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부대의 경례 구호는 ‘백골’이었다. 그런데 제대 말년 어느 때부터는 쫄따구들로부터 이 경례를 받지 않는다. 백골은 니들끼리나 해라. 나한텐 구십구골 구십팔골.. 알겠냐 이 띠바들아.. 날짜가 더 다가오면 몇십몇골 소리도 듣기 싫어서 그냥 ‘안녕하십니까’ 라고 하라고 하다가, 날짜가 진짜 초읽기로 다가오면 ‘어이 형씨 잘 잤어?’라는 쫄따구들의 도발에도 '예 군인아저씨들'이라고 화답한다.
아마 오십몇골 무렵이었을 거다. 행정반 서무계가 소대 내무반으로 날 찾아왔다. 습관적으로 ‘특명 내려왔냐?’라고 물었고, 그는 ‘예’라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환하게 웃어야 할 그의 표정이 흙빛이다. 숨이 콱 막히는 불길한 예감.. 얘기인 즉슨, 6월 전역자 특명이 내려오긴 내려왔는데 거기에 내 이름이 빠져있더란다. 자기가 다시 거꾸로 확인해봤는데 ‘제대로 된’ 특명이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인사계 붙들고 통사정, 중대장 붙들고 통사정.. 며칠 후 사단본부까지 확인하고 나온 결과는 ‘45일 혜택’이 적용되지 않아서 그런 거라는데, 왜 그런지는 ‘서울에서 알아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였다. 근데 그걸 나보고 직접 하란다. 휴가라도 내보내 주려나? 그냥 편지로 하란다. 전화도 아니고. 그러다가 내 제대날짜 지나면 어쩌라고.. 이런 @#% 군대..
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큰일 났습니다..’ 며칠 후 아버지 답장엔 ‘교련 전방실습’ 학점이 어디선가 빠져서 그런거였고, 어디에서 누락된건지 학교에서부터 차례대로 확인해 보고 다시 편지 하겠다’.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멘놀멘하던 제대말년생활 45일 더 하는게 뭐 그리 대수였나 싶기도 하지만 그땐 극단적으로 절박했다. 죽기보다도 싫었다. 만약 45일 더하라고 하면.. 부대 뒤집어 버릴거다. 불꽃놀이 공병장이 어떤 놈인지 한번 더 보여줄테다.. 원래 제대날짜 이후에 해결이 되어 며칠이라도 군대생활 더 하게 되면 그래도 가만 안 있을테다.. 암담함 걱정 분노 적개심.. 오만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이 뒤섞여 난 제 정신이 아니었다.
다행히 어찌어찌해서.. 내 이름만 달랑 적힌 특명이 다시 하나 날아왔다. 지옥같던 시간이 드디어 끝.. 85년 따사로운 6월의 어느날 '이쪽보곤 오줌도 안눈다'며 꿈에 그리던 민간인으로 돌아왔다.
2.
다시 내무반이다. 이상하다. 분명히 전역을 했는데 왜 다시 내무반? 내 계급장을 보니 이등병이다.
이런 된장 다시 입대를 한 것이다. 숨이 콱 막혔다. 45일 더 하는것도 소름이 끼칠정도로 싫었는데 군대생활을 통채로 다시 하라고? 절규했다. ‘저 얼마전에 제대했습니다. 이거 아닙니다. 뭔가 착오가 있는겁니다..’ 내가 소란을 피우자 누군가 와서 무표정으로 한 마디 한다. ‘그런거 우린 모르겠고, 넌 앞으로 군대생활 30개월 한다!’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닙니다. 저 얼마 전에 만기제대했습니다. 이거 아닙니다.. 아니라구요. 사람살려 으아-----’
꿈이었다. 온 몸엔 식은 땀.
3.
이번엔 꿈이 아니다. 그렇게 꿈이길 바랬는데 현실이다. 암흑같던 5년이 드디어 끝나나 했는데, 또 다시 5년을 그렇게 보내야 한단다. 아니 어쩌면 더 괴로운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난 5년은 '속은 사람들'과 함께 보냈었지만, 이번 5년은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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