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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얘기

군대리아의 조상

우리 부대가 '식생활 개선 시범부대'인가 뭔가로 선정되어 아침식사로 '빵'이 나온다고 했다. 뭐? 빵? 걱정과 기대가 공존. 병사들 대부분은 '밥하고 국을 먹어야지 빵을 어떻게?' 이랬었지만 기대도 있었다. '밥보다 빵이 훨씬 맛있지 않겠나..' 이건 아마 피엑스에서 팔던 단팥빵(스타킹인가 킹스타던가..)같은 맛난 빵을 기대해서 그랬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후자였다. 일찍 식생활 개선을 실천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젖을 뗀 이후부터 아침이 빵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빵을 먹는 첫 아침식사 날.. 식판위에 던져진 '역사적인' 아침식사는 햄버거 빵 두개, 삶은 계란 하나 그리고 서울우유였다. 촌놈들은 물론이거니와 빵에 익숙하다고 자부, 자랑했었던 나도 당황했다. 햄버거 빵과 삶은 계란을 어떻게 조합해서 먹으란 걸까. 게다가 빵은 두 개인데 삶은 계란은 한개.. 내가 빵에 익숙하다는 걸 미리 알렸었기 때문에 병사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이거 어떻게 먹는 거임???’ 

그들의 간절한 심경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도 도저히 모르겠다. 당황을 감추기 위해 '아 이런 #$%$ 군대하고는.. 이게 모야 $%^%#' 하지만 어떻게든 그들에게 먹는 시범을 보여줘야만 했다. 일단 삶은 계란을 까서 손으로 대충 반으로 나눴다. 그리곤 햄버거 빵을 손가락으로 후벼 파서 반으로 쪼갠 다음, 그 속에 계란 반개를 넣었다. 아 띠바.. 다들 나를 따라한다.--;;  


씹어봤다. 아 근데 계란 양이 너무 적어서인지 거의 맨빵 맛이다. 당연하다는 듯 우유를 마셨다. 다행히 그랬더니 그나마 좀 낫다. 그 다음날엔 계란 하나 그대로를 빵 한개에 넣고 으깼다. 그랬더니 맛이 먹을만 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빵과 삶은 계란'도 조화가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근데 나머지 한 개는? 그냥 맨빵으로 우유와 함께 먹는 수 밖에 없었다


'각자 식성에 맞게 알아서들 드셔요..' 우유에 적셔 먹는 놈,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서 따로 빵에 넣어 먹는놈.. 그러나 어떻게 먹어도 맛은 없었다. 한개를 포기하고 한개에 집중하지 않는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장병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달쯤 후 개선된 아침식사가 나온댄다. 우리들의 의견을 낸 기억은 전혀 없지만 좌우간 한달이 지났다. 기대가 되었다.

 

개선 첫날, 식판에 던져진 메뉴는 '햄버거 빵 두개 + 삶은 계란 한 개 + 서울 우유..' 뭐야 띠바 이거 똑같잖아? 아니란다. 하나가 새로 생겼단다. 뭔가 뻘건 걸 푹 떠서 식판 깍두기 자리에 휙 던져준다. 뭐야? 고추장이야? 그건 딸기 쨈이었다. 빵 한 개는 계란과 먹고 나머지 하나는 쨈 발라 먹으란 얘기다. 참 개선 많이 했다


하지만 전에 비하면 훨씬 낫다. 적어도 빵과 속이 짝이 안 맞아 고민할 필요는 없어졌으니까. 하지만 병사들의 불만은 하루하루 높아만 갔다. 일부 시골출신 병사들에겐 매일 아침이 지옥이라고 했었다. 빵은 텁텁해서 죽어도 못먹겠다.. 밥과 국을 달라.. 당시 제대하는 병사들이 가장 많이 긁은 소원수리가 바로 이 아침 빵이었다고 했다. 국물을 달라고..

 

하지만 군대는 요지부동. 군대가 늬들한테 맞춰주는 거 봤냐? 그 이후로 한두달 간격으로 아침 메뉴가 계속 바뀌었다. 한동안은 군대 쏘세지 길게 썰어서 두 조각, 한동안은 우유 대신 맑은 크림 스프, 그러더니 급기야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든 기상천외한 메뉴.. 햄버거빵과 삶은계란 그리고 '국물만 있는 된장찌개'.. 하도 국물을 달라고 하니까 그런 메뉴를 생각해 낸 모양이었다. 군대다운 발상과 메뉴였다. 


이렇게 우리를 아바타 삼아 진행되던 이 식생활 개선 실험은 내가 제대할 때까지도 계속되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보고 나온 메뉴는 샐러드였던 것 같다. 커다랗게 듬성듬성 자른 '양배추'와 마요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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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군대리아라는 걸 처음 봤다. 삼십년전 군대리아의 조상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었다.^^ 근데 우리때완 달리 매일 나오는 게 아니고 일주일에 두번 나온단다. 밥과 국을 달라는 병사들의 불만이 그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졌었던 모양이다.

 

내 기억 속 시작년도가 확실치 않아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겨우 찾은 블로그에도 9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느니.. 하지만 이거 완전히 틀린 정보다. 시작은 그보다 한참 이전이다. 아무튼 그 블로그에서 군대리아의 사진을 처음 봤다.

정말 좋아졌다. 하지만 한편 대단한 국방부다. 초창기부터 있었던 메뉴, 삶은 계란과 서울우유.. 딸기쨈과 엉터리 샐러드 그리고 묽은 스프가 아직도 있다. 참 대단한 국방부다. 하지만 추가된 것들도 꽤 있으니, 이 정도면 일반인들도 먹을만 하다 싶기는 하다. 군대 정말 좋아졌다^^ 


장황하게 말이 늘어졌는데.. 군대리아의 탄생을 직접 본 산증인으로서 '군대리아가 90년대초에 시작되었다'는 틀린 정보를 보고 이걸 바로 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거였다.^^ 


군대리아의 시작은 83년 아니면 84년이다. 신병시절이 아닌건 확실하다. 그땐 밥과 국을 먹었었다. 그러므로 83년이라고 해도 중반 이후다. 83년 84년 이게 확실치 않은 이유는 그 기억의 끈이 나의 식기당번 경력하고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침 빵이 처음 실시되던 날, 내가 식기당번이 아니었던 거.. 이것만 확실하다. 아침식사를 내무반에서 했었는데, 군 역사상 처음으로 시행된 '빵과 우유를 단체로 수령해 온' 기억이 내게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식기당번 이전이라서 그랬던 거라면 83년이고, 식기당번 이후라서 그랬던 거라면 84년이다. 


정확도를 높히기 위해 지금 계속 기억을 더듬는 중이다. 당시 고참들은 빵을 하나만 먹고 나머지 하나는 쫄따구들에게 던져줬었는데.. 내가 폼나게 빵을 던졌었는지 아니면 날아오는 빵을 구차하게 받아 먹었는지.. 혹은 정량 두개만 정확히 먹던 상병정도였었는지.. 그 기억을 열심히 더듬는 중이다.ㅎㅎ


좌우지간.. 군대리아는 지금 '서른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