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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내 마음의 삼천사.. 미국 태고사 1

비가 억수같이 오던 어느날 아침.
상계전철역까지 택시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정면충돌이었기 때문에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었던 남자는 택시의 앞 유리창에 머리를 정면으로 들이 박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같은 시각, 그 남자의 어머니.
갑자기 뭐에 홀린 듯 집을 나설 채비를 했다. 비가 억수같이 오고 있었지만 지금 꼭 절에 가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본인도 의아했지만 아무튼 그녀는 곧바로 집을 나서 아무 버스에나 올랐다. 무작정 구파발에서 내린 그녀는 한동안 도로를 따라 걷다가 난생 처음 보는 이름의 절 안내표지판을 보게 된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 표지판을 따라 갔다. 포장된 길은 곧 없어지고 경사진 산길이 나타났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 미끄러운 산길을 계속 따라 올라갔다. 한시간 가까이 올라가 만난 절, 그녀는 그 절에서 기도를 했다. 무엇을 위한 기도인지, 왜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녀는 그저 기도를 했다. 본인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날 아침의 雨中 山寺行,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힘이었다.

앰뷸런스 안.
기절했던 남자, 의식이 돌아와 주변을 살피려는데 아뿔싸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이 피 지금 어디서 흐르는겁니까?’ 눈을 다쳤을까봐 놀란 남자가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잘 몰라요. 눈뜨지 마세요. 곧 응급실에 도착합니다’ 부러지고 찢어지고 깨진거야 시간지나면 낫겠지만 만약 눈이 다친거라면.. 그때 남자는 난생처음으로 기도라는 걸 간절히 해봤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피투성이였던 남자의 얼굴을 대충 닦아내곤 의사가 남자의 눈 준위를 열심히 뒤적거리는 것 같다. ‘자 눈알 한번 움직여 보세요. 어떤 느낌이예요?’ 그러나 눈알을 움직이라는 게 어떻게 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눈꺼풀을 움직여 눈알에 압박을 가해보곤 ‘좀 껄껄한 게 걸리적 거리는 거 같습니다’ 그러자 또 한동안 눈주위를 뒤적거리더니 ‘자 이제 천천히 눈 떠보세요’ 한다. 갑자기 남자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띠바 앞이 안보이면 어떡하나. ‘피는 머리 찢어진데서 흐른거 같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눈 떠보세요’ 그래서 숨을 한번 몰아 쉬고 눈을 떠봤다. 와- 앞이 보인다. ‘근데 머리를 쎄게 부딪힌거 같으니까 한동안 지켜봐야 합니다’ 그래서 더 큰 병원으로 옮겨 한동안 입원은 하고 있었지만 평소 머리가 단단하던 그 남잔 멀쩡했다.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피투성이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었던 날, 나와 우리 엄마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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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침 이렇게 우리 母子간에 일어났던 그 신비한 感應,
그리고 영문도 모르는 우리 엄마를 미친듯 이끌던 곳 ‘三角山 三千寺’.

이 삼천사가 내게 아주 특별한 곳이 된 것은 당연했다.


(뒤에 보이는 산이 삼각산이다. 도봉산의 반대쪽이든가 그렇다. 이 돌계단을 올라가면 늘 다리가 뻐근해졌었다. 그럴때마다 늘 그랬었다. 운동해야지 운동해야지.)

불교신자가 아닌 내가 삼천사에 갈일은 사실 별로 없었다. 특히 일요일날 사람들이 북적대는 건 질색이었기 때문에 그저 평일날 시간이 날때 무작정 들르는 것이 삼천사 방문의 모두였다.

(난 삼각산 산신령이 계신다는 이곳을 제일 좋아했었다. 삼천사의 산신각이다)


삼천사 옆으로 흐르던 계곡이다. 이 물이 얼마나 맑았던지 그냥 손으로 떠서 마셔도 될 정도였다. 여름에 콸콸 흐르던 이 물이 겨울에 꽁꽁 얼면 그 위에서 미끄럼을 타곤 했었다. 계곡물이 고여있는 곳에 소금장이가 유유히 떠있다. 


오가는 사람 아무도 없는 평일의 오후, 아무도 만나지도 않고, 아무곳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곳을 그냥 조용히 한바퀴 돌아 걸어나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니 아무도 만나지 말고 아무곳도 들르지 않아야 더 좋았다. 더러워진 손을 맑은 물로 깨끗이 씻고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부처님 진신사리 탑이라고 한다. 예전에 말했지만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가 잠드셨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계곡에 흩날리실 때 갑자기 하얀새 한마리 날아올라갔다는 곳도 바로 이곳 삼천사였다. 아버지는 그렇게 하얀새로 남아 삼천사에 계시면서 아들을 지켜주시며 아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어쩌면 삼각산의 산신령이 되셨을 수도 있겠다.


삼천사는 내게 聖地가 되었다.
무종교주의자인 내게 생뚱맞게 聖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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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도 삼천사가 있다. 물론 전혀 다른 이름의 전혀 다른 곳이다. 그냥 내가 삼천사이거니.. 라고 여기는 곳이다. 새해가 밝았을 때, 아버지의 기일 그리고 한해가 저물 때. 이렇게 일년에 딱 세번 찾는 곳. LA 북쪽 두시간 거리의 테하차피(Tehachapi)라는 곳에 있는 태고사다. 파란눈의 미국인 스님이 유산을 미리 땡겨받아 고집스럽게 혼자서 직접 세운 절이다.

다음주에 장인어른의 기일. 교회에 다니시다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르신 장인어른의 기일을 절을 찾아 기린다는 게 좀 걸렸지만 '종교란 인간이 만든 놀음'이며 그래서 그런 ‘종교로부터 자유롭게 초월’한 우리 부부는 거리낌 없이 태고사를 찾기로 했다. 물론 장모님이 이걸 아시면 난리가 나실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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