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의학

지구 온난화 3 - 네가지 의문

네가지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첫째, 이산화탄소는 과연 온도상승의 주범일까?
둘째, 이산화탄소농도는 왜 증가하고 있을까?
셋째, 온난화는 정말 무서운 일일까?
넷째, 요즈음 기상이변은 도대체 뭘까?


첫째, 이산화탄소는 과연 온도상승의 주범일까?

지구온난화 시나리오의 원조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연구소(GISS)에서 1988년 발표한 ‘지구 기온 변화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관계’라는 자료다. 이 자료에서 이들은 1880년부터 1980년까지 100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90ppm에서 355ppm으로 65ppm 증가했으며, 이로 인해 기온이 0.75℃ 상승했다고 주장하며. ‘다음 세기에 예상되는 지구온난화는 전례 없는 규모로서, 남극의 얼음이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세계의 많은 도시가 수몰되고, 내륙은 사막화될 우려가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것이 지구 온난화 시나리오의 원조이다.

이 시나리오가 가능한 첫번째 논리는 바로 온실효과라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 온실효과라는 말은 언제 처음 나왔을까? 온실효과의 개념을 처음 언급한 것은 1827년 프랑스 과학자 푸리에이며, 스웨덴 화학자 아레니우스는 1896년 발표한 논문에서, 기온 상승을 인류의 위기가 아니라 ‘긍정적 혜택’으로 기술했다. ‘자손들은 우리가 경험한 잔혹한 환경이 아니라 쾌적한 하늘 아래서 잘 살게 될 것이다’ 차가운 기후에서 해방되는 그날을 말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요즈음엔 인류멸망의 시나리오로 쓰여지고 있다.

온실효과는 지구의 온도를 달처럼 극한의 영하와 극한의 영상으로 요동치지 않게 하는 필수의 보루다. 그러나 그 온실효과의 핵심 촉매가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일부는 이산화탄소나 메탄가스등 온실가스라고 생각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온실효과는 가스의 영향이라기보다는 공기중에 머금고 있는 수증기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위에 언급한 NASA의 자료에서도 온실효과와 이산화탄소의 관계, 즉 지구 온난화와 이산화탄소 농도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재밌는 것은.. 이 자료는 오히려 반대의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어 준다. 즉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기온의 변화에 전혀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100년 동안 상승했다는 기온 0.75℃의 80%(0.6℃)가 1940년 이전에 상승했지만 그동안 이산화탄소 농도는 겨우 22%(14.5ppm)만 증가했다. 그러나 1940년 이후에는 0.75℃의 20%(0.15℃)밖에 기온이 상승하지 않았지만, 이산화탄소 농도는 78%(50.5 ppm)나 증가했다.

온도의 80%가 상승하는 동안 이산화탄소는 22%만 상승했고, 온도의 20%가 상승한 동안 이산화탄소는 78%나 상승했다. 즉 둘 사이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지구의 기온 변화와 이산화탄소 농도는 아무런 상관관계는 전혀 없다는 걸 명확히 말해주고 있다.

또 지구역사상 가장 추운 시기였던 4억 5천만년전엔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금의 10배나 높았었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6500~5500년 전은 지금보다 대기 기온이 3도나 높았다는 것도 그 반증이다. (물론 4억 5천만년전이나 수십만년전 빙하기때의 공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어떻게 추측했는지는 모른다.)

첫번째 의문에 대한 결론..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온난화와 전혀 무관하다.



둘째, 그렇다면 이산화탄소는 왜 그리 많아지고 있는 것일까?

이산화탄소는 식물 광합성 작용의 기초 원료인 동시에 동물 호흡작용의 생성물이다. 즉 지구상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산소와 더불어 지구를 존재하게 하는 필수 요소이다.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자연의 조절기능에 의해 저절로 유지되고 있다.

일단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상승한 것은 사실인 것 같으니 왜 그랬는지를 따져보자. 산업혁명 이후 이상화탄소의 농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따라서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는 인간이 태우는 화석연료때문이라는게 온실가스론자들의 주장이다. 배출은 급격히 늘고 그걸 흡수해야 할 식물은 점점 줄고 있으니 하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과학시간에 배웠던 걸 기초로 한 순수한 생각일 뿐이다.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어떻게 발생해서 어떻게 소멸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옛날 전 지구가 숲으로 빼곡하게 뒤덮여 있던 시절에도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지금보다 높았던 적이 있었다.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생성과 소비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설사 배출이 늘고 숲이 줄어서 그렇다는 것이 사실이고, 그렇게 인간의 짓으로 지구 대기의 구성을 조금 변화시킨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며 인간의 교만이다. 자연에게 있어서 인간의 '짓'은 그리 크지 않다. 인간이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넌센스다.

공기와 물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물이 없는 곳은 공기가 없고, 공기가 없는 곳엔 물이 없다. 무슨 뜻이냐 하면 공기와 물은 상호 원천이라는 얘기다. 지구상에서 이산화탄소가 가장 많은 곳은 공기가 아니라 물이다. 이산화탄소는 대기보다 약 50배정도 바닷물에 더 많이 농축되어 녹아 있다고 한다.

지금 공기중에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진 건 해수의 작용이다. 무슨 이유에서든 海水 온도가 약간 상승하는 바람에 이산화탄소가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이 대기중으로 방출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지구는 급격한 도시화, 사막화, 목초지 증가로 숲이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식물과 동물이 공존하지 않는 생태계는 존재할 수 없다.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밥이다. 공기중 이산화탄소의 량이 늘어난 것은 분명히 식물의 생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즉 생명체들을 보호하기 위한 지구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두번째 의문에 대한 결론..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진 건 자연의 작용이다.




