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가족친척들과 했었던 마지막 근덕여행. 해변 끝 섬과 강이 만나는 곳에 가면 고기잡이 배에서 직접 생선을 살 수 있다는 얘길 누구에겐가 아줌마들이 들으셨다. 막 잡은 싱싱한 생선을 싸게 살 수 있다니 내일 새벽에 가잔다. 생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나도 아줌마(어머니 이모 외숙모)들을 따라 나섰다. 고기잡이 배 광경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섬(실제론 섬이 아니라 덕봉산)과 강(마읍천 - 우린 남대천인줄 알았었다)이 만나는 곳에 갔다. 윗 사진은 요즈음 사진인데, 산 오른쪽 아래에 예전부터 있었던 콘크리트 접안대가 여전히 남아있는 게 보인다. 고깃배들은 거기에 있었다. 강을 어떻게 건넜는지는 기억 안난다.
고기잡이 배를 난생 처음 가까이서 보는 난 모든 게 신기해서 그저 싱글벙글.. 배에 다가 서다가 순간 흠칫 놀랐다. 예상치 못한 강한 생선비린내 때문이었다. 바닷가에 며칠 있다보니 소금내와 비릿내에 익숙해져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고깃배의 비린내는 정도가 달랐던 거다. 그 비린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몇분쯤 지나 코가 좀 무디어진 다음에야 배에 올랐다. 배 위는 이런 분위기였다.
생생한 삶의 현장.. 강원도 사투리의 아낙들과 서울서 내려온 피서객들간에 흥정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서울 주부들이 ‘이게 뭐예요? 이건요?’ 몇번 물어보는 척 하지만 사실 공허했다. 고등어나 꽁치만 먹던 시절의 주부들이 고깃배에 널부러져 있는 생선들의 이름을 얼마나 알고 있었겠는가. 흥정은 막내였던 외숙모가 나섰고 시누이들은 올케의 활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외숙모가 꼼꼼이 따지는 척 했지만 사실 어부의 아내가 설명하는대로 샀던 것 같다. 몇천원으로 커다란 봉다리에 생선들이 한가득.. 그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리 생선요리만 먹었을 거다. 바닷가에서 그 생선들을 길게 보관할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78년. 가족친척을 버리고 드디어 친구들끼리 독립해서 간 첫 근덕여행. 며칠도 되지 않아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어머니들이 바리바리 싸주신 반찬들이 모두 상해버린 것이다. 도착한 날 저녁 딱 한번 아껴 먹었던 애지중지 장조림 네근도.. 아무리 노는데 정신이 팔려있다고 해도 ‘반찬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어찌 모두 다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마는 우린 매년 이랬었다. 그 해였나 아니면 그 다음 해였나. 여전히 먹을거리에 쪼들리다가 문득 떠올랐다. 아! 새벽 어시장! 하지만 그림의 떡, 생선이 있으면 뭐하나, 요리할 줄을 모르는데.. 그때 앤초비가 물었다.
‘거기 오징어도 있냐?’
‘동핸데 당연히 있지 않겠냐’
‘그럼 사러 가자’
‘사서 뭐하게?’
‘해먹게’
섬과 강이 만나는 곳으로 새벽에 나갔다. 또 한번 맡아보는 진한 비린내. 오징어 몇마리를 사서, 그걸 직접 다듬고, 그걸로 찌개를 끓였다. 앤초비가 혼자서 그걸 다 했다. 게다가 맛까지 있었다.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였건만, 칭찬 대신 우린 이렇게 말했었다.
‘할 줄 아는 새끼가 그동안 왜 안했냐. 앞으로 니가 항상 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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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분갈이 몸살이 어지간히도 심한 King Palm, 일년이 되자 비로소 이파리들이 자라나오기 시작한다. 화학비료보다는 천연비료를 주고 싶어 알아보니 Alaska Fish Fertilizer라는 걸 추천하길래 하나 샀다. 다라이에 물을 담고 사용설명서대로 내용물을 물에 풀었다. 순간..!
삼십몇년전 근덕 바닷가, 섬과 강이 만나는 곳, 고깃배 위에서 맡았던 바로 그 냄새였다.
진하디 진하던 생선 비린내.
오늘 아침 달력을 보니 어느덧 7월..
어느새 근덕의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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