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니 형들은 나보고 그냥 죽으랜다. 망할자식들. 나 수술 한번만 더 받게해줘. 제발’
이미 모든 치료나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로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말기암 환자의 절규였다. 한두달정도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환자 본인은 그때까지도 현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수술만 하면 나을 수 있는데 자식들이 자길 포기하고 버리는 거라고 분노하고 있었던 거다. 이런 어머니때문에 자식들은 마음 아파하면서도 동시에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고 있었다.
물론 그 분이 내 어머니가 아니었었기 때문이겠지만, 난 그 때 그 분이 ‘엄마를 그리워 할 권리’를 자식들로부터 빼앗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장례후 '슬픈 얼굴'과는 많이 달랐던 자식들의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을 보면서 ‘아름다운 죽음’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삶에 대한 애착
10여년 전쯤, 평범한 수술을 받다가 갑자기 의식불명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환자를 바로 옆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 환자가 뇌사상태였는지 식물인간 상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수많은 선들이 환자의 몸과 기계를 연결하고 있었고 그는 그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환자 가족들이 병실에서 대책을 논의하던 중에 '한의치료'에 대한 얘기가 잠시 있었다. 기적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더라.. 하지만 현재 미국의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라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결국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었다. 그때였다. 기계가 갑자기 비상음을 내기 시작했다. 놀라 돌아보니 환자의 혈압과 맥박이 위험수치를 훨씬 넘어 무섭게 상승하고 있었다. 와 그랬을까?.. 환자가 우리들의 대화를 다 듣고있었던 거다. 혼수상태의 그 환자가.
의료진이 분주히 움직이고 자동으로 약제가 들어갔는데도 환자의 바이탈 수치는 계속 올라가고있었다. 그 때 딸이 환자에게 다가가 울부짖으며 말했다. ‘아빠 죄송해요. 해볼께요. 죄송해요. 그것도 해볼께요’ 그제서야 환자의 혈압과 맥박이 정상수치로 돌아갔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삶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보았다. 환자는 수십일 후 사망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존엄사
김수한 추기경이 병세가 악화된 2008년 말, 인공호흡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호흡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기계적 연명치료를 절대 하지 말라고 미리 밝힌 것이다. 그는 일체의 연명치료 없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런 죽음을 존엄사라고 한다.
연명치료
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 말기암 환자 298명을 대상으로 ‘무의미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에 대한 환자들의 의견을 묻는 조사가 있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대답한 경우가 11.7%에 불과했던 것이다. 열명중 아홉명은 인공호흡기를 통해서라도 생명이 연장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호스피스 병동의 말기암 환자들은 달랐다. 환자의 59%가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를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다른 대형병원이 말기 암 환자 16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87%(143명)가 '연명치료거부'에 서약했다. 하지만 그중 142명의 거부서는 환자가 아닌 가족들의 서약이었다. 환자 본인이 서약한 경우는 1명에 불과했다. 실제로 연명치료의 중단은 90% 이상 의료진에 의해 먼저 제안되고, 그때서야 가족들의 회의로 결정된다고 한다. 즉 환자가 연명치료거부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미리 밝혀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얘기다.
작년에 떠들썩했던 김모 할머니의 존엄사 문제. 이 할머니 역시 평소에 입버릇처럼 '연명치료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었지만 서면으로 남기진 않았었다. 왜 병원측에서 그렇게 연명치료를 강하게 고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좌우간 환자 '본인의 존엄사 의사'가 불명했던 이 사건은 법정으로 비화되었었다.
2008년 2월15일 김모 할머니 세브란스병원 입원
2008년 2월18일 폐 내시경 조직검사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짐
2008년 5월9일 김씨 가족,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
2008년 5월10일 김씨 가족, 존엄사 관련법이 없는 것은 헌법 위배 헌법소원
2008년 6월2일 김씨 가족, 병원 상대 민사소송 제기
2008년 7월10일 서울서부지법, 김씨 가족이 낸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 기각
2008년 9월1일 서울서부지법 재판부, 병원 현장검증
2008년 10월8일 재판부,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에 환자 상태 감정 의뢰
2008년 11월6일 공개변론
2008년 11월28일 서울서부지법 “존엄사 인정, 인공호흡기 제거” 판결
2008년 12월17일, 병원, 비약상고 결정…김씨 가족 반대
2008년 12월18일 병원, ‘존엄사 인정 불복’ 항소
2008년 12월30일 서울고법 민사9부, 변론준비기일
2009년 1월20일 항소심 첫 기일
2009년 2월10일 서울고법 민사9부, 병원 측 항소 기각
2009년 2월25일 병원측 상고장 제출
2009년 2월27일 대법원 접수
2009년 4월30일 대법원 공개변론
2009년 5월 21일 최종 판결 - 상고 기각으로 종결
2009년 6월 23일 연명치료 중단 시행 - 호흡기 제거
2010년 1월 10일 14시 57분 사망(연명치료 중단 201일 째)
엄마의 사전의료지시서
내가 이 사건에서 관심이 갔던 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도 201일동안이나 더 살아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도 이 사건을 주목하고 계셨었던 모양이다. 근데 나와 다르게 엄마는 다른 것에 주목하고 계셨다. 법정까지 저렇게 비화된 것이 ‘본인의 의사표시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 그래서 그날 당장 글을 써두셨단다. ‘연명치료는 어떠한 경우에도 받지 않겠다’고.
엄마의 ‘사전의료지시서’였다.
근데 이 글이 ‘유서’로 와전되고.. 그래서 내가 한동안 끙끙거렸었고.. ‘장기기증’과 ‘시신기증’에 이은 엄마의 또 하나 앞선 실천. 사전의료지시서. 그저 놀라움이다.
