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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학

건강식품 1 - 건강식품 공화국

유혹
“칠십 노인 이거 한번 잡숴봐 오십이 돼, 오십 아저씨 이거 한번 잡숴봐 요강이 박살나! 자자 웃지만 말고 일단 한번 잡숴들 봐! 자 애들은 가라 가.. 야 니들.. 너말야 너 임마, 돌아보긴 어딜 돌아봐.. 집에 가라. 가서 삼춘이나 아버지 모시고 다시 나오든가..”

추억의 이들 약장사들이 파는 ‘약’들은 참 해괴했다. 내가 본 것중 압권은 사람들 앞에서 ‘지네를 짓이겨 그 즙을 캡슐에 넣어 주는 것’이었다.


어린 생각에도 저거 먹어도 될까? 라는 걱정이 들었었는데 뜻밖이었던 것은 여기저기서 ‘여기 하나 주쇼, 난 두개 주쇼’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았었다는 것이었다. 아주 나중에야 그들이 바람잡이 가짜였다는 걸 알게 되었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규모를 유지하면서 그렇게 약팔러 다닌다는 것은 실제로 그걸 사는 사람도 꽤 있었다는 말이었다. 바보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저런 게 효과가 있을거라고 믿는 걸까? 근데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씩 삐끄덕거리기 시작하다 보니 이제서야 옛날 길거리에서 그런 정체불명의 해괴한 약을 사던 아저씨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불현듯 ‘나이 듦’이 갑자기 오싹해지며 다리가 후들거리는 한국의 힘없는 아저씨들.


중독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무릎이 아파서 결국 병원에 간다. 의사는 퇴행성관절염이라고 한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운동도 하고 약을 먹어보지만 좀처럼 통증은 가라앉지 않는다. 그무렵 주변에서 ‘글루코사민’을 먹어보라고 권한다. 긴가민가했었는데 먹어보니 실제로 통증이 꽤 가라앉는다. 어 진짜 효과가 있네? 그렇지. 효과가 있으니까 사람들이 찾겠지 아무려면 효과도 없는 걸 광고하겠어.. 이제부턴 스스로 물어가며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종합비타민제나 비타민E, 셀레늄 보충제 같은 걸로 시작했지만 점점 항산화제 칼슘보충제 홍삼엑기스 클로렐라.. 매일 먹는 게 열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아졌다. 몸에 좋다니까 먹기는 먹는데 이제 이것들을 하루라도 걸르면 몸이 확 나빠질 것 같아 하루도 빼먹을 수가 없다..



건강식품의 홍수
바로 영양제, 보충제, 건강식품들이다. 통칭해서 건강기능식품이라고 한단다.
“2004∼2007년 사이에 국내에서 출시된 이런 건강기능식품은 8053개 품목이라고 한다. 매일 평균 6.3종의 건강기능식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 셈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비타민, 미네랄 보충제 등 ‘영양제’다. 이 영양제는 현재 총 2540개 품목이 시장에 나와 있다. 이는 전체 건강기능식품의 31.6%다. 하지만 매출액으로 놓고 보면 홍삼제품이 부동의 1위다. 2005년 한 해 동안 총 1919억원(28.0%)어치가 팔렸다. 2위는 알로에(970억 원), 3위는 비타민 등 영양제(948억 원), 4위는 글루코사민(642억 원)의 순이었다.

생산액기준으론 약 7천억원의 규모(2005년)이다. 이걸 소비자구입 기준액으로 하면 약 3조원의 규모가 되며, 여기에 광의의 건강식품(보약 생식 보양식 개소주..)까지 합치면 총 20조원에 육박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일년 의약품 소비량이 5조원 정도라고 하니 그것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미국에서도 건강식품이 난리다. 하지만 미국의 건강식품의 시장규모는 의약품의 4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필요이상으로 의약품 처방을 많이 하는 나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의 건강식품 열풍은 가히 기형적인 현상이다. 이 정도 되다보니 이제 연세드신 어머니께 종합비타민제제나 글루코사민 한번 안 사들고 간 자식은 한국에선 무심한 불효자다.

한국인은 ‘뭘 먹어서’ 건강해지겠다는 의지, '뭘 먹어야' 건강해 질 거라는 신념이 참으로 투철하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거나 ‘어디가 아프다’ 면 한명의 예외도 없이 ‘이럴 땐 뭘 먹어야 낫지?’ 하며 인터넷을 검색한다. 나이든 사람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는 ‘뭐 먹으면 몸에 좋다더라’ 이다. 지나치게 처방약에 의존하는 미국사람들도 문제지만 건강기능식품(비타민 영양제 건강보조제 보약 생식 건강식품..)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문제다.


건강식품의 노림수
‘살기 위해 먹는 걸’ 식품이라고 한다. 근데 요즈음엔 이 식품을 3 가지 기능으로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다. 에너지를 공급하는 영양기능, 맛 욕구에 대한 기호충족기능, 인체의 대사생리를 활성화하는 생체조절기능이라나. 우리가 의도하거나 의식하지 않더라도 먹을 걸 먹으면 저절로 에너지도 공급받고 기호도 충족되고 생체대사도 활성화되기 마련이다. 근데 이걸 굳이 세가지로 구분했다. 특히 세번째 기능분류는 상당히 수상하다. 식품에는 인체의 대사생리를 활성화하는 기능이 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걸 바꿔말하면 우리가 늘 먹는 식품들이 만약 이 기능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인체의 대사생리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

건강식품산업이 노리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바로 이 ‘생체조절기능을 위한 식품’이 건강기능식품 혹은 건강보조식품이라고 하는 것이다. 공해와 토양의 변화, 온실재배나 대량사육으로 인해 요즈음의 식품은 예전에 비해 모든 영양소가 현격하게 떨어지므로 우리가 평상시 먹는 음식만으론 이 생체조절기능부분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 기능을 특별히 강화한 보조제를 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참 그럴듯하지?


약 대신 건강식품?
모든 약은 독이다. 이건 의사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부작용이 없는 약은 효과가 없으며, 효과가 있는 약은 반드시 부작용이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약을 먹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아무리 아파도 진통제를 먹지 않으며 감기에 심하게 걸렸어도 그냥 버틴다. 참 잘하는 짓이다. 짧은 순간만의 평화를 위해서 악마의 유혹에 영원히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약의 대부분이 치료제가 아니라 그저 증상만을 잠시 완화시키는 속임수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 건전하고 지혜로운 정신을 가진 분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분들의 상당수가 이상하게도 건강식품의 유혹에는 약하다. 어쩌면 일반인에 비해 오히려 건강식품에 대한 신뢰가 더 크기까지 하다. 이유는 단 하나다. 건강식품은 ‘약’이 아니라 ‘자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엔 용어와 광고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건강보조식품, 건강기능식품.. 자연에서.. 자연의.. 이런 용어로만 놓고 본다면 분명히 건강식품들은 ‘화학으로 제조한 약’이 아니라 자연에서 가져와 건강에 근본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일 거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상당수 사람들이 한약을 순수 ‘자연’이라고 생각하면서 거리낌 없이 먹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건강식품은 비록 '약'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식품’도 아니다. ‘식품과 약품의 경계선상’에 위치하고 있는 이상한 존재다. 이 건강식품이란 놈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 이놈의 출생비밀을 알아보자.


→ 건강식품 1 – 건강식품 공화국
→ 건강식품 2 – 건강식품, 미국에서의 위상
→ 건강식품 3 – 건강식품은 오히려 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