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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산에서 뛰면

가파른 산길을 숨차게 걷고 있는데, 뒤에서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길을 비켜주고 슬쩍 보니 흑인 청년 하나가 '뛰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 가파른 길에서 뛰다니.. 그를 한참 쳐다봤습니다. 얼마 후 내려오는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먼지를 날리며 여전히 뛰고 있었습니다. 그를 또 쳐다봤습니다.

옛날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1982년 10월 자전거 일주중 계룡산.. 동학사쪽에서 시작해 갑사까지 일단 갔습니다. 그런데 아찔했습니다. 자전거와 짐이 동학사쪽에 있으니 도로 동학사쪽으로 돌아가야만 했는데, 똑같은 그 산길로 다시 돌아가려니 엄두가 안났던 겁니다. 버스를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건 여행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 그래서 다른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뛰어서 넘어가자..

 

일주일 넘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중이었고, 게다가 방금 동학사에서 갑사쪽으로 산을 넘어왔으니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체력방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는 그 산길을 진짜 후다닥 뛰어서 넘어왔었습니다. 체력보다 우릴 더 힘나게 해주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우릴 쳐다보던 등반객 아줌마 아저씨들의 시선이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체력은 바닥이 나있었을텐데도 그 '부러워하는' 시선이 주는 괴력으로 계룡산을 뛰어 넘었던 겁니다.

32년전 우리처럼 어제 그 흑인 청년도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그 힘으로 뛰고 있을지 모릅니다. 웃음이 납니다. 왜냐하면 어제 그 청년을 쳐다보며 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옛날 계룡산 등반객들도 미친놈처럼 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셨었을 겁니다.  


새꺄.. 먼지나게 산에서 왜 뛰고 지랄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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