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팡생각

배신 2 - 나만 살기위한 저열한 행위?

내가 가장 증오하는 것이 ‘배신과 변절’이며 제일 경멸하는 것은 ‘아부와 아첨’이다.

외부에서의 공격보다 무서운 것이 내부에서의 배신이다. 겉보기엔 성실하고 과묵해 보이지만 실제로 힘센 자의 권력에 굴종하고 아부와 아첨을 일삼던 부하가 있다. 보스의 가장 가깝고 충직한 심복이던 그 자가 보스의 배려로 오랜만에 한가한 외국에서 보스의 비자금을 관리하며 한가한 세월을 보내고 있을 즈음, 놀라운 소식을 접한다. 자기의 보스가 사람들의 배신으로 위기상황에 접어들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현실상황을 재빨리 파악한 그는 보스의 몰락이 불가항력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심복이라고 공인된 자기에게까지 그 화살이 날아올 것은 뻔한 일, 그는 그 상황이 닥치기 전에 먼저 빠져나오기로 한다. 자기가 먼저 보스를 배신해 버리기로 결론 지은 것이다. 그는 보스의 부도덕성을 주변에 공개하여 보스에게 도덕적 치명타를 날린다. 보스와 가장 가까웠던 심복의 양심선언을 빙자한 그 배신은 보스를 재기불능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유유히 비난의 화살에서 자유롭게 빠져 나와 도덕적으로 무혐의가 되었다.

또한 보스의 의사결정이 대부분 자신의 ‘지도’와 ‘영향력’에 의한 것임을 평소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랑하던 그가 또 번복한다. ‘나는 보스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 자기는 결코 보스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지위가 되지도 않았으며, 남들이 말하는 심복도 아니었다고 발뺌을 한 것이다. 그는 가까운 사람들의 의심스런 시선으로부터도 완벽하게 자유로워진다. 멀고 가까운 모든 도덕재판에서 완벽하게 무혐의로 빠져 나온 것이다.


한편, 몰락한 보스는 부하의 이런 배신도 모른채 조직의 재건을 위해 절치부심하며 자기를 배신한 그 부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믿을 사람이라곤 그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부하는 그것을 거절하고, 오히려 보스가 그렇게 비밀스럽게 재기를 도모한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림으로써 보스에게 다시 한번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영원히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보스는 완전히 매장당하고 말았다.

보통의 사람들이 만약 이런 상황에 닥친다면 어떨까? 그가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배신을 하기 앞서, 심각한 인간적 갈등과 고뇌를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런 배신은 피해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설사 조직의 몰락을 감지하고 있고 보스의 부도덕성을 안다 하더라도 약간의 뭇매를 감수하고서라도 차라리 침묵을 지켜 '배신자라는 낙인'만은 피해가려고 하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이 배신자는 인간적 고뇌나 갈등 없이 자기만의 안위를 위해 배신을 했고, 그런 자신을 비난하는 동료들마저도 배신했다. 그 배신자의 배신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노른자위 땅에 아파트를 샀다. 몇번 사업을 한다고 나섰다가 다 망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풍족하다. 그렇다. 그는 보스의 비자금마저 빼돌렸던 것이다. 어느 곳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소위 눈 먼 돈을 그는 그렇게 삼켜버렸던 것이다.

그가 배신을 택하게 된 이유는 더더욱 자명해 졌다. 그 배신에 따라오는 이득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황우석과 노성일은 이들과 닮았다. 자만으로 몰락하는 황우석을 자기가 나서서 미리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노성일.

배신은 나의 안위를 위하여서는 남의 파멸도 불사하겠다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심리가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항상 명분이나 신념을 구실로 내세우지만 실은 제 목숨만을 구하겠다는 치욕스런 반역행위일 뿐이다. 한번 배신자라고 낙인이 찍히면 정상적인 인생은 포기해야 할 만큼 비난도 거세다. 그래도 사람들은 배신에 따르는 그 달콤한 이익을 위해 이렇게 배신을 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이 배신이라는 것이 규정짓기가 참으로 애매하다는 것이다. 배신이라는 낙인 속에는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행위에 대한 신념이나 대의명분에 따라 배신자가 되기도 하고 혹은 혁명가나 구원자가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이 있다.

부패하고 무력한 황실로 인해 패망해가던 고려를 멸하고 새 세상을 열고자 고려를 등진 이성계. 전두환에 대한 끊임없는 존경과 의리로 대다수 남자들에게 의리의 사나이로 각인되어 있는 장세동. 나를 잘 알아주지도 않고 당선도 불투명한 노무현을 떠나, 당선이 더 확실시 되면서 나를 인정해 주고 게다가 한자리 보장해 준다는 정몽준의 품으로 날아들어갔던 김민석. 부패하고 늙고 나약해진 보스의 판단능력 상실로 인해 조직의 존폐가 위기에 처한 때,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그 무능하고 고집스런 보스를 제거한 중간보스.. 생각나는대로 나열했지만 윗 경우들에서도 누가 배신자이고 누가 혁명가나 의리의 돌쇠인지는 판가름 하기 어렵다.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고 했듯 배신에는 항상 그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와 상황이 있고, 그 이유와 신념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그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 여부가 판가름 나고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느냐 마느냐 결정된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들이 ‘역사가 판단할 것’ 혹은 더 그럴듯한 말로 ‘후세의 사가들이 판단할 몫’ 이라는둥의 말들을 하게 된다.


→ 배신 1 – 줄기세포 공방
→ 배신 2 – 나만 살기위한 저열한 행위?
→ 배신 3 – 동물의 본능싸움, 황우석 노성일
→ 배신 4 – 배신은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