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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얘기

8월말 근덕바다

오로지 한 바다에만 갔었다. 삼척의 근덕 해수욕장 북쪽 끝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 내에 있었던 한 방갈로 마을 앞 바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던 이 근덕바다에 대한 외사랑은 대학 때까지 똑같이 이어지다가, 콘도에 맛을 들인 무렵에야 막을 내렸다. 변심하기 이전까지 그곳에 가지 않았던 여름은 딱 세번, 고삼때와 군대시절뿐이었다.

70년대 중반엔 웬만큼 유명한 해수욕장이 아니면 바닷가에 숙박시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바다에서 며칠 지내려면 민박을 하거나 아니면 해수욕장에서 급조한 엉터리 방갈로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모래사장에 텐트를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름도 없던 작은 해수욕장에 예쁜 방갈로 마을이 들어섰던 것이다. 그곳은 우리에게 별천지 휴양촌이었다. 


15평 정도되던 큼직한 내부. 비록 아무런 내부시설도 없고 전기도 끊어져 버려 밤엔 촛불을 켜야 했던 곳이었지만 모래사장의 좁은 A텐트에 비하면 육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였는지 해수욕장 쪽에서 방갈로 마을쪽으로 걸을때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걸었었다. 그러다 만약 마음에 드는 무리라도 있으면 ‘야타-’. 물론 이래보진 않았다. 그래야 할 정도로 쪼들려본 적이 없었으니 ㅋㅋ.

늘 7월 25일을 전후해서 그곳에 갔었다. 사람들로 바다가 북적대기 시작하는 때다. 일부러 그 북적댐을 좇아서 그리하기도 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매년 빠지지 않고 그곳에 오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방갈로 마을의 이웃들, 매년 보다보니 마치 가까운 친척처럼 친근해진 그 사람들, 그들은 모두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무렵에 왔었던 것이다.

친근한 얼굴들을 만나서 반갑지만 그보다 더 큰 잇점이 하나 있었다. 가족단위로 오는 그들은 '먹을거리'가 풍성했다. 그래서 새로 온 그들에게 밑반찬과 간식거리를 얻어먹고, 떠나는 그들에게 쌀과 부식과 석유를 넘겨 받고, 때론 서울에서 갚기로 하고 돈도 빌리며.. 이렇게 오고가는 그들로 우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청자담배와 경월소주 살 돈만 있으면 열흘이고 보름이고 마냥 머물렀다.

8월 중순 이후까지 그곳에 있었던 적이 한번 있었다. 가게들도 거의 철시하고, 바글대던 사람들도 사라지고.. 방갈로 마을은 물론 근덕 바닷가 전체가 텅 비어버린다. 관광버스들이 다 철수했으니 바다엔 자가용이나 고속버스를 타고온 극소수의 사람들만 남는다.

긴바지와 긴팔 셔츠를 입어야 할 정도로 바닷바람이 쌀쌀해졌다. 바닷가에 보이는 사람들이라곤 서너명뿐이다. 해가 진 늦은 오후 그 너른 바닷가 아무데나 기타를 들고나가 노래를 부른다. 운치가 있다. 물론 자뻑이다. 집에는 가얄텐데 바다를 떠나기는 싫다. 운치를 지나 그게 청승임을 알면 그제서야 바다를 떠난다.

그때의 분위기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던 노래. 파도위의 물거품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못 잊을 그대여, 바람이 불면 행여나 그 님인가..^^


바닷가의 추억 - 키보이스


오늘 이른 아침 출근 길, 차창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몰려 들어온다. 이 느낌.
늦여름 쌀쌀했던 근덕바다의 느낌과 비슷하다.


파도 - 템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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