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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어느 모임에나 또라이가 있다

1. 세계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산다는 미국 Los Angeles. 비공식 교민 인구가 150만명이다. 아마 한국의 지방 중도시 규모정도가 아닐까 싶다. 어디든 한인 교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예외없이 ‘한인회’라는 게 있는데 LA에도 한인회라는 게 있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도 이 한인회라는 곳이 뭘 하는 곳인지 전혀 모른다. 진짜 ‘전혀’ 모른다. 그나마 한인회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아는 건 2년에 한번씩 한인회장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민들의 선거열기가 그만큼 뜨겁단 얘기일까? 아니다. 선거에 참여하는 교민수는 채 만명에도 못 미친다. 투표참여율 0.6%다. 그럼 한인회장은 몇표를 얻으면 당선일까? 3천표만 얻으면 당선이다. 0.6%의 투표율과 0.2%의 득표율로 선출되는 한인회장. 여기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한인회라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교민들의 강력한 의지표명이다. 근데 한인회는 없어지지 않는다.


교민들은 왜 이렇게 한인회라는 델 철저히 외면할까?
첫째, 회장에 출마하는 인물이 대부분 나랏돈 빼먹은 사기꾼, 악덕 부동산업자, 깡패출신 야간업소 사장등 도덕성과는 아주 동떨어진 자들이라 그렇다. 설마.. 하겠지만 사실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한인사회는 아직도 이렇다. 149만명이 손가락질하는 사기꾼이 3천명만 돈으로 매수하면 되는 자리가 한인회 회장자리다. 이렇게 극도로 질 낮은 인사들의 선거판이다 보니 선거가 끝나면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선거무효’ 소송이 법원에 접수된다. 사기꾼들끼리의 추악했던 선거싸움을 법정까지 끌고가 한국인들 망신을 국제적으로 시킨다.

둘째, 무슨무슨 단체라는 것에 교민들이 하도 넌덜머리가 나서 그렇다.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이름의 단체가 우글대는 곳이 바로 LA 한인사회다. 똑같은 성격의 단체지만 미주 xxx, 한미 xxx, 가주 xxx, 나성 xxx, 로스앤젤레스 xxx 로 앞 대가리만 바꾼 단체들이 우글댄다. 어떤 놈이 ‘한미 xx 연합회’를 등록하고 회장으로 앉았다. 근데 그와 ‘연합’하기로 동의한 사람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는 또라이로 찍혔던 고문관이었다. 그래서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사람이 이번엔 ‘가주 xx연합회’라는 이름으로 단체를 등록한다. 먼저 등록한 놈은 자기가 ‘원조’임을 강조한다. 그러자 뒤엣놈은 과거 경력을 내세우며 자기가 ‘적통’임을 주장한다. 식당들의 ‘원조’싸움이나 정치꾼들의 ‘적통’싸움과 똑같다. 피장파장이 되자 이번엔 세력으로 싸운다. 별의별 그지 같은 인사들이 이사로 등록을 한다. 감투에 눈먼 미친놈들이 하는 일 없이 떼쓰고 앉아있는 곳, 이곳이 대부분 단체들의 실상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교민들이 '단체'라는 것들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교민들에게 단체의 장이나 간부들은 ‘감투에 미친 추악한 늙은 깡패들’일 뿐이다. 인간이 워낙 저질이다보니 그들이 싫고, 사람이 싫다보니 그 단체마저 혐오하고 철저히 외면하게 되는 형국이다.


2. 그래서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거나 사람들의 정이 그리울 때 교회로 눈을 돌린다. 그러나 교회도 바람 잘 날이 없다. 부목사가 담임목사를 횡령으로 고발하고, 잔소리 심한 원로목사를 교회 골방에 감금하는 사건까지도 있었다. 목사라는 자가 버젓이 이웃 교회는 목사가 마귀라 그 교회에선 절대 은혜를 받지 못한다고 설교하기도 하고, 한달 내내 십일조 설교만 하며 교인들을 질책하기도 한다. 교인들끼리의 편가르기는 예사가 되어 나이별 학력별 출신지역별 소득수준별로 갈갈이 흩어지고, 꼴보기 싫은 사람을 피해 예배시간을 바꾼다. 교인들이 단합해서 목사를 쫓아내기도 하고, 장로간 파벌이 생겨 교회가 둘로 갈라지기도 한다. 신성한 교회에서마저 또라이들의 행패에 사람들이 지친다. 신앙에 열심인 사람보다는 정치싸움에 열심인 사람들이 전부 교회의 장로며 권사며 집사들이다.