셋째, 온난화는 정말 무서운 재앙일까?

1880년이래 1940년까지 지구의 대기 기온은 계속 상승했다. 이것이 근래 지구 온난화의 시작이다. 그러나 곧이어 1940~1975년에는 지구가 다시 한랭화되었다. 지구온난화를 외쳐 온 과학자들은 재빨리 온난화설을 거두어 들이고 지구 한랭화설을 주장했다. 새로운 빙하기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만들어 냈다. 어렴풋이 한랭화 시나리오는 내 기억에도 남아있다. 그러나 1970년 후반부터 기온이 다시 상승하자 또다시 말을 바꾸었다. 슬그머니 온난화설을 다시 끄집어 내었고 최근에 기상이변이 속출하자 그 주장은 폭발하여 신앙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 불과 50년 사이에 온난화설과 한랭화설이 이렇게 교차했다.

이렇게 밥먹듯 바뀌고 있는 걸로 보아 온난화는 무서운 시나리오가 아니라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라는 가정을 한번 해보고 그 증거를 찾아보자.

북극해와 대서양 사이, 캐나다 북동쪽 끄트머리에 그린랜드라는 곳이 있다. 이름은 푸르른 Green Land 인데 실상은 얼음으로 덮힌 땅이다. 왜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고어가 방정을 떨면서 공갈을 하는 지구온난화는 과거에 수도 없이 있었다. 약 1만8천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지구의 온난화가 있었다. 기온이 지금보다 5도 정도 낮았던 상태에서 온난화가 시작되었었는데 그 과정은 둘쑥날쑥 했다고 한다. 약 1만1천년 전~1만 년 전엔 한랭화가 사이에 한번 있었고, 그 이후 다시 더워지기 시작하다가 약 6500~5500년 전에 이르러서는 지금보다 대기 기온이 3도 정도 높았다고 한다. 확실한 온난화였던 셈이다. 그 뒤 기온은 다시 내려갔었고, A.D. 900~1300년경 온난화가 다시 한번 있었는데 그걸 중세 온난기라고 한다. 당시 바이킹이 정복했던 큰 섬이 있었는데 숲으로 덮힌 푸른 땅이었다. 그래서 ‘그린랜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근데 그땅이 지금은 화이트랜드, 얼음 땅이다.

더 피부에 와닿는 얘길 해보자. 우리는 석유를 화석연료라고 부른다. 그 옛날 울창하던 식물들이 매장되어 화석화되고 그것이 변한 게 석유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건 그 곳이 옛날엔 울창한 삼림지대였다는 걸 말해준다. 근데 석유가 어마어마하게 매장되어 있는 중동지역은 지금 풀 한포기 없는 사막이다. 그러고 보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나, 그 강력하던 사라센 제국이 있었던 곳이 당시에 사막이었을 리는 없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한반도는 그 옛날 바닷속이었을 수도 있고, 척박한 사막이었을 수도 있다. 어? 그렇다면 지금 지구의 모습과 옛날의 모습은 하나도 같은게 없을 수도 있겠다.

지난번 얘기한 적 있지만, 지구의 나이를 50억년 정도로 치면 그동안 인류문명이 다섯번쯤 있었을 거라고 했다. 10억년에 한번씩 인류문명이 일어났다 자취도 없이 멸망하고를 반복했다는 얘기다. 인류문명이 멸망했다는 뜻은 지구상 거의 모든 생물체가 사라졌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기후의 변동정도는 이야기거리도 안된다. 깜도 안된다.

‘생명체의 탄생과 멸망’ 차원에서 보면 지구의 온난화 한랭화 반복은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상일 뿐이다. 2007년 세상이 떠들썩하고 고어가 노벨상까지 후려먹은 지구온난화 시나리오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지구의 일상일 뿐이란 얘기다. 고어는 이걸 부풀려서 노벨 평화상까지 타먹었다. 상 받을 만 하다. 그 능력.

세번째 의문에 대한 결론..
온난화는 지구의 일상이다.



넷째, 그럼 요즈음의 기상이변은 대체 뭘까?

태풍이나 토네이도 같은 것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별거 아니다. 지구가 스스로 어떤 농도를 맞추기 위해 강제적으로 한쪽의 공기를 다른 한쪽으로 보내는 현상이다. 강제적으로 그렇게 공기의 흐름을 일으켜 균형을 맞춰야 할 만큼 문제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대자연의 자정작용의 일환일 뿐이다. 근데도 그것도 온실가스가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겁을 준다.


산불이 많이 나고 있다면 공기의 온도를 높이거나 식물을 태워 산소의 농도를 낮추기 위함이고, 지진과 해일이 많이 일어난다면 육지의 어떤 것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또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있다면 해수의 량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자연이 그리 하는 것일 것이다. 고어 같은 작자들이 공포의 소재로 삼는 기상이변들은 우리가 무서워할 게 결코 아니다. 자연의 보상작용, 자정작용이다.

자연재해가 인간의 터를 짓밟는 것과 지구의 종말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 인류의 숫자를 감소시켜야 한다면 자연은 그리 한다. 자연재해로 인해 수많은 인간들이 목숨을 잃고 있더라도 그것은 지구전체를 살리기 위해 지구가 배려하는 고마운 선물이다.

네번째 의문에 대한 결론..
기상이변 역시 자연의 일상일 뿐이다.


→ 지구 온난화 1 – 고어가 노벨상을?
→ 지구 온난화 2 – 온실효과?
→ 지구 온난화 3 – 네가지 의문
→ 지구 온난화 4 – 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