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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팡생각

술 좋아하는 남자들에 관한 불편한 진실

'애주가'.. 이거 자랑일까?
‘술은 사회생활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술을 마셨었다. 술 때문에 일어난 에피소드.. 셀 수 없이 많다. 60일 연속 술 마시기 대행진도 해봤고, 술 마시다 친구 위장에 구멍도 내봤다. 술 때문에 경찰서 유치장에도 갇혀봤고, 국가 공인 ‘폭력전과자’ 딱지도 붙여봤었다. 성수대교 붕괴 때엔 술 때문에 목숨을 건졌었지만,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나이 들어 나타난 '숙취의 괴로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술 마시는 남자들이 숨기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고 나서부터이다.

중년을 넘긴 남자 연예인들이 티비에 나와 ‘난 아직도 애주가’라고 자랑하는 걸 가끔 본다. 이어지는 ‘주량자랑’.. 아직도 소주 몇병은 거뜬하다느니. 맥주는 오줌이 자주 마려워서 안 마신다느니.. 딴에는 술 마시는 걸 남자의 상징으로 알고 그러는 것 같다. 

하지만 난 불쌍한 생각이 든다. 아마 나뿐만이 아닐 거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들의 그런 얘기에 ‘어휴 나이 쳐먹고도 아직 술타령 술자랑.. 한심한 놈’ 이라는 생각을 할거다. 


남자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알딸딸 해지고 싶어서'
확실한 거 하난 ‘술이 맛있어서 마시는 놈’은 없다는 점이다. 맛 있기는 커녕 쓰다. 독주 한잔에 '캬-' 하는 것도 사실은 술이 써서 그러는 거다. 근데 이 쓴 술을 왜 기를 쓰고 마실까?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다. 사업상 접대로, 친해지기 위해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서, 축하할 일이 있어서, 얘기하고 싶어서, 고백을 하기 위해서, 속이 상해서, 누군가가 보고 싶어서, 울적해서, 비가 와서.. 또 술을 못 마시면 사회생활에서 도태될까봐, 술을 마셔야 남자행세 할 수 있으니까.. 구구절절 이유가 많다. 하지만 그건 모두다 2차적인 이유다. 일차적인 이유는 오직 하나다.

‘알딸딸 해지고 싶어서’

그렇다. 이 알딸딸함에 대한 기대 때문에 술을 마시는 거다. 폭탄주가 이래서 나왔다. 빨리 알딸딸해지려고. 남자들이 ‘단 술은 싫다’는 이유도 쓴 술이 훨씬 빨리 알딸딸해지기 때문이다. (단 술은 여자들이나 마시는 ‘알콜주스’라고 떠벌이는 마초기질도 한 몫 한다)

근데 왜 알딸딸해지고 싶어할까? 알딸딸해지면 좋은 게 많다. 걱정을 잊을 수 있고, 긴장을 해소할 수 있고, 남자이지만 맘껏 수다 떨 수 있고, 체면 벗고 끈적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이다. 술을 자꾸 마시는 것은 그 알딸달했던 기분과 즐거움을 잊지 못해서 그래서 그걸 또 체험하고 싶어서 술을 마시는 거다.



술 좋아하는 남자는 '수다쟁이'
애주가들의 술자리 모습은 어떨까? 술을 사랑한다니 앉아서 줄창 술만 들이킬까? 아니다.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옛날 얘기, 군대 얘기, 연애 얘기, 건강 얘기, 골프 얘기.. 즉 술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술로 인해 조성되는 분위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거다. 술을 마시면 맘껏 수다를 떨 수가 있다. 술 마시고 즐겁게 얘기하는 남자를 두고 수다떤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남자들이 술을 마신다.

남자들끼리 만나 술만 마시고 깨끗하게 귀가하는 건 술을 빙자해서 수다를 떨기 위해 만나는 거다. 술 잘 마시는 ‘멋진 마초’가 아니라 사실은 입이 근질거리는 ‘수다쟁이’인 것이다.



술 좋아하는 남자는 '여자 밝힘증 환자'
반면 꼭 아가씨가 나오는 집에서만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술은 여자가 따라줘야 제맛’이라나. 조선 유교문화의 잔재다. 예쁜 기생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다가 한 년 꿰차고 운우의 정을 나누고 아침에 뻔뻔하게 집으로 돌아가 ‘부인 나 왔소’ 하던 한량 문화.

내 친구 중에 이런 놈이 있었다. 술기운 빌어서 시작부터 끝까지 옆에 앉은 아가씨 몸만 더듬다가 나오는 놈. 대화도 없고 가무도 없고 시종일관 ‘더듬기’에만 탐닉한다. 또 이렇게 극단적으로 더듬지는 않지만 술친구들과의 대화는 단절한 채 옆에 앉은 아가씨하고만 히히덕 거리는 남자들도 굉장히 많다. 이들에게 술은 젊은 여자와 놀기 위한 핑계이다.



술 좋아하는 남자는 '루저'
대부분의 남자들이 착각을 하는 등식 ‘술 좋아하는 남자 = 남자다운 남자’ 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게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는 금세 알 수 있다.

남자들이 술을 마시는 건 ‘알딸딸함’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알딸딸하면 맘껏 수다도 떨고 만남도 부드럽고 노래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근데 이게 길어지면.. 정신이 말짱할 때엔 입도 닫히고 만남도 불편하고.. 매사에 자신이 없어져 버린다. 이게 문제다.

