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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검찰총장 직선제, 고려해 봄직 하지 않나?

1. 지방자치제 
우리가 소주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대 인근 민가로 몰래 나가 사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몰래 밤중에 나가다 걸리면 군기교육대에 갈 수도 있고, 또 상당거리를 기어가야 하기 때문에 남들은 그 일 하기를 꺼려했었다. 그러나 난 상병 이후엔 자청해서 그 일을 했었다. 바로 라면 때문이었다. 그 일을 하는 놈에게 주어지는 특전이었던 ‘라면 하나 끓여먹고 들어와도 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어느날 라면과 ‘사제 김치’를 정신 없이 먹고 있는 내게 주인 아저씨가 소주한잔을 따라주며 불쑥 물었다. ‘신한민주당 알아요?’ 묻는다. 처음 들어보는 정당이다. ‘민한당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란다. 김대중 김영삼씨가 새로 세운 정당이고 내년 총선에 후보들을 내는데 그 정당이 큰 일을 해낼 거란다.
 
아무리 철통보안 군바리 신세지만, 시골 아저씨에게 이런 얘기를 듣는다는 건 좀 부끄러웠다. 계속 이어지는 아저씨의 얘기.. ‘우리나라가 진짜로 발전하기 위해선 지방자치제를 빨리 해야 돼요. 위에서 임명된 사람이 우리지역 대표로 내려온다는 게 말이 됩니까? 위 눈치만 보다가 임기 끝나고 다시 돌아가는 사람이 도대체 뭘 하겠어요? 당연히 우리가 뽑아야죠. 그래야 우리지역도 발전하고 그래야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년 선거에서 우리가 힘을 보태야죠. 부대원들과 이런 얘기 많이 해야돼요’

예삿 시골 아저씨가 아님은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분일 줄이야. 아 띠바.. 반면 나는 그저 라면과 김치에 눈이 돈 군바리새끼.. 어쨌든 아저씨의 세뇌로 ‘지방자치제’는 내 머리속에 깊숙히 박혔고 난 부대안에서 아저씨의 말대로 신한민주당 얘길 많이 했었다. 그 다음해 총선에서 진짜로 신한민주당 돌풍이 일었고.. 하지만 ‘지방자치제’는 그로부터 10년이나 지난 이후에나 겨우 실시가 되었다. 노태우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믿었던 김영삼이가 질질 끌던 바람에 그렇게 늦어졌던 거다.

이렇게 1995년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을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뽑게 된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그리고 지방정부가 관료주의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각 지방들이 얼마나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는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높은 곳으로부터 임명을 받은 사람이 윗사람의 눈치만 보며 일을 할 때와,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은 사람이 소신있게 일을 할 때.. 이렇게 엄청나게 다르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역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직접 뽑아야 한다. 그때 그 아저씨의 말처럼.



2. 똥개
주인의 똥을 받아먹고 사는 똥개가 한마리 있다. 주인 말은 정말 잘 듣는다. 물어! 하면 물고, 짖어! 하면 짖는다. 하지만 이 놈이 원래부터 이런 똥개는 아니었다. 원래는 늠름한 파수견이었다. 근데 언제부터인가 이 모냥 이 꼴로 사는 거다. 똥구멍을 핥아야만 똥을 싸주는 주인이 몇 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걸 안타까이 여긴 한 주인이 그 똥개의 목줄을 풀어줬었다. 내 똥 받아먹을 생각 그만하고 이제부턴 나가서 파수견으로 살아라.. 근데 목줄을 풀어주자 이 똥개새끼가 주인에게 달려든다. 주인님 똥 받아먹고 사는 게 좋으니 제발 목줄을 풀지 말아달라는 거다. 그렇지만 주인은 똥개의 목줄을 다시는 잡지 않았다. 넌 똥개가 아니라 늠름한 파수견이라니까..

하지만 이 똥개 고마움을 모른다. 무서운 주인에겐 숨소리도 못내던 놈이 만만한 주인에겐 자주 달려들며 짖기까지 한다. 우린 계속 똥개로 살겠다니까.. 그러다 새 주인이 왔다. 가만보니 옛 주인과 사이가 별로다. 그러자 이 똥개새끼, 기다렸다는 듯 옛 주인을 물어뜯는다. 

할일은 많고 먹을 건 별로 없는 '파수견'은 죽어도 하기 싫단다. 지금처럼 편하게 똥개로 사는 게 훨씬 더 좋단다. 마침 새 주인도 똥구멍을 핥아 주는 걸 참 좋아하니 서로 아삼륙이다. 우리 똥개, 이번엔 예쁘게 보이라고 대가리에 파마도 했나보다.



3. 미국의 선거
미국에 와서 처음 본 선거에서 희한한 게 하나 있었다. 주 검찰총장(Attorney General)을 주민들이 선거로 직접 뽑는 거였다. 미국은 거의 모든 것들이 주 단위로 이루어지니 주검찰총장은 우리나라에서의 검찰총장과 흡사한 영향력을 가진 자리다. 근데 그걸 직선으로 뽑는단다. 강제주입식 교육에 의한 전형적인 ‘발 맞추어 나가자 앞으로 가자’ 세대인 내게, 검찰총장은 당연히 대통령의 똥개가 되는 장면에 익숙했던 내게, 미국인들의 검찰총장 직접선거는 상당한 놀라움이었다.

동네사람들이 모두 보살피는, 동네사람들을 모두 지켜주는 늠름한 파수견인 거다. 똥을 받아먹기 위해 주인의 똥구멍을 핥는 똥개가 아니라. 많이 부러웠었다.



4. 우리도 검찰총장 직선제
우리나라 검찰이 다른 나라와 달리 수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모두 독점하고 있는 시스템은 이제 더 이상 옳지 않다. 너무 권한이 많다보니 그들이 떡검 색검 껌새가 되기만 하는 거다. 또 그 검찰이 대통령 한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점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검찰총장 한 놈만 내 사람 심어놓으면 ‘검사동일체, 상명하복’의 기강으로 검찰조직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준다. 짖어! 하면 짖고, 물어! 하면 문다. 하지만 이렇게 말 잘듣던 껌새도 때가 되면 배신을 한다. 다음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기 위해 전임 대통령의 목을 물어뜯는 것이다.

이게 지금 우리가 가진 시스템이다. 그래서 수사권, 기소권, 중수부.. 말들이 많다. 검찰으 위상과 조직에 수술을 해야 할 때가 된거다. 하지만 아무리 중수부를 없애고, 기소독점권을 나누고, 수사권을 나눠봐야 과연 무슨 변화가 있을까? 검찰총장을 제왕적 대통령이 임명하는 시스템 하에서 무엇이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도 검찰의 수술이 필요한 바로 이 시점에서 ‘검찰총장 직선제’ 심각하게 고려해 봄 직 하다. 물론 혼선과 부작용도 있기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부작용들이 우리가 이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 우리가 지방자치단체장을 직접 뽑음으로써 이루었던 그 눈부신 변화와 발전을 상기해 보면, 검찰총장의 직접선거제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신장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대에 맞는 검찰총장을 국민들이 직접 뽑는 장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하다.
수십년 쌓여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대청소가 비로소 가능해 질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