교회엔 나가야 하는데 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정말 싫다. 생각 같아선 딱 발길 끊고 싶지만 사람들이 맘에 안든다고 아예 교회에 안 나갈 수도 없고.. 그래서 다른 교회로 가 '교인등록'을 하지 않고 있는 듯 없는듯 예배에만 참석한다. 아예 미국 교회에 나가 ‘조용하게’ 예배를 보는 사람들도 많다. 구역질 나는 사람들과 부딪힐 필요 없이 경건하게 기도하고 올 수 있어 정말 좋단다.


3. 교회에도 지친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이 동문회다. 정치와 종교를 떠나 오로지 친목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래서 동문회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몇번 나가지 않아 그 기대는 산산이 부서진다. 정겨운 꿈을 안고 동문회에 나갔다가 발길을 돌린 사람의 공통된 푸념.. ‘어디서나 설치는 것들은 다 또라이예요. 그거 설치는 꼴 보기 싫어서 안 나가요’다.

그 설친다는 사람.. 다른 곳에서 얼마나 배척을 당해왔길래 그 한을 이곳 동문회에서 풀려고 하는 건지, 허긴 꼴을 보면 어디 받아주는 데도 없을상 싶다. 평범한 사람이 설쳐도 그게 지나치면 질리는 법인데 싸이코가 설치니 사람들이 더 질겁을 한다. 오는 사람 열심히 막고, 있는 사람 열심히 쫓아낸다. 

마치 회사의 도메인 네임을 어떤 사꾸라에게 선점당한 느낌이다. 그게 도메인 네임이라면 돈을 줘서라도 사들이면 되지만 동문회를 미리 선점한 또라이 동문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제발 타주로 이사가주면 참 좋을텐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 이제 방법은 둘이다. 사람들 뜻을 모아 그 사람을 강제로 쫓아내거나, 동문회를 둘로 쪼개는 방법이다. 그러나 어느쪽 방법을 쓰더라도 온 세상에 모교를 망신시키는 일이 된다. 당최 도리가 없다. 그저 그놈 설치는 그 꼴만 밖에서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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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젊었던 시절 추억에의 회귀본능이 있다. 일에 지치고 사람에 속아 삶이 고단할 때 사람들은 세상 고난 모르던 그 시절을 그린다. 그래서 그 시절의 흔적을 찾아 늘 헤매곤 한다. 그러다 흔적을 본다. ‘나와 옛날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찾았다. 옛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 생각만으로도 잔잔한 흥분을 느낀다.

그러나 막상 그에 다가서려면 만만치 않은 벽이 있다. 남들과 적나라하게 비교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의 벽이 가장 높다. 또 차라리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젊고 아름다웠던 모습으로만 남고 싶은 고집도 있다. 그러나 의외의 벽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늦은 모임’이라는 속성상 있을 수밖에 없는 ‘배타성’이다. 

공동체는 늘 배타성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동창회라면 그 학교 졸업생만이 참여할 수 있고, 음악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면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배타성을 가진다. 그러나 반대의 배타성도 있다. LA의 한인회, 시시껄렁한 단체들, 교회들, 동창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배타성, 바로 ‘그 조직내의 사람’이 뿜어내는 배타성이다. 즉 타인들이 그 모임의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배타성이다. 배타성이라기 보다는 '혐오인자'라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누군가가 뿜어내는 ‘나쁜 아우라’가 너무 강해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것이다.

아무리 ‘情 공동체’라도 누군가 발벗고 나서 모임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모임을 위해 열심히 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보통 일이 아니다. 힘든 그걸 나서서 하는 사람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열심이 오히려 해가 될 때도 있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은 되레 점점 멀어지는 딜레마가 있을 때가 있다.

옛날을 그리워하면서 지내던 사람들, 우연히 모임에 대한 얘길 듣고 인터넷에서 그 모임의 흔적을 찾는다. 그래 반갑고 기쁜 마음에 한걸음에 다가서고 싶었지만 뭔가 발목을 잡는다. 자칫 가슴에 보듬고 왔던 추억이 오히려 망가질까 걱정된다. 그래서 그리움을 그냥 참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