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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얘기

지하철 Surfing? 후후 가소롭다



모스크바 지하철 뒷면에 매미처럼 매달려 가는 젊은이들 사진. 지하철 서핑(Metro Surfing)이란다. 스릴을 즐기기 위해서 이렇게 열차 뒤에 매달리는 거라나. 도대체 어떤 스릴이길래 저 짓들을 하는걸까? ㅋㅋㅋ 그 스릴.. 내가 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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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하니브로 엠티 장소 답사 차 돌아 다니던 때의 애기다. 사람은 셋인데 서울가는 기차표는 두장만 끊었다.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배가 너무 고파서 표살 돈으로 뭘 사먹었을 거다. 기껏해야 일이백원 정도였을 테니 삶은 계란 한줄정도나 되었을까? 아무튼 한 사람은 무전탑승하기로 했다. 타는 건 아주 쉽다. 문제는 중간에 여객전무의 표검사다. 우리 작전은 순진하게도 '화장실에 숨는 거'였다.

근데 그게 어림도 없음을 곧 알았다. 여객전무가 화장실 안 사람을 기어이 확인하는 걸 봤기 때문이다. 큰일 났다. 어디로 숨지? 한곳밖에 없었다. 기차의 바깥.. 기차의 바깥? 그렇다. 기차의 바깥이다. 당시 완행열차의 출입구는 이렇게 생겼었는데..
 
보다시피 승객들이 마음대로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었다. 보통때엔 이렇게 문을 열고 달렸지만 사람이 많이 타는 시간엔 공간의 확보와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문을 닫고 ‘계단공간을 편평하게 막는’ 발판을 내리고 달리기도 했었다.


문을 먼저 닫고, 사진 아랫쪽에 있는 판(이게 두겹이다. 그중의 윗부분이 계단덮개용 발판이다)을 계단공간에 덮고, 왼쪽에 보이는 자그만 고리에 고정시키면 되는 거였는데, 이 발판을 내리면 계단공간을 완전히 덮어 계단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냥 편평한 바닥이 되어 사람들이 그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그런 구조였다.

바깥으로 피하는 거면 저 계단으로 내려가 밖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건데, 윗 사진에서 보듯 문만 닫을 경우엔 계단 전체가 적나라하게 그냥 보인다. 매달려 있는 사람의 발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여객전무가 화장실을 끝까지 확인하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문을 열고 매달린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거 같았다. 여객전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 밖에 없었다.

1. 문만 닫고 있다가 여객전무가 지나갈 때 발을 떼고 팔만 이용해서 대롱대롱 매달리는 것
2. 밖에 매달려서 아예 발판을 내려버리는 것 

그러나 천번째 방법은 좀 위험해 보였다. 시간이 잘 안맞으면 팔 힘 딸려 발을 내릴 테고 그러면 바로 걸리는 거 아닌가. 그래서 두번째 방법을 택했다. 맨 아랫 계단에 서서 손잡이를 잡고 매달리고 친구들이 안에서 문을 닫고 발판을 내려버리는 거였다. 발판까지 내려져 있는데 설마 그 바깥에 누가 매달려 있으리라고 감히 상상이나 하겠는가?


출입문이 닫힌 바깥사진을 구하지 못해서 실감이 덜 나는데.. 밖에서 봤을 때 문이 닫히면 출입문 전체가 벽으로 막히고, 맨 아랫계단 두개만 보인다. 발을 짚을 수 있는 건 맨 아렛계단뿐이고. 물론 수직적으로는 모두 벽보다 안쪽이다. 그래서 무릎정도까지 벽으로 막혀있는 자세에서 그보다 안쪽에 있는 계단에 발을 걸고 있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시간이 없었다. 바로 실행에 옮겨야만 했다. 계단의 맨 아래까지 내려가서 양쪽 손잡이를 잡곤 친구들에게 빨리 문닫고 발판을 내리라고 했다.

‘야 띠바야 이거 너무 위험한 거 아니냐? 정말 괜찮겠냐?’
‘괜찮아 새꺄 빨리 닫아’

문이 닫히고 발판이 내려졌다. 비록 큰 소리는 쳤고 웬만큼 각오도 했었지만.. 달리는 열차의 바깥, 꽉 막힌 벽면의 계단 한칸, 그것도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계단에 겨우 발을 딛고 서서 양쪽 손잡이에만 의지해서 매달려 있는 건, 그건 거의 죽음이었다. 평소에 많이 해봤던 자세, 즉 계단의 안쪽에서 바깥을 바라보며 서서 대가리만 내밀고 바람을 만끽하는 것과는 차원이 완전히 달랐다.

일단 그것과는 자세가 반대다. 몸의 앞면이 벽에 붙어있는 자세다. 무척 답답했다. 게다가 얼굴이 시렵다고 팔이 아프다고 열차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달리는 열차의 바람을 온 몸으로 맞아야 했고 열차의 흔들림을 고스란히 온 몸으로 느끼며 버텨야 했다. 달리는 열차에서 떨어지면? 사망 아니면 중상이다. 몸이 뻐근해 자세라도 조금 바꿀라치면 오금이 저려왔다.

강을 만났다. 당시엔 웬만큼 큰 강이 아니면 철교주변에 아치가 아예 없었다. 따라서 나와 까마득한 아래의 강 사이엔 아무것도 없다. 달리는 열차에 매달려 시퍼런 강을 내려다 보니 놀랍게도 잠시 '환각'이 느껴졌다. 저절로 강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왔던 것이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자칫하다간 스스로 손을 놓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강을 하나 지나치자 슬슬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적안 시골 풍경도 보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날 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도 보였고, 계단에 나와 바람을 쐬고 있는 같은 열차 승객도 보였다. 그제서야 정신이 좀 들었다. 어라 저들이 내가 도망나와 있다는 걸 눈치채면 어떡하지? 그래서 그들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몸을 돌려 몸의 앞면을 바깥으로 돌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 죽으려고 환장한 짓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생각없이 써커스 하는 동작으로 몸을 돌렸다. 달리는 열차에 매달려서.

아! 훨씬 낫다. 얼굴을 벽에 붙이고 있는 게 답답했었는데 이렇게 자세를 돌리니 훨씬 인간적이다. 그 자세로 두번째 강을 만났다. 자세를 바꾸었으니 이제는 강을 피해 고개를 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강을 빤히 바라봐도 될만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참 스릴있구나 참 재미나구나 참 아름답구나.. 정말 짜릿하고 쇼킹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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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친구 두명이 누구였는지 가물거린다. 상철이와 원영이였던 것 같은데. 또 왜 친구들이 안에서 빨리 문을 열어주지 않았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여객전무가 지나가면 바로 문을 열어주기로 되어있었을텐데 왜 오래도록 밖에 갇혀 있었는지. 아무튼 난 한동안 그렇게 열차 밖에 매달려 갔었다.

그러던 중 어느 역을 지나치다가 그 역의 역무원이 날 보고선 호루라기 불며 쫓아왔었고, 그래서인지 갑자기 열차가 서행하고 그래서 열차에서 뛰어내려 역 밖으로 도망갔었던 거 같다. 그 뒤에 서울에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바깥에 매달려 달리던 그 스릴이 워낙 강렬했어서 당시의 다른 기억들이 덮인 것 같다.



꽉 막힌 지하에서 나쁜 공기 마시면서 열차 뒷면에 매미처럼 붙어있는 얘들아..
그러지 말고.. 열차에 등을 붙이고 돌아서서 가면 더 스릴있고 재밌단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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