 날린 것이다. 따라서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걸 기대하게 만드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호킹박사의 기적도 비슷하다. 그렇게 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그걸 아무 '생각없이' 설교하는 먹물들. 그들이 꼭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호킹박사와 전혀 일반 루게릭병 환자
‘난치병’ 환자는 나을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가 중요하다. 그것으로 삶과 죽음이 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불치병’ 환자들이라면 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불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이라는 것.. 이거 참 어려운 문제다. 이건 암과 싸우는 불굴의 의지, 내 신장을 떼어주니 마니하는 문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말하기가 이만 저만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잘못 말했다간 ‘희망을 버리고 빨리 죽어라’ 라고 하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말하려는 건 환자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루게릭병이 무서운 건, 정신은 말짱하지만 육체는 전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호킹은 바로 이 루게릭병 환자다. 발병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생각을 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그는 바로 죽는다. 한편 호킹은 천재 물리학자다. 아인슈타인을 능가할 정도의 사람이라고도 한다. 중증의 장애인이지만 그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것은 바로 그의 이런 천재성 때문이다.

호킹이 많은 먹물들에 의해 설교에 인용되는 것은 이 두 가지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46년을 연명하기만 했다거나, 그저 천재물리학자이기만 했다면 그는 설교에 인용되지 않았을 거다. 루게릭병에 걸렸으면서도 46년이나 살면서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그가 인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확률은.. 거의 제로다.

절대 다수의 루게릭 환자들은 소리소문도 없이 발병해서 이삼년 앓다가 스러진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생각보다는 많다고 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때로는 호킹에 대한 관심과 호킹에 대한 언급이 그들에겐 역겨운 일일 수 있다.


루게릭병 환자의 가족
몸을 못 가누는 환자의 병수발을 직접 해본 사람은 잘 안다. 환자의 가족이 얼마나 쉽게 지칠 수밖에 없는지를, 환자의 병수발 문제로 얼마나 쉽게 인간성이 파괴될 수 있고 가족이 깨질 수 있는지를, 그리고 얼마나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따르는지를.

영화의 내용은 모르지만 한 영화포스터를 보면 루게릭환자가 누워있고 아내인 듯한 여자가 옆에 같이 누워있는 게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루게릭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가슴 찡한 모습이다. 근데.. 저 아내는 몇 년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편의 병수발을 '사랑으로' 하는 것은 아무리 길어야 일이년이다. 그 이상은 '사랑으로'가 아니라 '불쌍해서'를 지나 '책임감으로' 혹은 '남의 눈으로'다. 이건 성모마리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럴 때 '하필' 사람들은 스티븐 호킹을 얘기한다. 기적은 언제나 있는 법이라고. 힘내라고. 하지만 힘든 아내에게 이 말이 과연 도움이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그녀는 지옥굴로 떠밀리는 심정이 될 것이다.


루게릭 환자가족에게 호킹의 기적은 아이러니
설사 기적이 일어난다 하더래도 그건 ‘연명’일뿐 ‘회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지 정상인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게릭병은 회복은 없이 살아있는 내내 증상이 점점 악화되는 병이다. 이런데도 주변에서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를 해주는 것은.. 그 아내를 벼랑끝으로 몰아 그 아내를 죽이는 짓일 수도 있다. 도대체 무슨 희망을 가지라는 것인가? 평생 이 병수발을 하고 살라는 말이든가?

흔히 환자의 가족에게 우리들이 하는 말.. 나을 수 있을 거라고, 힘을 잃지 말라고.. 기도의 힘으로 오년을 넘게 살 수도 있다. 십년을 살 수도 있고 호킹처럼 46년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의 고통도 그만큼 이어진다.

그래서 기도를 하려해도 뭐라고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낫게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오래살게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은 사람을 위해 빨리 끝나게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의사의 오진이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숨을 쉴 공간을
때가 되면 루게릭 환자의 가족이 숨을 쉴 공간을 줘야 한다. 진심으로 환자를 위해 같이 슬퍼하고, 노력하고 기도하고 준비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내가 '사랑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지나면.. 그 슬픈 시간이 오면.. 그녀가 숨을 쉴 공간을 줘야 한다. 설사 본인이 주저하더라도 숨을 쉬도록 우리가 만들어줘야 한다. 환자 본인과 그녀를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

물론 가슴 아픈 일이다. 환자 본인의 심정을 헤아리면 도저히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이래서는 안된다. 세상에 기댈 곳이라고는 오로지 아내밖에는 없는데, 그리고 내 마지막도 그리 먼것 같지 않은데, 지친 아내가 숨쉴 곳을 찾아 곁을 지키지 않는다면.. 정신이 멀쩡한 환자의 입장에서는 진단의 순간보다 더 큰 절망의 순간이 될 것이다. 죽음보다 더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쓸쓸히 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본인이 차마 하기 힘들다. 주변에서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당사자들의 이별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게 해주고, 계속 살아야 할 사람의 삶을 지켜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