술기운이 있어야 수다를 떨고, 술기운이 있어야 노래를 하고, 술기운이 있어야 마음을 열고 사람을 만나는 그들.. 어쩔 수 없이 술을 자주 찾게 된다. 이게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애주가가 아니라 비겁자가 되어 버리는 거다. 알딸딸함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루저가 되어버리는 거다.



술 좋아하는 남자는 '알코홀 중독자'
그렇다면 이 ‘알딸딸함’의 정체는 뭘까? 두말 할 것도 없이 그건 ‘정신 혼미’의 상태다. 즉 제 정신이 아니라는 거다. 무서운 상사에게 달려들기도 하고, 친하던 동료와 도로에서 활극을 벌이기도 한다.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고백을 하기도 하고, 아무데서나 동정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술만 들어가면 안 되는게 없다. 안되던 노래도 잘 되고 춤도 춰지고 매사에 대담해진다. 온 세상이 내 맘대로 되는 별천지다.

향정신성 물질을 흡입했을 때의 바로 그 환각상태와 똑 같다. 즉, 마약을 하는 이유와 똑같다. 그래서 남자들이 늙어서까지 술을 계속 마시는 건 ‘낮은 정도의 마약’을 끊지 못하는 것과 역시 ‘똑’ 같다. 나이 들어서까지 술을 좋아한다는 그 남자들.. 중독자일 뿐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술 좋아하는 남자는 '뇌가 손상된 남자'
향정신성 물질은 인간의 대뇌에 작용하여 인체내에서 정신 상태의 변동을 일으키는 물질을 말한다. 대표적인 향정신성 물질은 술, 담배, 히로뽕 등 암페타민 계 약물, 대마초 (마리화나), 코카인, 아편, 피씨피 (PCP), LSD등 환각제, 신경안정제 수면제, 커피등이다.

이런 물질은 지속적으로 사용을 하면 효과가 감소하기 때문에 효과를 내기위해선 사용량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하는데 이걸 ‘내성’이라고 한다. 또 사용하다가 중단을 하면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을 ‘금단증상’이라고 한다. 근데 이 금단증상이 고통스럽다. 그래서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사용을 하게 된다.

이렇게 사용을 중단하였을 때 금단 증상이 생기는 건 그 물질에 대해 신체가 의존을 했다는 뜻이다. 금단증상 때문에 향정신성 물질 사용을 중단하지 못하는 경우를 ‘의존증 상태’라고 말한다. 중독이라는 건 장기적인 의존상태를 말하는데 이를 ‘만성 중독 상태’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도달한 상태다.

이런 상태는 바꿔말하면.. 그들의 뇌가 일정부분 훼손되어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마약중독자들의 혈류량 감소와 신경전달물질들의 교란으로 인한 뇌손상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알코홀 중독자들의 뇌는 어떨까? TV에 나와 ‘이 나이에도 나는 아직 애주가’라고 자랑하는 걸 보면 답이 나온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다 비웃는 그런 걸 자랑이라고 하는 그들.. ‘우리 뇌가 좀 이상해요’ 자랑하고 있는 중이다.



음주인의 천국 대한민국
미국에 와서 느낀 것중 하나는 ‘한국이 음주문화에 엄청나게 관대했다’는 점이었다. 길거리에서 술주정을 부려도 싸움이나 기물파손만 없으면 한국에선 괜찮다. 길거리에서 병나발을 불거나 술이 취해 단체로 노래를 불러도 괜찮다. 하지만 미국에선 어림도 없다. 술주정은 커녕 술이 취해 비틀거리는 것, 술병을 들고 있는 것조차도 걸린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음주인들의 천국이다. 술집이 아무곳에나 널려있고 내 맘대로 술 마시고 내 맘대로 놀아도 된다. 급기야 결혼한 남자가 술 먹고 외박하는 것도 잔소리 한번으로 마무리 된다. 나도 예전에 자주 그랬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희한하다. 남자들의 술에 관대하고 오히려 남자에게 술을 권하는 놀라운 마초문화다. 

더 놀라운 것은 '주사'에 대해서도 관대하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주사에 속으론 부글부글 끓을지언정 ‘남자가 술 먹고 그럴 수도 있지’ 해야 하는 이상한 문화도 있다. 아무리 주사가 심했어도 그 주사를 비난하면 오히려 쪼잔한 놈이 되어버리는 문화, 그래서 그 주사를 고쳐주지 않고 ‘그 놈이랑 안마시면 돼’로 마무리 해 버리는 문화. 대한민국에서 술은 참 자랑스럽다.

근데 이게 남자들에게 버릇이 된다.


공인된 마약
술과 담배는 분명히 마약이다. 다만 워낙 그걸 하는 사람들이 많아 단속하지 못할 뿐이다. ‘공인된 마약’인 셈이다. 그러니 단속을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술 마시는 게 자랑인줄 아는 후진적 문화만큼은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 술 마시는 게 부끄러운 일이고 일종의 죄악이라는 개념이 퍼져야 한다.

근데 한국 남성들.. 아마 스스로 변화하긴 힘들거다. 워낙 뿌리깊은 마초문화 때문에 아마 한세대는 지나야 가능할 거다. 그래서 국가가 강제적으로 술 담배에 대한 제재를 시작해야 한다. 술먹고 길거리에서 흔들거리거나 주정 부리는 놈들, 공원벤치에 앉아 병나발 부는 놈들, 바닷가에서 술취해 고성방가 하는 놈들.. 다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버릇이 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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