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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얘기

오래된 아버지의 글에서 발견한 덕불고

만년필 덕이었던 것 같다. 며칠동안 아버지와 함께 보낸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나만 이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작은 누이가 아버지의 글씨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왔다. 남주.. 작은 매형에게 써주셨던 글이다. 예전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쳤던 글이었는데 이제는 분석을 하게 된다. 지금보니 출처가 한군데가 아니다. 여기저기서 짜깁기를 하신거였다.^^

 逐鹿子不見山 (축녹자 불견산)

 사슴을 좇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

 

 言不和貌且恭 (언불화 모차공)

 말은 날카롭더라도 태도는 공손해야 한다

 

 德不孤必有隣 (덕불고 필유린)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으며 주변에 사람이 있다

 

첫 글귀는 많이 알려진 글귀다. 淮南子 (회남자)축녹자불견산 확금자불견인에서 첫 구절만 따셨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인용하는 유명한 글귀이다.

 

중간 글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네번째 글자는 읽히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글씨를 보내준 누이에게 물어 알았다. '모양' 할때의 그 모였다. 언불화모차공. 누구의 말씀인지 알고 싶어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이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다.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글귀다. 아버진 이 글귀를 어떻게 아셨을까? 한문을 입력해서 찾아보니 단 한 개의 자료가 나온다. 언부화모차공.. 不和를 불화로 읽는게 맞는지 부화로 읽는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설명은 단 한줄, 孺子(유자)라는 사람의 말씀이란다.

 

그리고 마지막 글귀.. 깜짝 놀랐다. 내가 연초마다 언급하는 공자의 덕불고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몰랐었다. 내가 십수년동안 입에 달고 살던 '덕불고'라는 글자가, 잊혀졌던 아버지의 오래전 붓글씨에서 발견되다니.. 전율 같은 게 일었. 그동안 난 덕불고를 어떤 중이 준 책에서 처음 본 것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내가 '덕불고'를 처음 접한 건 아버지로부터였다.   

 

덕불고 필유린..  라는 글자에서 눈이 멈춘다.


말년의 아버지 곁엔 아들이 없었다. 잠깐 마실 다녀올듯 ‘갔다 오께요하곤 미국으로 나선 아들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임종도,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도 지키지 못했었다


대니보이..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그리워하다가 숨을 거둔 아버지의 노래, 그 Danny Boy를 내가 그토록 애절하게 느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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