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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엄마'라는 신비한 존재

서른가까이 된 사내 조카아이들이 자기 엄마들을 어머니라고 부르더군요. 그 아이들 앞에서 저는 제 어머니를 보란듯이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아마 그 아이들은 삼촌을 철없다고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엄마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닌 애매모호한 호칭을 쓰던 제가 다시 확실하게 엄마라고 고쳐 부르기 시작한게 아마 사십대 중반무렵부터였을 겁니다. 어머니가 가장 행복하게 여기시는 시절이 바로 우리들이 당신께 '엄마!'라고 철없이 부르던 시절이라는 걸 알고 난 이후입니다.


16년만에 어머니를 뵈었다고 하면 다들 놀랍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렇습니다.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소릴 듣고서야 움직였습니다. 참으로 불효막심한 아들이었습니다. 육십대 중반의 어머니를 떠났다가 병원에 계신 낯선 할머니에게 돌아왔던 겁니다.


다행히 하늘이 도와주셨습니다. 회복되어 이제 집에 건강하게 계십니다. 예후도 아주 좋습니다. 당신도 느끼시는지 '너무 오래살까 걱정이다'라고 웃으십니다. 다들 '아들 보시더니 나으셨다' 라고 하십니다. 저 없는 동안 애쓴 누나들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만, 전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습니다. 


이십오년전 비가 억수같이 오는 어느날 아침에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실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고를 당하던 바로 그 시간.. 갑자기 어머니가 굵은 빗속을 뚫고 삼천사로 올라가셨었답니다. 떨어져 사셨기 때문에 제가 사고를 당한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죠. 근데 왠지는 몰랐지만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면서 삼천사에 가야만 할 것 같아서 그러셨다고 합니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잃고 누워있는 모습이 어머니께 전해진 거겠지요. 同氣感應(동기감응)이었을까요. 어머니의 그 급박한 기도덕에 제가 이렇게 살아있는지 모릅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해진 때가 있었습니다. 아마 어머니의 마음이 제게 전해졌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너 오고있다며.. 이제 나 괜찮으니 마음 편히 오거라.. 


엄마라는 존재는 참으로 신비합니다.

늘 먹먹하고 때론 울컥하게 하는..

어머니가 퇴원하신 후 가장 먼저 함께 간 곳이 삼천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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