‘니 형들은 나보고 그냥 죽으랜다. 망할자식들. 나 수술 한번만 더 받게해줘. 제발’
이미 모든 치료나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로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말기암 환자의 절규였다. 한두달정도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환자 본인은 그때까지도 현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수술만 하면 나을 수 있는데 자식들이 자길 포기하고 버리는 거라고 분노하고 있었던 거다. 이런 어머니때문에 자식들은 마음 아파하면서도 동시에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고 있었다.
물론 그 분이 내 어머니가 아니었었기 때문이겠지만, 난 그 때 그 분이 ‘엄마를 그리워 할 권리’를 자식들로부터 빼앗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장례후 '슬픈 얼굴'과는 많이 달랐던 자식들의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을 보면서 ‘아름다운 죽음’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삶에 대한 애착
10여년 전쯤, 평범한 수술을 받다가 갑자기 의식불명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환자를 바로 옆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 환자가 뇌사상태였는지 식물인간 상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수많은 선들이 환자의 몸과 기계를 연결하고 있었고 그는 그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환자 가족들이 병실에서 대책을 논의하던 중에 '한의치료'에 대한 얘기가 잠시 있었다. 기적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더라.. 하지만 현재 미국의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라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결국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었다. 그때였다. 기계가 갑자기 비상음을 내기 시작했다. 놀라 돌아보니 환자의 혈압과 맥박이 위험수치를 훨씬 넘어 무섭게 상승하고 있었다. 와 그랬을까?.. 환자가 우리들의 대화를 다 듣고있었던 거다. 혼수상태의 그 환자가.
의료진이 분주히 움직이고 자동으로 약제가 들어갔는데도 환자의 바이탈 수치는 계속 올라가고있었다. 그 때 딸이 환자에게 다가가 울부짖으며 말했다. ‘아빠 죄송해요. 해볼께요. 죄송해요. 그것도 해볼께요’ 그제서야 환자의 혈압과 맥박이 정상수치로 돌아갔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삶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보았다. 환자는 수십일 후 사망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존엄사
김수한 추기경이 병세가 악화된 2008년 말, 인공호흡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호흡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기계적 연명치료를 절대 하지 말라고 미리 밝힌 것이다. 그는 일체의 연명치료 없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런 죽음을 존엄사라고 한다.
연명치료
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 말기암 환자 298명을 대상으로 ‘무의미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에 대한 환자들의 의견을 묻는 조사가 있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대답한 경우가 11.7%에 불과했던 것이다. 열명중 아홉명은 인공호흡기를 통해서라도 생명이 연장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호스피스 병동의 말기암 환자들은 달랐다. 환자의 59%가 무의미한 생명연장치료를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다른 대형병원이 말기 암 환자 16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87%(143명)가 '연명치료거부'에 서약했다. 하지만 그중 142명의 거부서는 환자가 아닌 가족들의 서약이었다. 환자 본인이 서약한 경우는 1명에 불과했다. 실제로 연명치료의 중단은 90% 이상 의료진에 의해 먼저 제안되고, 그때서야 가족들의 회의로 결정된다고 한다. 즉 환자가 연명치료거부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미리 밝혀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얘기다.
작년에 떠들썩했던 김모 할머니의 존엄사 문제. 이 할머니 역시 평소에 입버릇처럼 '연명치료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었지만 서면으로 남기진 않았었다. 왜 병원측에서 그렇게 연명치료를 강하게 고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좌우간 환자 '본인의 존엄사 의사'가 불명했던 이 사건은 법정으로 비화되었었다.
2008년 2월15일 김모 할머니 세브란스병원 입원
2008년 2월18일 폐 내시경 조직검사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짐
2008년 5월9일 김씨 가족,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
2008년 5월10일 김씨 가족, 존엄사 관련법이 없는 것은 헌법 위배 헌법소원
2008년 6월2일 김씨 가족, 병원 상대 민사소송 제기
2008년 7월10일 서울서부지법, 김씨 가족이 낸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 기각
2008년 9월1일 서울서부지법 재판부, 병원 현장검증
2008년 10월8일 재판부,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에 환자 상태 감정 의뢰
2008년 11월6일 공개변론
2008년 11월28일 서울서부지법 “존엄사 인정, 인공호흡기 제거” 판결
2008년 12월17일, 병원, 비약상고 결정…김씨 가족 반대
2008년 12월18일 병원, ‘존엄사 인정 불복’ 항소
2008년 12월30일 서울고법 민사9부, 변론준비기일
2009년 1월20일 항소심 첫 기일
2009년 2월10일 서울고법 민사9부, 병원 측 항소 기각
2009년 2월25일 병원측 상고장 제출
2009년 2월27일 대법원 접수
2009년 4월30일 대법원 공개변론
2009년 5월 21일 최종 판결 - 상고 기각으로 종결
2009년 6월 23일 연명치료 중단 시행 - 호흡기 제거
2010년 1월 10일 14시 57분 사망(연명치료 중단 201일 째)
엄마의 사전의료지시서
내가 이 사건에서 관심이 갔던 건 '연명치료를 중단하고도 201일동안이나 더 살아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도 이 사건을 주목하고 계셨었던 모양이다. 근데 나와 다르게 엄마는 다른 것에 주목하고 계셨다. 법정까지 저렇게 비화된 것이 ‘본인의 의사표시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 그래서 그날 당장 글을 써두셨단다. ‘연명치료는 어떠한 경우에도 받지 않겠다’고.
엄마의 ‘사전의료지시서’였다.
근데 이 글이 ‘유서’로 와전되고.. 그래서 내가 한동안 끙끙거렸었고.. ‘장기기증’과 ‘시신기증’에 이은 엄마의 또 하나 앞선 실천. 사전의료지시서. 그저 놀라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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