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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사랑이 절실한 이에게 사랑을 '보여줘야'

이영훈씨가 아직 살아계셨던 때.. 이영훈씨 가족과 아주 가까운 이가 내게 소식을 전해줬다. 이영훈씨가 얼마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하지만 이영훈씨 본인은 아직 그걸 모를거라고 했다.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하고는 있지만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고가 아주 가까이 떨어진 것까지는 아직 모를거란다. 

이영훈 음악에 대한 흠모와 예전 그와의 짧았던 인연이 떠올라, 그립고 아파하는 마음으로 을 썼었다. 근데 글을 올린 그 다음 날, 이영훈씨 팬클럽 간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이영훈씨의 상황이 대관절 어떤상태냐고.. 그 분이 많이 아프신 걸 아는데 요즘 연락이 닿질 않아 미칠 것 같다고.. 제발 이영훈씨와 연락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이영훈씨가 병원에 입원한 이후 그분의 근황을 미친 듯이 궁금해하던 팬들이 내 글을 보고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당황했다. 깜짝 놀랐다. 설마 내 블로그에.. 했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사람들에게 알린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바로 감췄다. 이영훈씨 본인이 아직 모르고 있다잖든다. 팬칼럽 회원들로 인해 이영훈씨가 알게되면 안될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에 이영훈씨의 홈피에 가보았다. 그곳에는 이영훈씨의 쾌유를 빌며 그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글들로 가득했다. 소식을 몰라 이렇게들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냥 모른 체 하기로 했다. 이영훈씨 본인이 아직 모른다잖든가.

하지만 의문이 일었다. 이영훈씨를 이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팬들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지. 그들에 대한 무시가 아닌지, 그래서 무시당한 그 느낌에 서운해하고 그것때문에 이영훈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 흠집이 나는 건 아닐지. 또 수많은 팬들의 기도가 혹시라도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되지는 않을지, 팬들의 뜨거운 사랑과 진심어린 걱정을 본 이영훈씨가 위안을 받고 힘을 얻지 않을지. 만약 그럴 수 없어 이영훈씨에게 남은 시간이 불과 몇 개월이라면 이제는 팬들도 그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지.. 머리가 복잡했다.

다음 날, 이영훈씨의 소식을 내게 전해주었던 이로부터도 짤막한 메일이 왔다. ‘아직 사람들은 몰랐으면 좋겠어요’ 가슴이 덜컥했다. 블로그의 글을 이미 봤는지, 아니면 그럴까봐 걱정을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하루 올렸다가 바로 지웠다’고 일단 고백을 했다. 그러면서 약간은 야속하기도 했다. 안타까움과 사랑을 표현하는 걸 왜 막는걸까.. 하지만 가장 큰 것은 걱정이었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알려지는 건 아닐까하는.

그로부터 일주일 쯤 후, 신문에 기사가 났다. 이영훈씨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중이라는. 가슴이 철렁했다. 죄짓고 숨기고 있는 사람마냥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걸 알린 게 나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체모를 죄책감이 밀려왔다. 내가 경솔했구나..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

그날, 이영훈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다. 범죄자가 범죄현장에 다시 나타나듯. 깜짝 놀랐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만개의 기도 글.. 그 틈엔 이문세가 눈물로 써 내려간 글도 있었다. 그랬었다. 이영훈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쾌유를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영훈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얼마나 존경했는지 절절하게 말하고 있었다. 영원히 이영훈과 이영훈의 음악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이라고 눈물로 다짐하고 있었다.

작곡가 이영훈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감격스런 존경과 사랑이었다. 병상의 이영훈씨가 이 글들을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적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그래야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이 따뜻하고 풍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때에 사람들의 이 기도가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도 덕분에 따뜻한 마음으로 길을 떠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었다. 이영훈씨는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온몸으로 품으며 편안하게 길을 떠났다. 이영훈씨의 사후 그의 아내가 펴낸 책에서 그녀도 당시 사람들이 보여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님들의 사랑과 위안이 큰 힘이 되었었노라고. 그 사랑과 존경을 이영훈씨가 다 품고 갔노라고.


마음이 편해졌다. 의도했었든 아니었든, 또 실제로 촉매가 된 것이든 아니든.. 블로그에 글을 올린 게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아주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어려운 병에 걸린 친구남편의 소식을 과연 친구들에게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당사자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서.. 혹시 그녀가 동정받는 걸 싫어하거나 귀찮아 할 수도 있어서.. 괜히 가십거리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알려봐야 딱히 달라질 것이 없어서..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눈물이 쏟아져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해서..

앞으로 몇 년 간 힘든 길을 가야 할 친구가 닥칠 문제는 ‘외로움’이다. 모든 현실적인 문제도 결국은 외로움 하나로 귀착된다. 멀고 힘든 길, 그 외로움에 위안을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람들과 벗들의 따뜻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